A Night Walk


Aimez-vous les étoiles?
익명A 씀

 

 

아, 그 곳이다.

 

너와 손을 맞잡고 걸으며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의미 없이 늘어놓았던 그 밤길. 너에게 용서를 빈다, 부디 이 이기적인 마음을 용서해 주기를.

 

 

삐 -

 

삐 -

 

환자분? 정신이 드세요?

 

 

눈을 뜨자 보인 건 걱정이 가득한 가족들의 얼굴이었다. 주위에는 소독약 냄새가 진동하였고 온몸은 무언 가에 눌린 듯이 무거웠다.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파 왔지만 네가 바로 떠올라 행방을 물으니 가족들은 머뭇거리는 표정을 지었다. 음주운전을 한 트럭 운전사가 차마 앞을 살피지 못하였고 그 상태로 나를 끌어안아 대신 치였다고 한다. 너의 마지막을 듣는 순간 헛웃음이 먼저 나왔다. 내 까짓 게 뭐라고 대신 목숨을 잃었다는 것이 이해할 수 없었다. 아파도 힘들어도 괜찮다며 웃음을 보일 때도 너를 이해하지 못하였는데 끝까지 이러한 네 모습의 아무런 말조차 나오지 않았다. 처음에는 네가 죽었다는 것을 믿지 않았다. 아니, 믿고 싶지 않았다는 말이 맞겠다. 애써 그 사실을 외면하려 발버둥을 쳐보았지만 차가운 세상은 억지로 부여잡고 현실을 마주하게 만들었다. 그때 너를 마지막으로 보았던 기억을 떠올려보았다. 겨울이 지나 살짝 씩 피어나는 봄꽃들 같은 웃음을 짓는 네가 하였던 말이 떠올랐다.

 

“나는 너하고 밤 산책 하면 마음이 편해지더라, 평생 이렇게 같이 걷자, 평화롭게.”

 

그 말을 하며 분명 너는 사랑스럽게 웃고 있었고 그 얼굴에 작은 애정으로 답을 보냈다. 웃는 너를 회상해보니 그저 다시 보고 싶다는 생각만이 머릿속을 집어삼켰다. 너를 떠올리면 눈물은 저항 없이 흘러내려왔고 막을 수조차 없었다. 말로 표현이 안 될 정도에 통증이 가슴을 조여 왔다. 누군가 목을 조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다시 시간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그럴 수만 있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너를 살리고 싶다는 마음만이 흘러넘쳤다. 하지만 그럴 수 없는 현실에 스스로 목숨을 끊고 싶다는 마음만 가득하게 되었다.

 

차가운 공기만이 맴도는 유리 뒤에 너의 사진이 걸려 있었다. 어여쁜 꽃들과 있으니 네 모습은 더욱 고통스럽게 다가왔다. 살아생전에 좋아했던 꽃들 사이로 네 생일 때 줄 예정이었던 반지를 끼워 넣었다. 이 반지를 네가 발견할 수 있게끔 잘 보이도록 윗부분에 끼어 놓은 뒤 아무런 말조차 전하지 못한 채로 뒤를 돌아 나섰다.

 

무거워진 몸을 이끌고 침대에 멍하니 누워 밤잠을 설쳤다. 잠에 들려 할수록 잠은 오지 않았고 흘러나오려는 눈물을 억지로 삼키기만 하였다. 겨우 눈을 감은 뒤 얼마 지나지 않아 무언가 낯선 느낌이 들었다. 눈을 살며시 떠보니 방 안 천장이 아니었다. 이곳이 어디인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낯선 느낌이 나는 곳의 천장에는 익숙한 별 모양의 형광 스티커가 보였다. 그 스티커를 보자 단번에 알아차렸다, 지금 이 장소가 우리의 집이라는 걸. 정확히 말하자면 너와 같이 동거를 하였던 집이었다.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한순간으로는 꿈에서라도 너를 다시 볼 수 있다는 생각에 행복감이 조금이나마 드러났지만 현실에서 일어날 수 없는 일을 꾸는 것은 너무나 끔찍한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제발 현실로 돌아가게 해달라고 빌고 또 빌었다. 그러나 곧 그 꿈은 현실이라 믿고 싶게 만들었다, 아니 그래야만 했다.

 

질끈 감았던 눈을 지그시 떠보니 네가 옆에 누워 새근새근 숨을 쉬며 잠을 자고 있었다. 그 뽀둥한 입술 하며 작은 얼굴 위에 속눈썹이 살며시 내려앉은 그 얼굴은 네가 분명하였다. 네 얼굴을 마주하자 이 꿈이 영원히 지속됐으면 하는, 단순하고 이기적인 마음이 목구멍을 울렁이게 하였다. 떨리는 손을 부여잡고 너의 이름을 나지막하게 불러보았다. 너는 그 은하수 같은 눈을 슬그머니 떠 마치 사랑에 빠진 듯한 얼굴로 잘 잤냐는 상냥한 인사를 건네 왔다. 이 모든 게 꿈일까, 아니 무엇이든 상관없었다, 네가 있는 곳이라면. 깊은 잠에 빠져도, 그 속에 너만 나와 준다면 그것만으로도 행복해 목숨을 스스로 끊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터이니. 목소리를 겨우 가다듬고 체온이 느껴지는 손을 붙잡아 보았다. 오랜만에 잡아보는 네 손은 정말로 따듯했다. 눈물이 한 방울씩 떨어지자 너는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울지 말라는 걱정스러운 목소리와 함께 얼굴을 쓰 담아 주었다. 이 느낌이 그리워 그리 그 차디찬 방 안에서 홀로 눈물을 머금었나 보다. 안긴 너의 품은 심장이 뛰는 것이 느껴졌고 그 심장 안으로 기대고 싶게 만들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핸드폰 화면 위에 날짜가 보였다. 아, 그 날이다. 사고가 난 날이자 너의 사망 날. 그날로 돌아온 것이라면 너를 되살리라는 신의 계시일까 아님 신의 노름 위에 놓여 진 것일까. 한숨을 깊게 내뱉은 뒤 결정하였다, 그저 신을 따르기로.

 

우당탕 거리며 아침밥을 준비하는 네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너를 살릴 계획을 세워야 하지만 그래도 다신 보기 힘들 지도 모르는 이 순간을 그냥 눈에 담기로 하였다. 그때의 아침에는 한낱 앞도 모르고 너와 다투며 하루 시작을 좋지 않게 보냈었기에 네 모습을 눈에 더 많이 담았어야 했다. 차라리 그냥 아무런 말없이 몇 번이나 더 안아줄 걸 그랬다, 등신 같이 보낸 뒤에 후회하지 말고.

 

너와 마주 앉아 아침밥을 먹은 뒤 출근길을 배웅해 주었다. 집으로 서둘러 들어온 뒤 종이와 펜을 꺼내 들었다. 사고가 난 시각은 대략 밤 11시쯤. 흰 종이에 네가 퇴근하는 시각과 밤 산책을 하는 시간들을 하나하나 채워나가기 시작하였다. 써 내려 갈수록 머릿속은 더더욱 복잡해져 왔다. 이런다고 네가 다시 되살아날까, 이미 사라진 너를 억지로 세상에 다시 끌어당기려 하는 이기적인 욕심이 아닐까 하는 마음이 뒤덮여오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선택지는 단 하나 밖에 없었고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였다, 하얀 종이 위에는 눈물방울들이 번졌지만 속으로 머금으며 후회로 번진 종이 위를 조금씩 채워나갔다.

 

계획은 네가 퇴근하는 시각에 맞춰 마중을 나간 다음, 뛰 쳐들어오는 차 앞으로 대신 뛰어드는 것이었다. 단순하고 무모한 계획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인생에서 절대 잃어서는 안 될 존재가 너이기에 무모한 방법을 선택하였다.

 

 

저 반대편에서 걸어오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첫 번째 시도의 발걸음을 뗐다. 주위를 둘러보니 차는 보이진 않았고 신호등이 바뀌는 소리가 귓가에 울려 퍼졌다. 한 걸음 한 걸음 다가 가 갈수록 너를 잃어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걸음을 뗄 때마다 저 깊은 심연 속으로 들어가는 기분이 들었다. 환하게 웃는 네 얼굴이 보였다.

 

그 웃음에 닿으려 팔을 뻗으려는 순간, 탕- 하는 소리와 함께 트럭이 앞을 스쳐 지나갔다. 고개를 올려보니 네가 서 있던 그곳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쉬어지지 않는 숨을 고르며 바닥을 보니 검붉은 피가 아스팔트 위를 빨갛게 물들이고 있었다. 너에게 다가 가 네 이름을 나지막하게 불러보았지만 그 다정하였던 목소리는 돌아오지 않았다. 허무하게 너를 또 잃었다. 인사조차 하지 못한 채로 눈물이 앞을 가로막고 있는 순간 머리가 핑 돌기 시작하였다. 몸은 제대로 가눌 수조차 없었고 마치 구덩이에 빠지는 것 같았다. 겨우 몸부림을 치며 눈을 떠보니 익숙한 광경이 앞에 펼쳐졌다.

 

천장에 붙어있는 별 모양 형광 스티커. 핸드폰을 서둘러 확인하니 다시 그 날로 돌아와 버렸다. 몸을 일으키려 하자 어딘가 부서질 듯한 통증이 몰려왔고 옷을 들어보니 주먹만 한 멍 하나가 왼쪽 옆구리 쪽에 들어서 있었다. 이 상처는 무엇이고 왜 다시 이 날로 돌아오게 된 것일까. 분명 너는 죽었다, 그것도 눈앞에서.

 

 

짧은 탄식이 힘없이 흘러나오는 순간 깨달았다. 어리석은 인간 하나가 신의 노름 위에 발을 들였다는 것을. 언제 끝날지 모를 판에 발을 들였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앞이 막막하였다, 이 판의 해답이 무엇일지 감조차 잡히지 않았다. 호랑이 굴에 들어가도 정신만 차리면 된다는 생각에 숨을 깊게 골랐다. 이 판에서 알 수 있는 건 두 가지였다. 둘 중 하나는 산다는 것, 그리고 이 하루를 무사히 넘겨야 한다는 것. 차라리 목숨 바치고 너를 살릴 수만 있다면 그 무엇도 할 수 있었기에 이 판에 주사위를 잡기로 하였다.

 

 

두 번째 시도는 다른 방향으로 틀었다. 똑같이 너를 마중을 나가는 대신 그 차도 위에 대신 서 있는 것. 저 멀리서 오는 너를 기다리며 차도 위에서 서 있었다. 30분, 1시간 흘러도 머리칼 한 끗도 보이지 않았다. 이상한 느낌이 들자 전화 한 통이 텅 빈 차도 위를 가득 채웠다. 설마 하는 마음으로 전화를 받아보니 그 이상한 느낌의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여보세요, 긴급 연락망에 계셔서 전화 드렸어요. 여기 폰 주인분이 지금 교통사고가 났는데.. 하.. 이게 일단 얼른 오셔야 할 거 같아요.”

 

“.. 정확히 사고가 몇 시쯤 났나요...?"

 

“네? 아.. 한 11시 59분?쯤..”

 

아, 1분을 남기고 하루를 넘기지도 못 한 채 이렇게 또 죽어버렸구나. 마지막 순간이라도 함께 있으려 발을 떼는 순간, 눈이 떠지지 않을 정도의 빛이 앞을 가로막았다. 가슴은 무언 가에 눌린 듯이 답답하였고 막힌 숨을 겨우 뚫고 일어나자 더 큰 통증이 느껴졌다. 설마 하는 마음으로 고개를 들어 천장을 보았다. 그 천장에는 반짝이는 형광 별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또 돌아왔구나.

 

 

세 번째쯤에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무작정 옥상으로 뛰 쳐 올라갔다. 만약 먼저 희생한다면 네가 살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그냥 뛰어내렸다. 뛰어내리는 순간 세상은 새하얗게 변하였고 그 많던 차와 집들은 보이지 않았다. 세상은 오로지 하얀색으로만 가득 차 있었다. 드디어 미친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을 때 눈을 감았다 떠보니 다시 날로 돌아와 있었다. 세 번째 시도 끝에 한 가지를 더 알게 되었다. 먼저 죽으려 해도 안 되는 다는 것. 네 번째에는 일어나자마자 팔에 작은 칼자국을 3개 정도 새겼다. 배에 멍도 사라지지 않으니 이 칼자국들도 사라지지는 않았다. 그러나 얼마나 많은 시도를 하고 자국을 새겨야 할지는 모르겠다. 머릿속이 텅 빈 느낌이 들었고 팔에 올린 휴지는 핏방울들로 물들어 갔다.

 

나가려는 네게 별 짓거리를 다 해보았다. 네 앞을 가로막으며 나가면 안 된다고 소리를 쳐 보아도 오히려 너는 이상한 사람 취급을 하였다. 당연히 그렇게 보일 수밖에 없었다. 있는 사실을 그대로 이야기하여도 그만하자는 말과 함께 너는 밖으로 나섰고 따라잡으려 하자 눈앞에서 차가 지나갔다. 네가 있던 곳에는 핏자국들만이 들끓고 있었다. 바닥에 흥건한 피를 보아도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저 다시 그 날로 돌아 가 빨리 너를 살려야한다는 이기적인 욕심들로 뒤 덮여 있었다.

 

시도가 늘어날수록 왼쪽 옆구리에 있던 멍은 점점 커져갔다. 처음에는 작은 부분이 서서히 커지더니 50번째 시도쯤에는 가슴 부분까지 퍼져 왔다. 멍이 커지니 통증도 심하여 약통에 있는 약들을 입에 억지로 쑤셔 넣었다. 약을 삼키고 천장에 붙어 있는 스티커를 멍하니 쳐다보았다. 그러고는 생각했다, 만약 이 멍이 몸을 뒤덮는 날이 오면 너 대신 목숨을 바칠 수 있는 것일까. .. 아니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시간에 너를 구하는 다른 방법들을 세워야만 하였다.

 

시도를 얼마나 더 해 왔을까, 팔에 98번째의 칼자국을 새기는 순간이 와버렸다. 어느새 멍은 왼쪽 몸통 부분을 감싸고 있었고 허무하게 98번째 시도까지 끝이 나버렸다. 98번째 시도 동안 어처구니없이 네가 죽는 것을 봐야 하였고 얼굴에는 수많은 핏방울들이 튀겨 왔다. 98번째 시도까지 끝마치고 느낀 것이 하나 있었다, 네 죽음이 익숙해진다는 것. 죽음이 익숙해지는 것만큼 무서운 것이 있을까. 속이 울렁이기 시작하였고 억지로 삼켜왔던 진통제들이 내뱉어졌다. 언제까지 이 진통제들을 삼켜야 하며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에 굵은 눈방울들이 뚝뚝 떨어졌다. 그리하여도 마지막 순간에 웃는 네 얼굴을 보고 싶어 약을 삼키며 통증으로 가득한 몸을 이끌고나갔다.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99번째 시도의 칼자국을 팔에 미리 새겼다, 이 시도가 마지막이길 바라는 마음으로. 몸은 지칠 대로 지쳐 있었고 온몸이 가시넝쿨에 뒤 덮여 있는 느낌이 들었다. 정신도 온전하지는 않았다. 간신히 있는 힘을 짜내어 한 걸음씩 발을 옮겼다. 나가기 전 혹시 몰라 포스트잇을 한 장 떼 눈에 잘 보이는 곳에 붙여두었다 .

 

 

‘내 장례식에는 오지 마.’

 

 

저 멀리 환하게 오는 네가 보였다. 반길 새도 없이 남지도 않은 힘을 겨우 짜내어 한 걸음 발을 떼 앞으로 나아갔다. 머릿속에는 단순히 구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가득 찼고 무작정 너를 껴안아 들었다, 제 어떠한 통증이라도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으니 제발 너를 살라달라는 마음으로. 그러나 몇 분이 지나도 아무런 느낌조차 들지 않았다. 눈을 떠보니 품 안에서 네가 멀뚱거리며 쳐다보고 있었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드디어 수많은 시도 끝에 너를 살렸다는 것에 눈물은 막을 새도 없이 흘러나왔다. 너는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눈물을 닦아주었고 그만 좀 울라는 다정한 목소리에 사탕을 빼앗긴 어린 아이처럼 엉엉 소리를 내며 울어 버리고 말았다.

 

겨우 진정을 한 후에 늘 같이 걸었던 밤길을 걷기 시작하였다. 눈가가 빨개진 것을 보더니 너는 호탕한 웃음을 보이며 자기가 어디 가는 것도 아닌데 왜 그러냐고 하였다. 네 말에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이 고개를 살짝 저었다. 그저 온기가 가득한 네 손을 꽉 쥐기만 하였다. 어두운 밤하늘 아래에 세상은 우리 둘만 존재하는 것처럼 고요하였고 너는 여전히 사랑스러웠다. 뻔하디 뻔하고 진부한 이야기들을 늘어놓으며 걷다 반짝이는 별 하나가 뜬 곳 아래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너는 줄 게 있다며 잠시 주머니를 뒤적거리더니 손을 끌어당겨 가져갔다. 손 위를 보니 꽃들 사이에 끼어두었던 반지가 올려 져 있었다. 그 반지를 보자 머리를 얻어맞은 거 같은 느낌과 동시에 깨달았다, 이 모든 것이 현실로 이어질 수는 없다는 것을. 현실이라고 믿은 이기적인 욕심 하나 때문에 사실을 외면해버린 채 이제껏 그 수많은 시도 동안 너를 죽여 왔다는 것에 눈물이 무거워 고개를 들지 못하고 있자 너는 그 따스한 손으로 얼굴을 쓰 담아주었다. 그 따사로운 손길에 자연스레 고개를 파묻었다. 네 따스함이 뒤덮어 오자 통증들은 물 씻듯이 사라졌고 고개를 올려보니 그 끝에는 볼이 발그스레해져 눈물이 맺혀있는 네 얼굴이 보였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머뭇거리고 있자 네가 먼저 손을 맞잡아 주었고 입술 위로 포근히 다가 왔다. 너는 여전히 사랑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었고 손에는 온기가 가득하였다.

 

“형원아, 내가 네 장례식에 못 가서 다행이다.”

 

 

끝까지 다정한 네 목소리에 굳게 닫힌 눈을 치켜 올렸다. 눈을 뜨자 얼굴에는 파도들이 들썩여 숨을 쉬기 힘들었지만 겨우 몸을 일으켰다. 손 위에는 어여쁘게 반짝거리는 반지가 올려져있었다. 고개를 돌려 창밖을 보니 별 하나 없는 어두운 밤하늘만이 눈앞에 놓여 져 있었다. 얼마나 깊은 잠에 들었는지 모를 정도로 몸이 찌뿌둥하였고 걷자는 생각이 들어 밤 산책을 나섰다. 멍 때리며 얼마나 걸었는지 앞을 보니 익숙한 가로등 하나가 보였다. 아, 그곳에 왔구나, 사소한 이야기를 부질없이 속삭이며 따스한 손을 맞잡고 사랑스러운 얼굴을 작은 별빛 하나에 의존해 보았던 그 작은 별 아래의 길. 이제 더 이상 별빛을 비추어도, 가로등을 환하게 켜보아도 너는 그 자리에 없다. 눈을 지그시 감으니 여름밤의 선선한 바람이 주위를 감싸 왔다. 이 바람을 보내온 것이 너일까. 아님 네가 이 바람일까.

 

 

텅 빈 밤하늘에 덩그러니 놓인 나의 별아,

 

너는 나의 삶, 즉 인생이었다.

 

마지막까지 붙잡은 너의 손은 따듯하였고 바라 봐주는 눈빛에는 다정만이 가득하였다. 언젠간 다시 서로 마주 보며 손을 맞잡을 것이라는, 기약 없는 기다림을 혼자서 약속할 것이다. 나의 별아, 이 바보 같고 이기적인 마음을 용서해 주길 바라며 오늘도 내일도 나는 텅 빈 밤하늘을 향해 너를 희망하고 있다.

 

 

 

사계절을 몇 번이나 흘러 보낸 뒤 홀로 떠나는 한 달 여행을 시작하게 되었다. 떠나는 데에 별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그냥 단순히 새로운 곳에 가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기 에 떠나기로 결정하였다. 한 달 동안 머물 곳은 프랑스로 정하였다. 언젠가 가려 예전부터 계획해놓은 여행길이라 딱히 부족한 것은 없었지만 아쉬운 마음은 숨길 수 없었다. 첫날에는 머물 집에 짐을 풀어두고 집 근처를 구경하다 괜찮아 보이는 레스토랑에 들어가 음식을 주문하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멍하니 보았다. 둘째 날에는 관광 명소를 둘러보았다, 별 흥미가 없었지만 다른 사람들도 다 하는 것이니 안 하고 가기에는 조금 억울하여 구경만 하고 나왔다. 썩 나쁘지 않은 날들을 보내며 집 아래에 사는 사람들과 가까이 지내게 되었다. 여행 마지막 날이 다가오자 그 사람들은 같이 노는 겸 해서 마지막 날 이별 파티를 열자고 하였다. 거부해봤자 좋을 일도 없으니 그저 알겠다는 웃음으로 작은 대답을 보냈다.

 

눈 깜빡할 사이에 마지막 날이 왔다. 사람들과 모여 파티를 시작하였고 아는 얼굴도 있었지만 모르는 얼굴들도 꽤 있었다. 모르는 사람들은 가까이 지낸 사람들의 친구일 것이다. 그 사람들은 가까이 다가와 술을 권유하였지만 부담스러운 나머지 후다닥 베란다로 도망쳐 오는 수밖에 없었다. 기껏 마련해 주었지만 부담스러운 건 어쩔 수 없었나 보다. 도망치다 겨우 들고 나온 와인 한 잔을 홀짝이며 수많은 별들이 놓여 진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별이 하나밖에 없었지만 이곳은 별들의 행진이 이루어진 것 같았다. 별이 몇 개가 떴는지 의미 없는 숫자들을 하나하나 늘여놓기 시작하였다. 한 100개까지 센 순간 어디선가 익숙한 향이 코를 스쳐 지나갔다. 오랜만에 맡은 향에 웃음이 슬며시 나올 수밖에 없었다. 네가 월급을 처음 받은 날에 꼭 선물을 해줘야겠다며 사다 준 향수의 향이었기에 웃음이 지어졌다. 날씨가 선선하니 온도가 딱 적당하였고 걷기에 좋은 날씨였다. 이런 날씨를 네가 참 좋아하였는데. 잠시 생각에 잠겨 바닥을 찰랑이는 와인을 멍하니 보고 있는 순간 누군가 옆에서 말을 걸어왔다. 그 목소리를 듣자 찰랑이던 잔은 멈추어 잔잔한 기류만이 남았고 목소리가 들려오는 곳으로 고개를 틀었다.

 

 

“ Aimez-vous les étoiles? (별 좋아하세요?) ”

 

 

 

아, 신이시여.

 

어리석은 인간의 욕심을 들어주신 것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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