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Night Walk


밤 산책
지니 씀

 

 

    형, 이제 편의점인데 뭐 드실래요?

    어. 나 아이스크림 하나만. 

    네.

 

나른한 목소리로 답한 형원이 편의점 안으로 사라졌다. 현우는 형원의 뒷모습을 보며 또 저거 커피 먹고 잠 못자려구, 꿍실거렸다. 오늘만큼은 무엇을 먹어야겠다 굳이 말 하지 않는다면 형원은 항상 한 손에는 현우가 부탁한 음식, 한 손에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손에 들고 나오곤 했다. 지금쯤 피곤할때잖아요. 이유를 묻지도 않았는데 저 혼자 실실 웃으며 그렇게 말하던 것이 생각난다. 음료 종류는 아이스 아메리카노, 똑같은 편의점의 커피. 매번 먹고 싶은 게 달라지는 현우와는 달리 형원은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밤 산책을 거의 매일같이 다닌지도 어느 덧 2년이 지나간다. 

 

두 사람은 결별한 지 두 달 째다. 

 

 

 

 

밤 산책

 

 

 

 

사귀기까지 큰 고난과 역경은 없었다. 당연하지. 젊은 청년 둘이 마음 맞아서 잘 지내는 게(사귀는 게, 라는 말이 낯이 간지러웠다.) 뭐가 어려워. 현우는 머쓱한 듯 머리를 긁적이며 득달같이 달려드는 민간 연예 면 기자들을 상대하고는 했다. 시작은 그랬다. 누구 한 쪽이 진득하게 매달리지도 않았고, 다이나믹한 로맨스 소설의 도입부처럼 기가 막힌 오해를 하거나 운명처럼 마주치자 마자 사랑을 느끼지도 않았다. 익숙한 직장 속 자주 마주치는 동료가 다였다. 가까이 지내다 다른 감정이 피어나는 것이 어찌 이상한 일이겠는가. 설레는 감정이 울렁이며 일상 속에서 울컥울컥 올라오는 게 현우에게는 영 어색해서 그걸 벗어나고 싶었다. 현우는 그렇게 형원에게 고백했다. 

 

형원이 환하게 웃었을 때는 안심이 되었다.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이 기쁘다거나 귀에서 교회 종소리가 울리지는 않았고, 그냥... 굳이 비교하자면, 치과에서 입에 고인 피와 침을 석션으로 빨아들여주는 기분. 목에 잘 못 넘어가서 기침이 나올까 걱정하던 게 해소된 정도의 해방감이었다. 아슬하게 울렁이던 감정의 종착지가 생겼다. 이후로도 연애 자체에 특별히 바라는 건 없었다. 아쉬운 소리를 쏘아붙이거나 매달리지 않으니 상한 곳 없는 감정과 관계야 깔끔하고 늘 새 것 같았다. 우리의 연애는 구질구질했던 게 하나도 없었다. 

 

현우와 형원은 2주년을 두 달 남기고 자연스럽게 헤어졌다. 연애 중 구질하고 끈질겼던 일이 없었다는 소리는, 특별할 것도 하나 없었다는 이야기이다. 먼저 현우가 얘기를 꺼냈을 때 형원은 몇 번 현우를 만류했지만, 종국에는 그냥 놓아주었다. 끝이라고 갑자기 사람이 바뀌는 것도 아니고. 

 

그래. 이게 맞는거지. 그렇게 연애 하나가 저물어가는... 줄 알았는데.

 

    형, 저희 밤 산책 하던 거 있잖아요. 그것만이라도 계속 하면 안될까요? 

 

새벽도 아니고 오후 2시 경, 사람 정신 제일 멀쩡할 시간대에 뜬금없이 온 전화의 용건이 당황스러웠다. 내용인 즉슨, 연애 시절 매일 같이 하던 밤 산책을 같이 해달라는 것이 다였다. 매달리는 거 아니에요. 생각난 듯이 목소리가 덧붙어왔다. 스킨십 같은 것도 뭐, 당연히 안 하고... 말도 싫으면 안 걸게요. 형이랑 헤어지고 나서 산책을 안 했더니 머리는 피곤한데 이상하게 잠이 안 와요. 이미 며칠 적잖이 피로해본건지 잠꼬대하듯 웅얼거리는 목소리가 어떻게 다가왔을까. 형원아, 이거 매달리는 거 맞잖아. 우리 한 번도 서로에게 매달린 적이 없었잖아. 마지막까지 깔끔해야 하는 거 아냐? 단호한 말이 입 안에서 맴돌았다.

 

    언제까지 할 건데?

    형이 더 이상 같이 하기 싫을 때 까지만 해요.

    ... 그래.

 

그냥 현우는 딱 한 번만 구질해져보기로 했다.

 

 

 

 

    그럼 그렇지.

 

아이스크림을 건네는 형원의 다른 손에는 어김없이 커피다. 네? 입술을 삐죽이며 아이스크림을 까기 바쁘던 형원이 못 들은건지 목을 쭉 빼고 되묻자 현우는 웃고 말았다. 너는 잠 안 온다고 산책 나오는 거면서 커피를 마시면은 어떡하냐. 하마터면 나올 뻔한 잔소리도 목 뒤로 겨우 삼켰다. 처음 다시 만났을 때도 피곤에 쩔어있는 얼굴이 처량해 보여서 입구멍까지 싫은 소리가 밀려나왔었다.

 

어쨌든 현우는 한 번 이상한 일을 시작하고 나니 자꾸 안 하던 짓을 할 것 같은 느낌이었다. 이기적이게도, 내가 원하면 언제든지 끝날 수 있는 관계라는 게 생각 외로 편안해서 연애하던 시절보다 편안한 말이 툭툭 나오곤 했다. 형원이라고 다를 것은 없어보였다. 

 

    밤 산책 시간을 때우려고 운동을 시작했는데, 늦은 시간에 혼자 미친 듯 강도 높은 운동을 하자니 누가 봐도 얼마 전에 헤어진 사람 같아 보여서 운동은 낮 시간으로 옮겼어요. 

    그런 말을 헤어진 당사자 앞에서 해도 되는거냐? 

 

형원이 몸을 수그리면서 끅끅 웃었다. 

 

    너 운동을 꾸준히 한다. 그래도? 옛날에는 운동이 세상에서 제일 싫다매.

    몸이 예전 같지가 않더라고요. 한 살 한 살 먹는데 체력이 스무 살 때랑 너무 달라요. 저 지금 완전 어르신 체력.

    아. 나는 산 송장이다?

    아니힣. 그런 말이 아니죠.

 

실없는 소리를 하면서 하염없이 걷다보면 시내, 골목, 공원을 지나 어느새 주택가가 나온다. 오늘의 밤 산책도 끝나간다. 주택가에 들어서자 마자 먼저 나오는 형원의 집 대문에서 현우는 형원의 등을 툭 치며 간다, 짤막하게 인사했다. 몇 걸음 떼지도 않았는데 형원의 목소리가 다시 발목을 잡았다.

 

    현우 형.

     어엉.

    자고 가요. 

    됐어. 

 

저건 속도 없는지. 장난도 짖궂게 쳐. 어이없다는 듯 돌아본 현우의 눈에 형원이 다시 들어왔다. 

 

    수작 아닌데. 자고 가요. 늦었는데.

    ...

 

어슴푸레한 가로등 불빛 아래 잔잔히 웃는 형원을 눈에 담자, 또 다시 가슴이 크게 울렁였다. 밤의 산책은 이런 게 불안했다. 꾹꾹 눌러놓은 모든 말들이 갑자기 고작 이런 시간에, 얼굴을 마주했다고, 불쑥 머리를 디밀고 치고 나온다. 광활한 초원 위에 서있다가 갑자기 천길 낭떠러지 앞으로 밀려난 기분이었다. 갈 수 있는 곳이 없는 감정은 안정에 익숙해져 있어서, 조금만 흔들어도 왈칵 쏟아져버릴 것 같았다. 

 

    형원아.

    네.

 

너랑 같이 사는 미래를 생각해봤어. 자고 일어났을 때 옆에 네가 있는 게 너무 좋았어. 매일 행복하고 좋았는데 혹여나 너는 아니게 될까봐. 네가 나를 더 오래 좋아하게 할 재간이 없어서 그냥 별 일 없기만을 바랬어. 전부 피하고 숨었어. 나는... 느슨해지고 녹슬어버린 자물쇠를 겨우 제대로 잡았을때는 이미 말 한 마디가 삐걱거리며 드러난 후였다.

 

    진짜로 너 좋아했어.

 

현우는 형원의 대답도 듣지 않고 빠르게 뒤돌아 걸어갔다. 저를 부르는 목소리가 몇 번 들렸지만, 따라오는 발걸음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현우는 쓴 모자를 더 푹 눌러쓰고 가로등 없는 골목으로 들어가 벽에 기대 숨을 몰아쉬었다. 망했다. 이렇게까지 찌질할 생각은 없었다. 

 

뭐가 깔끔하고 구질구질한 것이 없는 연애인가. 가능하다면 정말 그 사람과 오랫동안 잘 지내고 싶어서. 피하고 외면하고 결국 곪아터진 걸 용케 가리고 있었던 거지. 현우는 제 손에 얼굴을 묻고 눈을 감았다.

 

 

 

 

형원은 솔직히 현우와 있는 게 편안했다. 연애가, 학생 적처럼 유치하지도 않고 사회 초년생 시기만큼 확 타오르고 확 사그라들지도 않았다. 얼굴 반반한 사람이 안정적인 연애 한 번 안 해봤겠나 하면은 그건 아니지만, 또 그 중에서도 단연코 안정적이었다. 그냥 현우라는 사람이 너무 성정이 순해서 그런 줄 알았다. 싫다, 억울하다, 속상하다, 소리도 잘 않고 오해로 인해 남 같으면 속이 새까맣게 타들어갈 상황에서도 속앓이 않고 담백하게 바로 물어서 싸움 한 번 없이 문제를 해결했다.

 

친근함이 익숙해서 형원이 현우에게 소홀해졌던 적은 단연코 한 번도 없다. 현우는 제 연애에 구질구질함도, 특별함도 없다고 생각했다느니 하지만 그건 자기 얘기고. 형원은 현우의 특별한 모습들을 찾아서 사랑했다. 혼자 앉아있다가 자기가 들어오는 걸 보면 좋다고 웃는 웃음도 좋았고 애정 섞인 걱정도 좋았다. 밤 산책 내내 제 말을 듣다가 음, 응. 어. 추임새를 마디마디 낑겨넣는 것도 좋았고, 자기 집 쪽으로 돌아가는 법 한번 없이 매번 곧이곧대로 자기 집 먼저 데려다주며 인사하는 것도 좋았다. 형원을 사랑해서 나오는 현우의 행동들은 다정하고 잔잔했다. 일상 속에서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찾듯이, 현우의 작은 반짝거림은 더욱이나 형원도 모난 곳 없는 특유의 다정함으로 현우를 사랑하게 만들었다.   

 

형원이 점점 더 현우를 알아가고 사랑하게 될 수록 현우가 씹어삼키는 말의 갯수를 헤아리게 되었다. 자신의 잘못에 대한 질책도 아니고 섭섭한 것도 분명 아닌데... 할 말 있으면 해요, 형. 어, 무슨 말? 다 하고 있는데. 그렇다기에 눈썹을 찌푸리고 한참이나 커피 컵을 이리저리 찌그러뜨렸다 폈다가 하다가 입 한번 벙긋이고 괜히 머쓱해서 빨대를 입에 무는 게 눈에 뻔히 보이는 데 아니라니 할 말도 없고. 단순히 과묵해서, 무던해서 감정이 날뛸 일이 없는가 싶었는데 그냥 자기 자신한테 둔해서 자기 속에 말을 쌓아두는 줄도 모르고 밀어넣는 것 같았다. 형원은 다 녹슬어서 언제 뜯어질지 모르는 자물쇠가 미어 터질 것 같이 꽉 찬 낡은 창고의 철문을 버티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우가 헤어지자고 먼저 얘기를 꺼낸 날에도 형원은 화내거나 울지 않았다. 나 아직 좋아하잖아요. 손을 잡으면서 물었을 때 미안하다는 말도 아니라는 부정도 없이 꾹 다문 입에서 우습게도 형원은 조금 안심을 얻어 결국 손을 놓아주었다. 형원에게 두 사람은 서로 헤어졌던 적이 하루도 없었다. 머리를 싸매고 잠도 안 자고 만날 핑계거리나 생각하던 형원은 그거 하나로 며칠이나 밤을 새서 얼굴도 목소리도 피곤에 쩔어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주사위 숫자로 따지면 1, 아니, 윷의 빽도 수준으로. 결과적으로 전화의 첫 마디가 너 피곤해? 였으니 말 다했지. 그래도 오히려 그게 동정심을 불러일으켰는지 형원이 밤 산책 얘기를 꺼냈을때 현우는 흔쾌히 그러마 대답했다. 전화를 끊자마자 형원의 입가에 웃음이 비식비식 밀려나왔다.

 

그래, 이게 맞는거지. 우리의 연애가 이렇게 저물리가 없었다. 

 

 

 

 

형원은 현우가 사라진 방향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집 안으로 들어갔다. 불 하나 켜져있지 않은 집은 한 여름인데도 불구하고 적막하고 서늘했다. 

 

두 사람은 만나기 시작한지 일주일도 안 되어서 서로의 집에 자연스레 드나들었다. 어쩌다 상대의 어머니를 만나면 넉살좋게 인사도 하고 말도 붙이고, 집안일 할 만한게 보이면 손이 가기도 했다. 연애 초반의 연인이 결혼한지 5년은 된 부부처럼 그렇게 살았다.  

 

새로운 것에 자주 도전하는 편이 아니었다. 익숙함에 안주하는 여타 보통의 사람들 같을 뿐이다. 현우와의 연애도 새로웠지만 오히려 익숙했던 친근함이 들어서 좋았다. 간지러운 사랑 고백을 주고받지 않아도, 매일 밤 시간이 부족해 안달나지 않아도 늘 함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지하게 하는 날 좋아한다는 소리를 처음 들었는데. 

 

형원은 그래서 어쩐지, 처음으로 불안해졌다. 

 

 

 

 

밤 산책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냥 거절했어야 했다.

한 번 열린 생각이 도저히 정리가 되지 않고 감당할 수 없이 밀려나왔다. 다른 것에도 이렇게 임하는 성격이 아니다. 어떤 일이든 마음 고생이 어찌 되든간에 묵묵히 감당할 수 있었고 도저히 아니다 싶으면 적성이건 뭐건 됐고 관둬 볼 깡단도 넘쳐난다. 그냥 채형원 한 명 사랑했는데, 사랑할 재간이 안되어서 쓰지도 않던 염려를 전부 쏟아부어 이 사단이 났다. 골목에 얼마나 쭈그려 앉아있었을까, 현우는 손에 묻고 있던 얼굴을 들고 무거운 몸을 겨우 일으켰다. 

 

   집 이 쪽 아니잖아요.

 

바람 빠지는 듯한 목소리가 들렸다. 한동안 굳은 현우가 주춤거리며 고개를 들자, 숨을 고르면서 담벼락에 삐딱하게 기대고 있는 형원이 또 웃어보였다. 어떻게 여기까지 경보로 숨도 안 쉬고 오지. 나는 골목 골목 다 찾아보면서 와서 그런가...

 

   자고 가라니깐요.

   형원아, 아까 했던 이야기,

 

형원은 기다렸다는 듯이 말 끝을 팩 채어갔다. 

 

  왜요. 마지막이니까 그냥 해본 말이라고 하려고? 아니면, 잊으라고?

 

굳은 목소리로 말하던 형원이 손을 뻗어 동그랗게 눈을 뜨고 할 말을 잃은 현우의 어깨를 잡고 고개를 저었다. 현우는 어깨에 얹어진 손의 미세한 떨림을 느낀다. 말도 안 해주고, 겨우 한 마디 하고 대답도 안 듣고. 그러지 마요. 형, 형이랑 나랑 몇 번 싸운다고 헤어질 사람들 아니잖아요. 재미없어도 상관없고요. 구질구질하면 또 어때요. 그리고... 

 

형원은 한참이나 엎질러진 현우의 생각 위로 제 말을 쏟았다. 정제되지 않은 문장이 눈물 떨어지듯 후두둑 불규칙적으로 띄엄띄엄 떨어진다. 말을 하는 와중에 감정이 북받혀 눈물이 날 것 같아 주먹으로 눈을 꾹꾹 누르는 형원과는 달리 현우는 시종일관 가만히 서서 모든 이야기들을 경청하고 있었다. 현우의 어깨에서 손을 내려 그의 주먹 쥔 손을 대신 펼쳤다. 무얼 그러쥐고 있던 건지 꽉 쥐어 피가 쏠린 손바닥 위로 제 큼지막한 손을 겹쳐잡았다. 

 

    현우 형만큼 특별한 사람 없었어요. 헤어지고 싶지 않아요. 아직 뭘 망치지도 않은 손현우 씨 말고, 채형원만 봐줘요. 

    ...

 

형원은 불안했다. 저물 연애가 아닌데 좋아한다는 고백을 듣자마자 이상하리만치 그랬다. 좋아한다고 말하는 현우가 꼭 발목에 적힌 쪽지로 소식을 전하고 떠나는 새같이 느껴져서 불안했다. 모든 것이 거꾸로 돌아가는 것만 같았다. 우리는 헤어지고 나서야 서로에게 구질구질해지고, 찌질해지고, 붙잡는다. 온갖 형태의 미련과 속상함, 애정으로 잔뜩 범벅 된 마음을 서로에게 드러내고 나서야 현우와 형원은 다시 눈을 마주했다.

 

    나 좋아해요?

    응.

    나도 좋아해요.

    응.

    할 말 있으면 해요.

    어엉, 사랑해.

 

현우가 환하게 웃었을 때는 안심이 되었다. 

형원의 말로는 그 때,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았고. 종소리도 좀 들리는 것 같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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