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Night Walk


암야행
장미래 씀

 

 

으레 더위는 두 시가 넘으면 한풀 꺾여 느슨하게 구는 법이었으나 오늘은 그렇지 않았다. 극성스러운 태양열에 익을 대로 익은 아스팔트가 아지랑이를 허공에 쏘아 올렸다. 휴게소 건물의 그림자와 내리쬐는 태양이 만들어낸 명도 대비가 컸다. 건물 근처에 줄지어 선 녹색 파라솔에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그러나 모든 것에는 예외가 있는 법이었다. 휴게소와 가장 가까이 있는 파라솔 아래에 남자 두 명이 앉아 있었다.

 

“아, 더워 죽겠다.”

 

갈색 체크 남방을 걸친 남자가 의자에 몸을 기댔다. 큰 눈과 짙은 쌍꺼풀, 높은 콧대, 도톰한 입술의 조화가 아름다운 남자였다. 얼핏 보면 예쁘장해 보여도 옷으로 가려지지 않는 근육이 남성스러움을 자아냈다. 그는 휴대폰 액정을 몇 번 두드려 사진 몇 장을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타임라인 최상단에 남자가 올린 사진이 떴다. 남자는 화면을 옆으로 밀어 찍은 사진을 확인하고 자신의 프로필을 클릭했다. 계정을 만든 지 꽤 됐으나 프로필로 설정할 만큼 마음에 드는 사진이 없어 아직도 공란이었다. 동그라미와 타원만 있는 기본 프로필 아래에 적힌 이름은 ‘채형원’이었다.

 

“많이 덥냐.”

 

형원을 마주 보고 앉은 남자는 흰 티셔츠에 옅은 색의 청바지 차림이었다. 그는 다리를 꼬고 있었는데 세월의 흔적이 묻은 흰색 캔버스화를 신고 있었다. 옷차림은 평범했으나 그의 덩치는 보통 성인 남성과 사뭇 달랐다. 넓은 어깨와 가슴팍이 눈에 띄었고 반팔 소매가 팔뚝에 빈틈없이 들러붙어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았다. 두꺼운 몸과 달리 얇은 눈매와 그 아래에 잡힌 애교살, 높은 콧날과 달리 동그란 콧망울, 도톰하고 가로가 짧은 입술이 귀여운 인상을 줬다. 그 남자는 형원을 보다가 슬쩍 웃고 앞에 놓아둔 지갑을 챙겼다. 그 옆에 카드 한 장이 있었는데 중심부가 굽어있고 겉면이 얼룩덜룩했다. 카드 왼쪽 하단에 새겨진 ‘SON HYUN WOO’가 파라솔이 미처 가리지 못한 빛을 받아 희미하게 빛났다. 현우는 카드를 단지갑 안에 대충 쑤셔 넣었다.

 

“네, 조금요.”

“커피만 가지고 얼른 들어가자.”

“네에.”

 

햇빛을 가리고 있는 파라솔이 그럭저럭 제 기능을 하고 있어도 더위를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형원의 이마에서 땀이 미끄러졌다. 바람이 통하지 않는 바지 안에 갇힌 열기가 옷 안을 빠져나오지 못 해 난리법석이었다. 형원은 자세를 고쳐 바르게 앉아 휴게소 구석에 있던 팜플렛으로 부채질했다. 더운 바람이 형원을 덮쳤다. 배로 더워졌다. 형원이 팜플렛을 신경질적으로 테이블에 내려뒀다. 손바닥과 나무 테이블이 마찰해서 나는 소리가 컸다. 형원은 끈적한 양념으로 범벅된 종이 용기와 나무 꼬챙이를 정리했다. 이따 커피를 가지러 가는 김에 전부 버릴 생각이었다.

 

“너 커피 받고 바로 차로 올래?”

“아뇨, 그냥 같이 가요.”

“넌 내가 그렇게 좋냐?”

“네에? 아이, 아니, 뭐 무슨 그런 걸 다 물어본대.”

“그냥?”

 

예상치 못한 질문에 말을 더듬는 형원과 달리 현우는 어깨를 으쓱이고 웃었다. 현우가 테이블 오른쪽 끄트머리에 온갖 과자로 가득 찬 비닐봉지를 당겼다. 그 아래에 깔려 있던 얇은 책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형원이 고개를 모로 기울이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책자는 휴게소 구석에 비치된 것이었으나 처음 보는 종이가 그사이에 끼어 있었다. 모서리가 닳아 뭉툭해진 종이 위로 현우의 필체가 보였다.

 

“너 눈 쏟아지겠다.”

 

현우가 말을 던졌다. 형원은 억지로 입꼬리만 올려 웃었다. 괜히 훔쳐보다 들킨 기분이었다.

 

“그럴 리가요.”

 

형원이 아래로 눈을 깔았다. 이미 정리가 끝난 지 오래 전인데도 두 손이 허공에서 분주하게 움직였다. 짙은 색 눈동자가 오른쪽으로 쏠렸다가 원위치로 돌아왔다. 고개를 들었다. 현우와 눈이 맞았다.

 

“그럼 커피 가지고 여기로 올래? 나 잠깐 여기서 통화 좀 하고 있을게.”

“누구랑요?”

“팀장.”

“아, 휴가 써도 자꾸 그 뭐냐…, 거 일 시켜요?”

“그러니까 말이야.”

 

현우의 목소리에 짜증이 얕게 섞였다. 하기야 아무리 성격이 좋아도 그 인간 밑에서 일하면 어쩔 수 없었다. 물론 형원은 그 팀장을 한 번도 본 적 없었다. 그러나 현우가 싫은 티를 내는 걸 보면 그 새끼는 분명 인간말종일 것이다. 카페 진동벨이 울렸다. 형원은 테이블 위에서 죽어라 몸부림치는 놈을 잡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얼마 되지도 않는 거리인데도 형원은 막막했다. 통행을 불허하듯이 내리쬐는 태양을 이길 용기가 나지 않았다.

 

“일단 갔다 올게요.”

“어.”

 

파라솔을 벗어나자마자 태양열이 형원을 예리하게 훑고 지나갔다. 얼굴이 사정없이 구겨졌다. 손날로 차양을 만들어 햇빛을 가렸다. 드라마틱한 효과는 없었으나 안 하는 것보단 나았다. 형원은 왼손에 있는 손목시계를 확인했다. 현재 시각은 3시 40분. 대략 2~30분 전에 도착해서 밥과 간식까지 먹은 것 치고 이른 시간이었다. 커피를 들고 출발하면 1시간 내로 목적지에 도착할 것이다. 그런데 거기가 어디더라…. 잘 기억나지 않았다. 어제 잠을 못 자서 그런가. 형원은 더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내비게이션만 보고 가면 될 일이었다. 괜히 손목에 찬 시계를 한 번 더 보고 웃었다.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모습이 아름다웠다. 보고만 있어도 기분이 좋았다. 형원에겐 이 시계보다 더 의미 있는 것은 없었다.

 

“와, 형. 이거 진짜 예쁘다.”

“마음에 들어?”

 

형원은 현우가 채워준 손목시계를 이리저리 둘러봤다. 창가에 반쯤 쳐진 블라인드 사이를 뚫고 들어온 햇빛이 시계에 닿았다.

 

“네, 완전요. 이거 개비싼 거 아녜요?”

“딱히?”

 

현우가 웃으면서 턱을 괬다. 그의 손목에도 똑같은 시계가 있었다. 방금 형원이 채워준 것이었다. 형원은 두 시계를 번갈아 보다가 소리 내어 웃었다.

 

“아, 거짓말. 때깔이 장난 아닌데? 얼마 줬어요?”

“어…, 글쎄.”

 

형원은 전부 티가 났다. 특히 좋으면 더더욱 그랬다. 그런 형원을 지켜보던 현우가 눈을 얇게 접으면서 웃었다. 형원의 물음에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며 사뭇 진지하게 고민했다. 현우도 전부 티가 났다. 다 알면서 모르는 척하거나 거짓말을 할 때 특히 그랬다.

 

“한 100원?”

“아, 이 형 또 이러네.”

 

김빠진 형원이 카페 의자에 등을 기댔다. 아마 현우는 죽어도 말하지 않을 것이다. 형원은 그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으므로 더 묻지 않았다.

 

“나만 받긴 좀 그러니까아…. 어어……, 여행 끝나고 나도 뭐 하나 사줄게요.”

“얌마, 됐어.”

“대학원생도 돈 있거든요?”

“하하.”

 

현우는 턱을 괴던 손을 내리고 얼굴만 내밀어 빨대 끝을 물었다. 커피가 중력을 거스르고 올라와 현우의 입안으로 직행했다. 정해진 목적지를 향해 달려가는 속도가 빨랐다. 유리컵 안에 있는 얼음이 커피가 빠져나길 기다렸던 것처럼 달그락대며 아래로 움직였다.

 

“아무튼, 그런 줄 알아요. 저랑 약속해요. 내 선물 무조건 받겠다고.”

 

싫다고 하지 마요. 그런 거 없어. 형원은 현우가 대꾸하기 전에 말을 덧붙였다. 달력 어플을 켰다. 다음 주 목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체크해둔 일정에 먼저 시선이 갔다.

 

현우 형과 여행.

 

다른 것은 일절 적어두지 않았다. 오로지 그를 위해서 비워둔 시간이었다. 그건 현우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형원은 머릿속으로 계산했다. 지금 진행 중인 산학 프로젝트가 끝나면 어느 정도 페이가 들어온다. 오늘을 기준으로 2주 뒤면 된다. 어차피 모아둔 돈도 있으니까 한 번 무리해도 괜찮았다.

 

“무리하지 말고. 뭐든.”

“형도요.”

 

현우가 형원의 팔뚝을 주물렀다. 형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끄덕이기만 했을 뿐 듣진 않았다. 어차피 현우도 형원의 말을 그다지 잘 듣는 편이 아니라 상관없었다. 사랑하는 만큼 해주고 싶은 건 당연한 처사 아닌가.

 

손에서 진동벨이 요동쳤다. 형원은 그제야 정신이 들었다. 물론 정수리에 쏟아지는 햇빛도 한몫했다. 긴 다리로 카페까지 뛰었다. 단걸음에 도착한 형원은 카운터에 놓인 아이스 아메리카노 두 잔을 쥐었다. 감사합니다. 형원은 피로에 찌든 직원에게 형식적으로 인사하고 몸을 돌렸다. 저 멀리에 있는 현우가 보였다. 통화를 일찌감치 끝냈는지 펜을 들고 무언가를 쓰고 있었다. 분명 아까 봤던 그 종이일 것이다. 직감이 형원에게 속삭였다. 하지만 그게 중요한가? 형원은 자기 자신에게 되물었다. 요즘 현우는 그 좆같은 팀장 때문에 자질구레한 일을 도맡은 이후로 펜을 쥐고 살았다. 이번도 예외는 아닐 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형원은 가슴 한구석이 불편했다. 현우는 지금껏 형원에게 아무 것도 숨긴 적이 없었다.

 

‘말 못 할 사정이 있겠지.’

 

형원은 쉬이 단정 짓고 극악무도한 햇빛 아래로 발을 내딛었다. 옷 안에 열기가 그득그득 찼다. 빨리 차로 들어가서 에어컨이나 틀고 싶었다. 형원이 잰걸음을 했다. 인기척을 느낀 현우가 형원을 바라보며 웃었다. 분주히 글을 써내려가던 손이 멈췄다. 현우는 종이를 책자 안에 끼워두고 비닐봉지를 챙겼다. 형원이 현우 앞에 도달했다. 현우는 이미 곧바로 움직일 준비가 끝난 상태였다. 손에 쥔 비닐봉지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파라솔 밖으로 아예 나온 것까지 더할 나위 없었다.

 

“형, 저 왔어요.”

“어, 그래. 이제 갈까?”

 

현우가 하품하고 기지개를 켰다. 현우는 형원이 가져온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건네받았다. 커피가 생명수 같았다. 빨대를 물고 몇 번 홀짝이자 일회용 컵이 바닥을 드러냈다. 형원과 현우는 차가 있는 방향으로 걸었다. 휴게소 주차장에는 차가 몇 대 없었다. 아무리 성수기라도 지금은 목요일 오후였다. 형원은 현우가 들고 있는 비닐봉지 손잡이를 쥐었다. 현우의 손에 악력이 들어갔다. 그러나 형원은 가볍게 무시하고 현우가 든 비닐봉지를 뺏다시피 채왔다. 그래야 현우가 적은 것을 잠깐이라도 훔쳐볼 수 있을 것 같았다. 현우는 별수 없이 형원에게 비닐봉지를 내어줬다.

 

“형, 이번엔 제가 운전할게요.”

형원이 손에 쥔 봉지를 가볍게 흔들면서 말했다. 현우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어제 너 그 교수 때문에 밤샜다며.”

“나 괜찮아요. 형 너무 오래 운전했어.”

“아냐, 어차피 얼마 안 남았으니까 내가 할게.”

“아, 오늘 왜 이렇게 신세만 지는 거 같지?”

 

형원의 입술이 오리마냥 비죽 튀어나왔다. 현우가 소리 내서 웃었다. 더위는 여전히 두 사람을 강타하고 있었으나 현우의 웃음은 쾌활했다. 차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현우는 투덜대는 형원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토닥이는 다정한 손길이 이어졌다.

 

“좀 져라. 그래도 돼.”

“나 참. 알겠어요.”

 

결국 형원은 현우를 거절하지 못했다. 따지고 보면 져준 것에 가까우나 형원은 승패에 연연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형원은 아무래도 좋았다. 현우 옆에 영원히 머무를 수만 있다면 몇 번이고 질 수 있었다. 형원은 감히 그렇게 단언했다. 아침에서 낮이 되고, 낮이 지나면 저녁이 되는 것과 같은 이치였다. 형원은 현우의 뜻대로 주차한 차의 오른편으로 갔다. 차는 180이 훌쩍 넘는 두 남자와 비슷한 높이였다. 형원이 조수석 문을 열자마자 싸구려 방향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술에 잔뜩 취한 어느 날 밤, 길거리에 놓인 뽑기에서 만 원이나 꼬라박고 뽑은 하트 모양 방향제였다. 처음에는 인공적인 꽃향기가 역겨웠으나 지금은 그럭저럭 참을 만했다. 두 남자가 의자에 앉으면 백미러에 매달린 방향제가 좌우로 흔들렸다. 얇은 실에 의존하고 있는 꼴이 아슬아슬해서 금방이라도 끊어질 것 같았다. 그 실조차도 빨간색이라 촌스러움의 극치를 찍고 있었다. 형원은 의자에 몸을 기대고 안전벨트를 맸다. 운전석과 조수석 사이에 있는 콘솔박스에 이미 얼음만 남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꽂아 넣었다. 안에 넣어둔 잔돈 때문에 일회용 컵이 뒤로 기울었다. 대충 헤아려보면 천 원 정도는 될 터였다. 언젠가 날 잡고 싹 치우면 될 일이므로 형원은 개의치 않았다. 대신 방금 사 온 과자를 꺼내는 척 비닐봉지 안을 뒤졌다. 마음 같아서는 현우가 쓰고 있었던 종이를 꺼내고 싶었다. 그러나 현우는 형원과 지나치게 가까이 있었다. 섣부른 호기심은 관계를 망치는 법이었다. 결국 형원은 빠르게 포기하고 가장 눈에 띄는 과자를 하나 꺼냈다. 나머지는 나중에 먹을 심산으로 뒷좌석에 던졌다. 안 그래도 챙겨온 짐들이 부대껴 너저분한 곳에 과자가 잔뜩 담긴 비닐봉지가 쌓였다.

 

“형, 피곤하면 말해요.”

“어.”

 

현우는 한 칸 남은 콘솔박스에 커피를 끼워 넣고 안전벨트를 맸다. 시동이 걸렸다. 형원은 휴대폰 액정을 무의미하게 두드렸다. 일순 형원의 호흡이 멈췄다. 피곤함에 절어 반쯤 감기고 있었던 눈이 쏟아질 기세로 커졌다. 손톱을 세워 파랗게 빛나는 액정을 두드리다가 전원 버튼을 눌렀다. 화면이 점멸됐다. 형원은 다시 버튼을 눌러 화면을 밝혔다. 변한 것은 없었다.

 

지금 시각은 3시 40분.

 

휴게소 식당에서 봤던 시각과 동일했다. 이런 일은 있을 수 없었다. 분명 여기까지 오는 데에 족히 10분은 걸렸을 것이다. 형원은 손목시계를 확인했다. 시곗바늘이 3시 40분에서 더 나아가지 못한 채 몸부림치고 있었다. 더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장애물이라도 설치해둔 것 같았다.

 

“너.”

 

현우가 형원의 사념을 깼다. 형원이 현우를 응시했다. 현우는 양손으로 핸들을 붙들고 있었다. 심지어 팔뚝에 힘이 들어가 그 위로 솟은 핏줄이 선명했다. 형원은 순간 현우에게서 이질감을 느꼈다. 형원이 아는 현우는 핸들을 한 손으로 잡는다. 현우가 딴 사람처럼 느껴졌다. 현우는 그런 형원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얼굴을 푹 숙인 채 앞만 노려봤다. 형원은 현우의 시선 끝을 따라 눈길을 돌렸다. 아무것도 없었다. 고작 해봐야 주차된 차들과 사람 몇 명만 보일 뿐이었다.

 

“네? 앞에 뭐 있어요?”

“꽉 잡아.”

“갑자기 왜ㅇ….”

 

형원의 말이 공중으로 분산됐다. 현우가 액셀러레이터를 세게 밟은 탓이었다. 현우의 오른 다리에 힘이 바짝 들어가 바지가 터질 것 같았다. 왼쪽을 가리키고 있던 계기판의 바늘이 급격하게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자동차 바퀴가 신경질적으로 땅을 긁어내리며 바삐 전진했다. 백미러에 달린 방향제가 엉망으로 흔들려 시야가 어지러웠다. 차가 쏜살같이 휴게소를 벗어났다. 형원의 뒤통수가 차 시트에 바짝 붙어 엉망으로 눌렸다. 형원 앞으로 지나치는 풍경이 빨랐다. 방금 먹은 음식들이 배에서 요동치고 있음을 절절히 느꼈다. 구역감이 턱 끝까지 올라왔다.

 

“형, 지금 뭐하는….”

 

형원은 구역감을 겨우 목 뒤로 넘기고 볼멘소리를 했다. 그러나 현우는 앞만 보고 있었다.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사람 같았다. 짙은 눈썹 사이가 형편없이 구겨져 있었고 관자놀이와 광대, 패인 볼 위로 굵은 땀이 흘렀다. 땀방울의 종착점은 턱 끝이었다. 땀이 아래로 떨어졌다. 낙하한 땀방울이 형원의 가슴 한구석에 파동을 일으켰다. 파동이 불안을 키워갔다. 뭔가 잘못된 게 틀림없었다. 현우가 액셀러레이터를 밟은 발에 힘을 더 실었다. 엔진이 크게 울부짖었다. 형원은 겨우 차에 달린 손잡이를 잡고 몸을 창문 쪽으로 기울였다. 일(一)자로 쭉 뻗은 도로 끝에 왼쪽으로 꺾인 커브가 보였다. 지금 꺾지 않으면 이대로 울타리를 뚫고 강에 빠질 것 같았다.

 

“아, 형!! 저기, 미친, 이러다가 우리 죽어요!!!”

 

형원이 절규에 가까운 비명을 질렀다. 현우가 핸들을 힘껏 돌렸다. 차체가 왼쪽으로 기울어 시야가 비뚤어졌다. 도로를 사정없이 할퀴는 자동차 바퀴 소리가 귀를 찢었다. 바닥에 남은 궤적이 짙다 못해 까맸다. 형원은 손잡이를 잡고 있던 팔이 떨어질 것처럼 아팠다. 그러나 버티지 않으면 몸이 현우에게 붙어 운전에 방해될 게 뻔했다. 형원은 손잡이가 생명줄이라도 되는 것처럼 온 힘을 다해 잡았다. 이 상황을 타개하려면 뾰족한 수가 필요했다. 형원의 눈동자가 좌우로 분주하게 움직였다.

 

[과속 단속 지역. 속도를 줄여주십시오.]

 

속도를 줄여주십시오. 속도, 속도를, 속도를 줄여, 주십시오. 내비게이션이 똑같은 말을 앵무새처럼 지껄였다. 화면이 붉은색 셀로판지를 덧바른 것처럼 붉게 변했다가 돌아오기를 반복했다. 반복적인 기계음이 신경질적으로 울렸다. 형원은 겨우 내비게이션이 출력하는 것들을 훑었다. 형원의 입에서 탄식에 가까운 신음이 나왔다. 그리고 눈을 의심했다. 명확한 지명이 나와야할 곳이 전부 ■■■으로 점철되어 있었다. 화면이 빠른 속도로 새까맣게 물들어갔다. 더더욱 믿을 수 없었던 것은 우측 상단에 적힌 속도였다. 현재 220km/h. 말도 안 되는 수치였다.

 

“혀, 형, 형, 제, 제발, 형!!!”

 

형원이 현우에게 고함쳤다. 현우는 형원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핸들만 붙잡고 있었다. 형원은 도무지 현우가 이해되지 않았다. 지금의 현우는 누군가에게 쫓기는 것 같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달릴 이유가 없었다.

 

콰앙!

그 순간, 형원의 뒤에서 출처가 불분명한 굉음이 났다. 형원은 백미러로 차 뒤편을 살폈다. 네모나고 좁은 거울에 비치는 세상은 형원이 아는 것과 달랐다. 방금까지 밝았던 하늘이 검게 물들어 있었다. 두 사람이 지나친 도로의 아스팔트에 금이 갔다. 순식간에 파편으로 변모해 으스러졌다. 그 길은 차를 집어삼키려고 드는 혓바닥처럼 보였다. 도롯가의 울타리가 송두리째 뽑혀 뿌리를 드러냈다. 형원은 남은 손으로 차창을 내리는 버튼을 흠씬 두들겨 팼다. 벌어진 창틈 사이로 바람이 스며들어와 형원의 얼굴을 첨예하게 후려갈겼다. 차체는 여전히 현우가 핸들을 꺾는 방향에 따라 휘청댔다. 형원은 완전히 내려간 창틀을 움켜쥐고 목을 창밖으로 뺐다.

 

“씨발.”

 

형원의 입에서 욕지기가 절로 나왔다. 도로 옆을 따라 흐르던 강가도 형원이 알던 것과 달랐다. 힘차게 흐르던 강물이 색을 잃어 검게 변해 있었다. 근처의 나무와 풀이 바싹 말라비틀어져 시들어갔다. 형원은 고개를 앞으로 홱 틀었다. 펼쳐진 하늘이 맑았다. 강과 나무, 풀도 마찬가지였다. 생명을 머금고 푸르게 만개한 모습이었다. 앞과 뒤, 뒤와 앞. 신이 경계선을 그어두기라도 한 것처럼 모든 것이 극명했다. 그렇다면 위도 마찬가지일까? 형원이 고개를 위로 들자 푸른 하늘이 기다렸다는 듯 갈라지기 시작했다. 누군가 충격을 가해 으르러지는 유리구슬 같았다. 천체가 진동했다. 두 사람을 싣고 움직이는 차가 흔들렸다. 형원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이 혼돈을 무력하게 받아들이는 일뿐이었다.

 

“정신 차려.”

 

형원의 귓가에 네 음절이 박혔다. 익숙한 손이 형원의 목덜미를 잡아 안으로 끌어당겼다. 현우였다. 형원이 차 안으로 온전히 들어오기도 무섭게 큰 돌덩이가 차 오른편에 떨어졌다.

 

콰앙-.

 

묵직한 소리와 동시에 조수석의 사이드미러가 으깨졌다. 형원의 등골이 서늘해졌다. 현우가 당기지 않았다면…. 더 이상 상상하고 싶지 않았다. 형원은 앞을 봤다. 다행스럽게도 도로가 쭉 뻗어 있었다. 현우가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비릿한 피맛이 입안에 퍼졌다. 현우는 액셀러레이터를 젖 먹던 힘까지 짜서 밟았다. 계기판의 화살표가 오른쪽으로 완전히 누웠다. 형원은 순간 어지러움을 느꼈다. 눈을 질끈 감았다가 앞을 뚜렷이 응시했다. 파편으로 변한 하늘이 땅으로 낙하하는 속도가 빨라졌다. 그것은 더 이상 하늘이라고 칭할 수 없었다. 돌로 변한 부스러기들이 형원과 현우의 통행을 막았다. 형원은 하늘이 무너져내린 자리를 올려보았다. 별도 없고 구름도 없는 그저 어둠만이 그 자리를 메우고 있었다. 형원의 등줄기를 타고 흐르는 땀이 옷을 적셨다. 손잡이를 잡고 있는 손이 아리다 못해 감각이 마비되고 있었다. 호흡이 점점 더 거칠어지고 숨소리가 불규칙적으로 변했다. 형원은 곁눈질로 현우를 응시했다. 현우는 형원과 달리 담담한 낯이었다. 그저 눈동자를 분주하게 움직이며 눈앞에 떨어지는 돌을 피하고 있을 뿐이었다.

 

“거의 다 왔어.”

 

현우가 작게 중얼거렸다. 그러나 형원은 하늘에서 무수히 떨어지는 돌이 내는 굉음과 처절하게 비명을 지르는 엔진 소리 때문에 아무것도 듣지 못했다. 단지 벙긋대는 현우의 입 모양만 봤을 뿐이다.

 

“네?”

 

형원이 미간을 찌푸리며 되물었다. 현우의 입가에 쓴 웃음이 번졌다. 형원은 정체 모를 웃음에 고개가 옆으로 기울었다. 형원은 현우가 하나도 이해되지 않았다. 둘의 거리는 평소와 다름없이 가까우나 평소와 다르게 멀었다. 순간 지면에 짙은 그림자가 내려앉았다. 형원은 고개를 앞으로 돌렸다.

 

“하하, 아하하, 하하…. 하, 으하하하하….”

 

실소가 절로 터졌다. 집채만한 돌이 중력을 온몸에 휘감은 채 낙하하고 있었다. 분명히 우리는 충돌할 것이다. 형원은 본능적으로 죽음의 향기를 맡았다. 현우는 이를 악물고 핸들을 오른쪽으로 꺾었다. 차체가 왼쪽으로 기울었다. 떨어지던 돌이 땅에 내려앉아 으스러진 아스팔트가 흩날렸다. 차가 돌덩이를 길게 스치고 지나가는 마찰음이 모든 신경계를 찢어발겼다. 어린 시절에 칠판을 손톱으로 긁었던 것과 차원이 달랐다. 형원은 소름이 끼쳐 몸을 움츠렸다.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울고 싶지 않았다. 눈 사이를 찌푸려 있는 힘껏 인상을 구겼다. 그러나 전부 헛수고였다. 뜨거운 물줄기가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이마에서 흐르는 땀이 속눈썹에 내려앉았다. 그 뒤로도 현우는 수없이 핸들을 이리저리 꺾었다. 돌이 두 사람을 겨냥하는 횟수가 늘어가고 있었으므로 당연한 행동이었다. SUV가 아스팔트 위를 지나감과 동시에 땅이 무너졌다. 형원은 두 손으로 차 손잡이를 잡고 숨죽여 울었다. 씨발, 씨발! 형원은 허공에 욕을 내질렀다. 백미러에 매달려 무력하게 움직이는 멍청한 방향제와 다를 바 없는 자기 자신을 수없이 탓했다. 무자비하게 흔들렸던 게 문제였을까. 가늘어진 실이 방향제의 무게를 버티지 못하고 끊어졌다. 방향제가 차 안을 굴러다녔다. 형원의 뇌리에 절망이 박혔다.

 

그러나 형원은 이대로 멍청하게 있을 수 없었다. 숨을 크게 들이 내쉬고 손잡이를 놓았다. 무언가를 다짐이라도 한 사람 같았다. 형원은 몸이 현우 쪽으로 쏠려 방해가 되기 전에 현우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남은 손으로 핸들을 꽉 붙잡고 있는 현우의 손을 겹쳐 잡았다. 현우의 손등 위로 안착한 형원의 손바닥은 땀범벅이었다. 형원은 큰 눈을 두어 번 깜박여 그렁그렁 고인 눈물을 아래로 떨궜다. 시야가 또렷해졌다. 이제는 돌이 떨어지는 속도가 얼추 계산됐다. 형원이 차 앞 유리로 보이는 돌의 개수를 파악했다. 땅에 드리워진 그림자의 명도가 짙어짐에 따라 능수능란하게 핸들을 비틀었다. 두 사람을 힘겹게 싣고 있는 차가 술에 절여진 취객처럼 볼썽사납게 좌우로 흔들렸다. 그래도 상관없었다. 살아남기만 하면 될 일이었다. 현우는 그런 형원을 힐끗 보다가 경쾌하게 소리 내 웃었다. 형원은 그럴 새가 없었다. 지금 당장이라도 죽을지도 모르는 판국에 웃음은 고사하고 안면 근육이 전부 마비된 것처럼 딱딱하게 굳은 상태였다. 현우는 얼어붙은 형원이 핸들을 돌리는 것에 맞춰 액셀러레이터를 밟았다가 떼면서 속도를 조절했다. 계기판의 화살표가 들쑥날쑥 움직였다. 오랜 관계의 산물이 유감없이 드러났다. 형원은 이제야 조금씩 웃을 수 있었다. 현우와 몸을 맞댄 것만으로도 안정이 찾아왔다. 떨어지고 싶지 않아. 짧은 문장이 형원의 머릿속에서 맴돌기만 했다. 가까이서 들리는 현우의 웃음소리가 좋았다.

 

“다 왔다.”

 

어느덧 도로의 끝이 보였다. 얇은 막으로 둘러싸인 숲이었다. 과연 저 안으로 들어갈 수 있을까? 형원은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었다. 다만 이 모든 상황이 끝나길 바라며 여지껏 주워들었던 신에게 기도했다. 하느님, 부처님, 알라님, 아무튼 존나 빌었다. 다행스럽게도 저 숲이 시야에 들어온 이후로 돌은 낙하하지 않았으나 신은 야속하게도 형원의 기도를 반만 들어준 모양이었다. 뒷바퀴가 도로를 밟고 지나가면 곧바로 땅이 바스러지는 것은 여전했다. 길은 집요하게 둘을 쫓았다. 숲이 코앞에 있었다. 막이 옆으로 찢어졌다. 두 사람을 반기는 것 같았다. 현우는 막판 스퍼트로 차의 속도를 최대치로 올렸다. 형원의 몸이 현우 쪽으로 바짝 붙었다. 형원은 자신도 모르게 비명을 내질렀다. 그러나 소리의 분자는 금방 허공으로 분산되어 순식간에 고요가 찾아왔다. 막이 형원의 목소리를 삼킨 것 같았다.

 

차가 완전히 숲 안으로 진입하자마자 얇은 막이 닫혔다. 현우는 액셀러레이터를 밟았던 발에 힘을 풀었다. 차가 조금씩 느려졌다. 형원은 안도의 숨을 쉬고 현우에게서 떨어졌다. 눈물로 얼룩진 얼굴을 손등으로 닦았다. 차마 이 꼴을 현우에게 보이고 싶지 않아 낯을 들지 못했다. 괜히 조수석 앞에 달린 서랍을 열어 물티슈를 꺼냈다. 얼굴을 닦았다. 눈물은 이미 다 지워진 지 오래인데도 손을 내리지 못했다.

 

“너 바보냐.”

“제가 뭘요.”

“왜 가리냐, 이미 다 봤는데.”

“….”

 

형원의 입꼬리가 어색하게 호선을 그렸다. 현우가 키득댔다. 형원은 바닥에 나동그라진 휴지통을 주워 물티슈를 욱여넣었다. 감정도 이렇게 버릴 수 있으면 좋을걸. 얼굴이 뜨거웠다. 뜨거운 열기가 빠르게 번져 목 뒤까지 퍼졌다. 귀까지 익은 것 같았다. 형원은 목덜미와 턱을 매만졌다가 마른세수를 했다. 더위가 가시지 않았다. 열어둔 창문 사이로 풀냄새를 싣고 온 산들바람이 코끝을 간지럽혔다. 바람이 얼굴을 어루만지고 지나가 한결 나아졌다. 형원은 이제야 주변이 눈에 들어와 창밖으로 시선을 던졌다. 도로 옆을 빼곡하게 꾸미고 있는 수풀이 바람에 맞춰 몸을 흔드는 모습이 보였다. 살아있는 것들끼리 부대끼는 소리가 났다. 풀벌레가 간헐적으로 울었다. 그 위로 멀리서 들리는 짐승의 울음소리가 섞였다. 형원은 하늘을 올려봤다. 진청색 하늘에 무수히 많은 별이 박혀 있었다. 손을 뻗으면 잡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형원이 창밖으로 몸을 기울였다. 창틀에 가슴께를 걸치고 오른팔을 뻗었다. 당연하게도 별은 닿지 않았다. 울퉁불퉁한 비포장도로 위에서 보는 풍경이 마음에 들었다. 차가 계속 덜컹여도 상관없었다. 적어도 아까보다 훨씬 나았다. 현우는 형원을 보고 입꼬리만 올려 웃었다. 전조등이 비추는 길이 점점 더 좁아지고 있었다. 연료 계기판의 바늘은 아래로 치운 지 오래였다.

 

“어우, 안 되겠다.”

“뭐가요?”

 

형원이 차 안으로 완전히 들어왔다. 앞으로 쏟아진 머리칼을 뒤로 넘기고 의자에 몸을 기댔다.

 

“이제 걸어가자.”

“왜요?”

“기름 없다.”

“그…, 전화하면 되지 않아요?”

“여기까지 안 와.”

 

현우가 도롯가에 차를 세우고 안전벨트를 풀었다. 분주하게 내릴 준비를 하는 현우와 달리 형원은 망부석처럼 그 자리에 앉아 있기만 했다. 멀쩡한 차를 버리고 걷는다는 선택지 자체가 말이 안 됐다. 아무리 생각해도 수상했다. 분명 현우는 형원에게 숨기는 것이 있다.

 

“저한테 뭐 숨기는 거 있어요?”

“나? 없는데.”

 

현우가 도망치듯 차에서 내렸다. 형원은 멀거니 앉아서 기지개나 켜고 있는 현우를 응시했다. 험난한 운전이 꽤 힘들었는지 몸을 푸느라 바빠 보였다. 우선 형원은 현우가 시키는대로 차에서 내렸다. 차 문 닫는 소리가 컸다.

 

“문 부서지겠다야.”

“설마요.”

 

현우가 손짓했다. 형원은 헤드라이트가 꺼진 차 앞을 돌아 현우 옆에 섰다. 현우는 밤하늘에서 눈을 뗄 줄 몰랐다. 쏟아지는 별에 취한 사람 같았다. 덕분에 길이 어둡지 않아 다행이긴 했다. 형원은 현우를 가만히 지켜보다가 그의 옆구리를 손가락으로 찔렀다. 불러놓고 시선 하나 안 주는 현우가 얄미워서 찌른 게 아니었다. 그저 형원의 전부나 마찬가지인 현우를 보고 싶었을 뿐이었다.

 

“아야.”

 

현우가 아픈 시늉을 하면서 찔린 옆구리를 감쌌다. 몸이 자연스럽게 옆으로 기울어 뺨이 형원의 어깨에 닿았다.

 

“아이, 진짜 뭐예요?”

 

형원은 입에서 새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입꼬리와 광대가 위로 치솟았다. 올라간 광대가 내려올 생각을 하지 않아 두 손으로 지그시 눌렀다. 소용없었다.

 

“나 뭐.”

“몰라요.”

 

현우가 형원의 손을 잡았다. 큰 손바닥 두 개가 맞닿았다. 형원은 익숙하게 깍지를 끼고 작게 흔들었다. 안정감이 찾아왔다.

 

“가자.”

 

현우가 먼저 발걸음을 뗐다. 형원은 대답 없이 현우를 따랐다. 가슴 속에 품은 의문을 하나도 덜어내지 못했으나 지금은 생각지 않기로 했다. 형원은 현우가 알아서 말해주리라 판단했다. 항상 그랬으니 이번에도 예외가 아닐 것이다. 위로 쭉 뻗은 길이 좁아지고 가팔라졌다. 숨이 찼다.

 

“형.”

“어.”

“안 힘들어요?”

“힘들지.”

 

말과 달리 현우는 평지를 걷는 것처럼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발을 내디뎠다. 형원은 현우와 길을 두어 번 번갈아 보다 말고 붙잡은 손을 꼼지락댔다. 현우는 손을 고쳐 잡았다. 악력이 전보다 더 강했다.

 

“거짓말하지 마요.”

“거짓말 아냐.”

 

현우가 형원에게 시선을 뒀다. 형원은 대꾸하려다 말고 얕은 숨을 내쉬었다. 현우의 앙다문 입술과 별빛을 받아 빛나는 안광에 말을 잃었다. 형원은 앞을 응시했다. 눈앞에 있는 길을 부지런히 걸었다. 한동안 두 사람은 어떠한 대화도 나누지 않았다. 공백을 메운 것은 풀벌레 소리와 산들바람, 그리고 바람이 만들어낸 수풀의 울음소리였다. 여정이 길었다.

 

얼마나 걸었을까. 가파른 길 끝에 평지가 보였다. 형원은 내심 반가웠다. 더 이상 힘들게 걸을 필요가 없었다.

 

“힘드냐.”

“네에, 겁나.”

“너 운동 좀 더 해야겠다.”

“나 참.”

 

길의 막바지였다. 탁 트인 평야가 두 사람을 반겼다. 얼마나 넓은지 감조차도 오지 않았다. 여기서 형원이 알 수 있는 것은 몇 개 되지 않았다. 풀과 꽃이 무성하게 자랐다는 것과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지붕 없는 문이 있다는 사실 뿐이었다. 그 문은 사극에서나 나올 법하게 생겼는데 기둥이 성인 남성의 키보다 세 배 정도 높았다. 기분 나쁘리만큼 붉은색의 기둥이었다. 누가 피 칠갑이라도 한 것 같았다. 두 기둥을 잇는 나무판자 두 개가 평행을 이루면서 문의 상단에 붙어 있었다. 붉은 나무 살들이 두 나무판자 사이를 잇고 있었는데 울타리처럼 보였다. 그 중앙에는 태극 문양이 달려 있었다. 형원은 저 문의 정확한 명칭이 생각나지 않았다.

 

“무슨 생각해?”

현우가 형원의 손을 주물렀다. 손에 닿는 온기가 따스했다.

 

“아무 생각 안 해요.”

“진짜?”

“네.”

 

형원은 현우와 맞잡은 손을 흔들었다. 바람이 불었다. 무성하게 자란 수풀이 허리를 꺾었다. 그 사이로 좁은 오솔길이 보였다. 현우가 앞서 걸었다. 형원이 뒤따랐다. 형원은 현우의 등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평소보다 좁아 보였다. 형원은 현우를 따르다가 성큼 걸어 옆에 섰다. 현우 옆에 나란히 서자 길이 꽉 찼다. 이 길은 마치 두 사람을 위해 만들어진 것 같았다. 형원과 현우는 서로를 단단히 붙잡고서 쉼 없이 걸었지만 끝이 보이지 않았다. 다리가 아파왔다. 형원은 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아도 그럴 수 없었다. 아무 표정 없이 앞만 보고 걷는 현우에게 말을 붙이면 안 될 것 같았다. 더군다나 두 사람에게는 선택권이 없었다. 둘 앞에 놓인 길은 이것뿐이므로 묵묵히 걸어야만 했다. 막다른 길 하나 없이 직선으로 이어진 게, 마치 예정된 목적지로 이끄는 것 같았다.

 

“미안하다.”

현우가 적막을 깼다. 그 목소리에는 이유 모를 우울이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뭐가요?”

“그냥 전부?”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요.”

 

현우가 고개를 푹 숙이고 잡은 손에 힘을 줬다. 여전히 두 사람은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마냥 멀기만 했던 문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형원은 문이 주는 위압감에 침을 꿀꺽 삼켰다.

 

“그러냐.”

“네.”

 

현우는 혀로 마른 입술을 훑었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응시하다가 형원을 바라봤다. 형원도 마찬가지로 현우 쪽으로 얼굴을 돌리고 표정을 살폈다. 현우가 웃고 있었다.

 

“모처럼 시간 내서 가는 여행인데 내가 다 망쳤다.”

“뭘 망쳐요. 됐어요, 지금부터 잘 보내면 돼요.”

 

형원이 현우를 툭 밀쳤다. 현우는 옆으로 밀리다 말고 버텼다. 두 사람의 웃음소리가 섞였다.

 

“이러니까 우리 학생 때 생각난다.”

“아, 시험공부 안 하고 농땡이 쳤을 때요? 그 때도 엄청 걸었잖아요.”

“어, 그러고 나중에 컵라면 겁나 먹었잖아.”

“형 내 김밥도 빼앗아 먹었거든요?”

“아, 그랬나.”

“네, 두 개나요.”

“넌 어떻게 그런 걸 다 기억하냐.”

“그게 다 방법이 있….”

 

형원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가셨다. 끼익, 콰앙-! 누군가 벼락이라도 친 것처럼 강렬한 파열음이 머릿속을 때렸다. 부딪치는 소리가 잦아듦과 동시에 연기가 피어올랐다. 매캐한 냄새가 형원의 코끝에 스며들었다. 차 한 대가 도롯가 근처의 수풀에 처박혀 있었다. 차 앞 범퍼와 본네트가 큰 나무를 들이박아 종잇장처럼 구겨진 채 명을 다해갔다. 형원의 눈앞이 암전됐다. 눈을 비볐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눈을 세게 감았다가 떴다. 갑작스러운 이명이 형원을 압도했다. 시야가 소용돌이쳤다. 이건 뭐지?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형원이 제대로 본 게 맞다면 그 차의 정체는….

 

형원은 정신이 퍼뜩 들었다. 고개를 도리질 치고 양 뺨을 소리 나게 쳤다. 아팠다. 방금 헛것을 본 게 분명했다. 형원은 옆에 서 있을 현우가 보고 싶어 옆을 봤다. 그러나 현우가 없었다. 대신 아래에서 숨을 헐떡대는 소리가 들렸다. 형원이 고개를 떨궜다. 앞으로 고꾸라진 현우가 몸을 떨고 있었다. 형원이 현우를 잡아 일으켰다. 현우가 고개를 들지 못했다. 형원은 허리를 굽혀 현우를 살폈다. 현우는 마치 추위에 떠는 것처럼 입술을 파르르 떨었다.

 

“형, 괜찮아요? 좀 쉴래요?”

“아냐, 됐어.”

 

현우가 고개를 젓고 똑바로 일어섰다. 흙먼지로 얼룩진 바지를 털었다. 넘어진 여파가 가시지 않아 다리가 꼬여 몸이 앞으로 쏠렸다. 형원이 현우를 붙잡아 일으켜 세웠다. 현우의 시야에 붉은색 문이 가득 찼다. 조금만 더 가면 도착할 것이다. 전진할수록 문이 현우를 짓누르는 것 같았다. 현우는 큰 족쇄가 두 발을 옭아매는 기분이 선연해 몸을 잘게 떨었다. 그러나 포기할 수 없었다.

 

“지금 형 얼굴이 말이 아녜요. 이게 무슨….”

“괜찮다니까. 조금만 더 가면 다 괜찮아질 거야.”

 

현우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홍수처럼 흘러내리고 있었다. 안색이 하얗게 질렸고 푸르죽죽한 입술은 바싹 말라 갈라졌다. 형원은 발걸음을 멈추고 현우의 얼굴을 양손으로 감쌌다. 현우가 형원의 어깨를 밀쳤다. 그러나 형원은 쉽게 밀리지 않았다. 오히려 현우를 잡은 팔에 힘이 들어갔다. 셔츠 소매가 터질 것처럼 부풀었다.

 

“대체 아까부터 뭐가 자꾸 괜찮아진다는 건데요?”

“그건 좀 이따가 얘기해줄게. 지금은 아냐.”

 

현우가 형원을 밀쳤다. 형원이 현우에게서 멀어졌다. 한 걸음만 다가가면 현우와 가까이 붙을 수 있었으나 형원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형원의 눈동자에서 생기가 사라졌다. 둘을 짓누르는 공기가 무거웠다.

 

“형.”

“어.”

“진짜 저한테 숨기는 거 있죠.”

“아니.”

 

대답과 동시에 편두통과 어지러움이 현우를 덮쳤다. 눈을 질끈 감았다. 현우는 형원이 할 말을 직감적으로 알았다.

 

“다시 물어볼게요.”

 

형원의 말을 이루는 모든 음절에 힘이 들어갔다. 악문 이와 꽉 쥔 두 주먹이 그것을 증명했다. 현우는 눈을 떴다. 턱을 아래로 당기고 매서운 눈초리로 자신을 노려보는 형원이 보였다. 현우는 차분했다. 모든 게 예상대로였으니 당연했다. 그래서 웃음만 났다. 이 상황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현우는 참지 못했다. 결국 입꼬리가 광대에 걸렸다. 형원의 한쪽 눈썹이 위로 치켜 올라갔다.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가 곧바로 돌아왔다. 형원은 헛기침을 했다. 목을 가다듬고 입을 열었다.

 

“현우 형. 지금 저한테 숨기는 거 있죠.”

 

형원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동공이 좌우로 흔들렸다. 형원은 괜히 머리를 헝클이고 손톱을 세워 뒤통수를 긁어내렸다.

 

“….”

“솔직히 말해요.”

“그래, 일단 앉아서 얘기하자.”

 

현우가 팔을 뻗어 어딘가를 가리켰다. 형원은 현우가 가리키는 곳을 향해 몸을 돌렸다. 두 사람 뒤에 나무 벤치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뭔가 이상했다. 저 정도 거리면 형원이 충분히 발견하고도 남았다. 왜 이제 발견한 걸까. 형원은 알 길이 없었다. 현우는 형원의 손을 끌어 벤치 쪽으로 걸어갔다. 형원은 현우의 손에서 느껴지는 냉기에 몸을 움츠렸다. 냉동고에서 갓 꺼낸 얼음을 쥐고 있는 것 같았다. 형원의 온도로 현우를 이길 수 없었다. 그런데도 형원은 이 손을 놓기 싫었다. 놓는 순간 모든 게 끊겨 다시는 잡을 수 없을 것 같은 직감이 머리를 지배했다. 그러나 형원의 손은 머리를 따르지 않았다. 더 이상 온기를 뺏기기 싫어 비틀대며 빠져나올 궁리를 하고 있었다. 현우는 힐끗 아래를 내려보았다. 현우가 손가락 끝으로 형원의 손바닥을 긁었다. 천천히 손을 놨다. 그러나 형원은 손이 떨어지기도 무섭게 깍지를 꼈다. 현우의 냉기는 여전했다. 현우는 입안이 썼다.

 

두 사람은 벤치 앞에 다다랐다. 현우가 먼저 앉으면 형원이 옆에 붙어서 앉았다. 이제 문은 거의 코앞에 있었다. 형원은 벤치와 문 근처를 눈대중으로 훑었다. 무성히 자란 수풀 사이에서 고개를 내민 상자 모양의 형체가 보였다. 뒤가 볼록하게 튀어나온 텔레비전이었다.

 

치지직, 칙-.

 

화면에 노이즈가 꼈다. 스피커에서 들리는 잡음이 컸다. 그 주변에 똑같이 생긴 텔레비전들이 푸른빛을 뿜었다. 곳곳에 놓여 있어 개수를 제대로 셀 수 없었지만 얼추 스무 개는 넘어 보였다.

 

“어, 일단….”

 

현우가 말문을 열어 주변을 환기했다. 현우는 턱을 쓸어 만지다가 올라온 수염을 뽑았다. 형원은 이 행위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았다. 현우의 눈동자가 한곳에 머무르지 못 하고 이리저리 부유하는 것도, 발을 굴리는 것도, 고개를 아래로 숙였다가 드는 것까지 전부 무얼 뜻하는지 알았다.

 

“몇 가지 물어볼게.”

 

현우는 숨을 거칠게 몰아쉬었다. 손을 쥐었다 폈다. 냉기는 여전히 가시지 않았다. 현우에겐 당연한 이치였다. 저 문이 가깝다는 것은 ■■이 머지않았다는 뜻이었다. 그렇다면 해야 할 일은 오로지 하나뿐이었다. 현우는 두 손으로 마른세수를 하고 얼굴이 딱딱하게 굳은 형원을 응시했다. 한숨이 절로 나왔다.

 

“우리 어디서 출발했냐.”

“휴게소요.”

 

형원은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그야 당연했다.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럼 휴게소에 도착하기 전에 우리 뭐했냐.”

“그야 당연히….”

 

헛웃음이 터졌다. 이걸 질문이라고…. 형원이 망설임 없이 운을 띄웠지만 그 뒤를 잇지 못 했다. 동공이 크게 흔들리기만 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형원의 머리에 누가 표백제를 통째로 들이부은 것처럼 하나도 기억나지 않았다. 눈을 질끈 감았다가 뜨고 눈동자를 분주히 움직였다. 팔뚝을 꼬집어 비틀었다. 그래도 소용없었다. 기억해내, 채형원. 형원은 모질게 얼굴을 내리쳤다. 그러나 모든 기억의 시발점은 휴게소였다. 현우는 무덤덤한 낯으로 뭉툭한 엄지손톱을 검지로 매만졌다. 형원의 호흡이 멎었다가 다시 이어졌다. 형원은 갑자기 현기증이 나 허리를 아래로 숙였다. 몸이 벌벌 떨렸다. 머릿속에 노이즈가 꼈다. 옷이 피로 물든 채 쓰러진 현우의 모습이 떠올랐다. 아니, 이건 가짜다. 형원이 머리를 부여잡고 세차게 흔들었다.

 

“우리 지금 어디 가?”

 

또 다른 질문이 던져졌다. 형원은 대답할 수 없었다. 아니, 그럴 겨를이 없었다. 정체 모를 기억이 자꾸 스며들어와 형원을 방해했다. 하얀 들것에 실려 나가는 현우가 선명히 보였다. 햇빛에 반사되어 찬란히 빛나는 시계가 있는 손목이 아래로 축 늘어졌다. 스며들어온 기억 속의 현우는 그 뒤로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아, 아아…, 아, 씨발….”

 

형원이 머리를 사정없이 내리쳤다. 가, 가라고. 제발. 이거 아니야. 다, 다 거짓말이야. 두개골이 빠개질 것 같았다. 닭똥 같은 눈물이 흘렀다.

 

“우리 지금 어디 가냐고.”

 

현우가 재촉했다. 형원이 몸을 돌려 현우를 바라봤다. 현우는 아무런 표정도 짓고 있지 않았다. 형원은 현우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종잡을 수 없었다.

 

“지금 몇 시지.”

 

질문 세례가 이어졌다. 형원이 손목시계를 확인했다. 여전히 3시 40분이었다. 초바늘은 여전히 앞으로 나가지 못 해 그 자리에서 계속 맴돌고 있었다.

 

“…3시 40분이요.”

“언제부터?”

“…휴게소에 있을 때부터.”

 

형원은 목이 잠겨 곧바로 말을 내뱉기 힘들었으나 꾸역꾸역 대답했다. 음울함이 덧칠된 문장이었다. 현우는 흐느끼고 있는 형원을 껴안고 등을 토닥였다. 현우는 형원을 꽤 오래 만났으면서도 달래는 법이 서툴렀다. 형원은 지나치게 운 탓에 눈이 빠질 것처럼 아프고 쓰라렸다. 이 모든 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궁금증은 해소되기커녕 계속 몸집을 불리기만 했다.

 

치직, 칙-, 치직.

 

텔레비전에서 나는 잡음이 들렸다. 잡음 위에 잡음이 쌓인다. 켜켜이 쌓인 소리가 형원을 거슬리게 했다. 따가운 눈가를 손가락으로 지그시 눌렀다가 뗐다. 사방을 둘러봤다. 방금까지만 해도 푸른빛만 맴돌았던 화면에 뉴스가 떴다. 검은 옷차림을 한 여자 앵커가 보였다. 모든 텔레비전에서 같은 화면이 송출되고 있었다. 수십 명의 여자가 동시에 입을 뗐다.

 

“다음 뉴스입니다. 오늘 오후 3시 40분경, 중부내륙고속도로에서 낙석으로 인한 교통사고가 발생했습니다. 비탈면에서 쏟아지는 흙과 돌에 당황한 피해 차량은 방향을 틀었으나 근처에 있던 나무를 들이받았습니다.”

 

잔인한 문장이 줄지어 읊어졌다. 형원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흐르는 눈물을 닦고 화면을 쳐다봤다. 익숙하기 그지없는 차가 방향을 비틀다가 나무에 들이박는 모습이 재생됐다. 화질이 낮은 CCTV 주제에 생생히 사고 장면을 담고 있었다. 앞면이 찌그러진 모양새가 방금 흘러들어온 기억과 일치했다. 믿을 수 없는 사실의 향연에 형원은 눈을 부릅뜬 채 울었다. 두통이 밀려오고 숨이 막혔다. 손발이 떨려 제대로 앉아 있기도 힘들었다. 발바닥에 힘을 주고 주먹을 억세게 쥐었다. 손톱이 손바닥에 박히는 느낌이 생경했다. 형원은 숨을 죽이고 뒤로 이어질 말을 기다렸다.

 

“사고 차량의 운전자인 채 모 씨와 같이 탔던 손 모 씨가 의식을 잃고 병원에 옮겨졌습니다. 채 모 씨는 의식불명으로 그쳤으나 손 모 씨는 결국 사망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여자의 말이 끝났다. 형원은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들이 멈춘 것 같았다. 그저 하릴없이 텔레비전 화면을 쳐다보다가 한 걸음씩 걸었다. 현우는 좌우로 비틀대면서 걷는 형원을 차마 붙잡을 자신이 없었다. 형원에겐 쉽게 가실 리 없는 충격을 홀로 받아들이는 시간이 필요했다. 현우가 지금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시선으로 형원을 뒤쫓는 것밖에 없었다. 형원은 가장 가까이에 있는 텔레비전 쪽으로 나아갔다. 주먹을 끊임없이 쥐었다 폈다. 두 걸음, 혹은 세 걸음만 걸으면 저 앞까지 금방 도착할 것이다. 화면 속에 있는 여자의 생김새가 전보다 더 또렷하게 보였다. 여자는 시선을 내리깔고 종이를 넘기다가 고개를 홱 들었다. 형원과 눈이 마주쳤다. 형원이 뒷걸음질 쳤다. 주변을 둘러봤다. 그를 둘러싼 모든 텔레비전 속 여자들의 눈동자가 전부 형원을 향하고 있었다. 눈 한 번 깜박이지도 않고 입꼬리만 위로 치켜 올라간 게 흉측했다. 여자들이 일제히 입을 벙긋댔다. 마치 호두까기 인형 같았다.

 

“손 모 씨는.”

수십 개의 목소리가 겹쳐졌다. 그 위로 웃음이 섞였다.

 

“결국.”

“아, 아니야. 그만, 그만…, 그만해. 더 이상 말하지 마.”

 

형원이 웅얼댔다. 소리가 온전히 입 밖으로 나가지 못해 목 뒤로 넘어갔다. 스무 개가 훌쩍 넘는 눈알이 형원을 뚫고 있었다. 시퍼렇게 부릅뜬 눈과 위로 솟은 광대는 전혀 미동이 없었고 움직이는 것은 오로지 입뿐이었다.

 

“사망한 것으로,”

방금까지만 해도,

 

“사망한 것으로,”

똑같던 목소리들이,

 

“사망한 것으로,”

하나씩,

 

“사망한 것으로,”

분리가 되고 있었다.

 

“사망한 것으로,”

어떤 것은 여자의 목소리였고,

 

“사망한 것으로,”

다른 것은 남자의 목소리였다.

 

“사망한 것으로,”

그 위로 겹쳐진 소년의 목소리와,

 

“사망한 것으로,”

소녀의 목소리,

 

“사망한 것으로,”

그리고 노인의 목소리,

 

“사망한 것으로,”

어떤 것은 인간의 목소리라고 하기엔,

 

“사망한 것으로,”

지나치게 낮고 음울한 것이,

 

“사망한 것으로,”

형원의 귓가에 바짝 붙어 속삭이는 것 같았다.

 

할 수만 있다면 저 입을 틀어막고 싶었다. 계속 울음이 났다. 그러나 닦을 힘 따윈 없었다. 형원은 귀를 틀어막고 잔디 위로 풀썩 쓰러져 이마를 땅바닥에 댔다. 고개를 있는 힘껏 저었다. 이마에 닿은 풀이 짓이겨져 나는 풀내음이 강했다.

 

“사망.”

여자가 키득댔다.

 

“사망.”

이름 모를 남자도,

 

“사망.”

씨발, 좆같게도 모든 사람이 입을 모아서,

 

“사망.”

손현우의 죽음을 알렸다.

 

“사망,”

응축된 단어가,

 

“한 것으로,”

날카로운 칼날로 벼려져,

 

“밝,”

형원에게 날아와 꽂혔다.

 

“혀졌,”

“습니다.”

 

지난한 시간이 겨우 끝났다. 이 문장은 누군가에겐 찰나의 순간일지도 모르겠으나 형원, 그리고 현우에게는 그렇지 않았다. 형원이 소리 내어 울었다. 목이 따가워 비릿한 피맛이 입안에 맴돌아도 상관없었다. 절망의 끝자락에서 몸부림을 치는 형원을 화면 속에서 응시하던 ‘것’들이 기괴하리만큼 깔깔댔다. 웃음소리에 잡음이 엉겨 붙었다. 주파수가 안 맞는 라디오 같았다. 지지직, 직-. 잡음이 끔찍한 웃음을 착실히 집어삼키자 더 이상 형원을 괴롭히는 소리가 나지 않았다. 조소와 동시에 잡음도 멎었다. 사방에 정적이 흘렀다.

 

“너.”

“…….”

 

형원의 뒤로 잔디가 밟히는 소리가 들렸다. 인기척이 형원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형원은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누군지 알았다. 아래로 처박았던 얼굴을 위로 살짝 들었다. 그의 눈에 검은 신발과 복숭아뼈 위까지 덮은 검은 옷감이 보였다.

 

“집에 갈 시간이다.”

 

형원은 바닥을 짚고 상체를 세웠다. 허리를 꼿꼿하게 세워 눈앞에 있는 사람을 확인했다. 그는 형원이 사랑하는 손현우가 맞았다. 그러나 옷차림은 지극히도 낯설었다. 현우는 밤하늘보다 더 어두운 도포 차림에 붉은 띠를 허리에 두르고 있었다. 뒷짐을 지고 눈만 끔뻑 거리다가 형원에게 한 손을 내밀었다. 담담한 표정과 달리 손은 얕게 떨렸다.

 

“형…?”

 

현우는 대답이 없었다. 형원에게 더 가까이 손을 내밀 뿐이었다. 형원은 그 손을 잡고 겨우 자리에서 일어났다. 무릎과 정강이가 잔디의 물기와 흙먼지로 더럽혀져 축축했으나 그딴 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그보다 형원을 더 충격으로 몰아넣은 것은 여전히 얼음장 같은 현우의 손과 낯선 옷차림이었다. 순간 형원의 시선이 현우 뒤로 갔다. 무엇을 쥐고 있는지 제대로 파악되지 않았다.

 

“이 옷차림 뭐예요?”

“보는 대로야.”

“그리고 뒤에 뭐예요?”

 

현우는 마지못해 뒤로 숨겼던 손을 앞으로 꺼냈다. 검은 갓이 들려 있었다. 형원은 말을 잃고서 정체 모를 갓을 바라보다 현우의 얼굴을 살폈다. 멋쩍게 웃던 현우는 괜스레 갓만 만지작거리다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갓이 잔디밭 위를 굴렀다.

 

“이런 모습 보여주기 싫었는데.”

“….”

“이제 가야지.”

“어디를요?”

“저 문 넘어서 가.”

 

현우가 붉은색 문을 가리켰다. 형원이 몸을 돌렸다. 검게 물든 문 안에서 검은 소용돌이가 보였다. 형원을 당장이라도 집어삼킬 것 같았다. 절로 몸서리가 쳐졌다. 현우는 맞잡은 형원의 손을 주물렀다. 형원은 자신의 손을 쥐고 있는 현우의 낯을 살폈다. 수심에 가득 찬 두 눈동자가 형원을 후벼팠다.

 

“형은요?”

형원이 물었다.

 

“난 못 가.”

현우가 형원의 미련을 잘라냈다.

 

“왜?”

“나는 여기에 있어야 해.”

 

“날 두고요?”

형원은 현우의 말끝마다 잽싸게 따라붙었다.

 

“그래.”

현우가 형원의 집착을 도려냈다.

 

“어떻게 떠나겠다는 말을 그렇게 쉽게 해요?”

“어쩔 수 없으니까.”

“혀엉.”

“빨리 가. 네 육신이 없어지기 전에.”

 

현우가 옆에 놓인 텔레비전에 시선을 던졌다. 형원도 현우를 따라 시선을 돌렸다. 화면 속에는 병원복을 입고 산소 호흡기를 찬 형원이 누워 있었다. 침대 옆에 놓인 심전도 모니터의 그래프의 진폭이 낮았다. 거센 태풍 앞에 덩그러니 놓인 촛불 같았다. 그 몸뚱이는 생명의 끄나풀을 겨우 붙들고서 형원이 돌아오길 바라는 듯했다. 형원은 현우를 붙잡지 않은 손으로 검은 깃을 잡아당겼다. 옷이 볼품없이 구겨졌다. 현우가 형원의 손을 겹쳐 잡고 아래로 내렸다. 현우는 두 손을 고쳐 잡았다. 살아 있는 사람의 온기와 죽은 자의 냉기가 맞물렸다. 형원의 낯에 눌어붙은 절망과 슬픔이 짙게 드리웠다.

 

“약속 못 지켜서 미안하다.”

“그럼 지키러 나랑 같이 가요.”

 

형원이 저 빌어먹을 문을 턱짓으로 가리켰다. 현우는 보는 척도 하지 않고 엄지로 형원의 손등을 쓸었다.

 

“나는 여기서 계속.”

 

현우는 도저히 형원의 눈을 볼 자신이 없었다. 시선을 옆으로 피했다가 아래로 내렸다.

 

“떠도는 망자를 데리고 가야 해.”

 

형원은 현우의 말에서 침울을 읽었다. 자신의 손등을 스치고 지나가는 엄지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일정한 속도로 움직이던 손길이 점차 느려졌다. 형원은 이를 까득 깨물었다. 머리 위로 열이 점차 몰려와 숨을 입 밖으로 길게 내쉬었다. 고개를 들어 자신을 보지 못하는 현우를 눈에 담았다.

 

“형이 왜요?”

네 글자를 잘근잘근 씹어 삼키는 것처럼 물었다.

 

“어쩌다 보니?”

“형, 그럼 나 데리러 온 거네?”

“따지고 보면?”

“근데 왜 나보고 가라고 해요?”

 

현우는 말문이 턱 막혔다. 형원 몰래 숨겨왔던 불합리가 만연히 드러났다. 차사 손현우는, 아니, 형원의 애인 손현우는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이 모든 것이 앞뒤가 들어맞지 않아도 그토록 바라는 목적만 달성하면 되는 일이었다.

 

“너는…, 너는 망자가 아니야.”

“그럼 왜 형이 내 눈앞에 있는 건데요?”

“널 여기서 내보내려고.”

 

현우가 딱 잘라 말했다. 단호하다 못해 결의에 차 있었다. 형원은 헛웃음이 절로 나왔다. 할 말을 잃고 애먼 머리만 헝클었다.

 

“그게 말이 돼요? 아니, 혀엉.”

 

형원이 볼을 부풀리고 입술 사이로 긴 숨을 뱉었다. 혀를 몇 번 차고 볼 안쪽 살을 씹었다.

 

“……왜, 왜…, 나만 가라고 그런대?”

“그렇게 됐다.”

 

담담했던 현우의 목소리가 얕게 떨렸다. 형원은 입만 달싹거리면서 뜸만 들였다. 하고 싶은 말이 뒤엉킨 탓이었다.

 

“아니, 그렇게 되게 할 거야.”

현우는 형원의 서늘한 눈빛을 여과 없이 받으면서도 미동 따윈 없었다.

 

“형 말 전부 이상한 거 알죠. 말이 되는 게 하나도 없어.”

“미안해.”

“그 말 이제 더 하지 마요. 안 듣고 싶어.”

“그래, 알겠다.”

 

현우는 엄지로 형원의 손을 쓸던 것을 멈추고 힘을 뺐다. 틈 하나 없었던 손이 헐거워졌다. 형원이 현우에게서 빠져나와 현우의 손을 잡았다. 현우가 형원에게 갇혔다. 형원은 엄지로 차가운 현우의 손등을 지분대듯이 쓸어 만졌다.

 

“조심히 가.”

 

현우가 형원의 손에서 손가락을 반쯤 빼냈다. 형원이 손을 고쳐 잡고 강하게 현우를 끌어당겼다. 순식간에 거리가 좁혀졌다. 형원의 코앞까지 다가온 현우는 빛을 받아 창백해 보였다.

 

“아뇨, 못 가요.”

“왜.”

“저기 넘어가면 이제 형 못 보잖아요.”

 

형원은 머리가 깨질 것처럼 아팠으나 구태여 현우에게 티 내지 않았다. 해저에 가라앉은 것처럼 잠긴 목소리로 눈앞에 놓인 현실을 읊기만 했다.

 

“어…, 아냐. 볼 수 있어.”

 

현우는 눈동자를 분주하게 굴리다가 겨우 대답했다. 전부 티가 났다. 형원이 픽 웃었다.

 

“형은 거짓말도 못 해.”

“우리 오늘 말 진짜 많이 한다. 살아있을 때 많이 할걸.”

“아, 형 진짜.”

 

형원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형원은 붙잡고 있던 현우를 놓고 있는 힘껏 현우의 어깨를 후려갈겼다. 마찰음이 크게 났다. 현우는 맞은 곳이 아렸으나 그저 웃기만 했다.

 

“아프다.”

“형은 아파도 싸요.”

“그럼 더 때리던가.”

“무슨 말도 못 하게 해.”

“내가 언제?”

 

짧은 농담이 오갔다. 지금은 평소의 현우와 같았다. 접히는 눈이며, 그 끝에 지는 눈주름이며, 올라가는 입꼬리와 광대는 형원이 아는 것이 맞았다.

 

“그 손 이리 줘봐.”

 

차가운 손과 달리 현우의 목소리는 따뜻했다. 순간 눈물이 수도꼭지처럼 쏟아졌다. 형원은 멈추지 않는 눈물을 소매로 벅벅 닦았다. 호흡이 모자라 어깨가 절로 들썩였다. 코끝이 찡했다. 형원이 손을 내밀면 현우가 두 손목을 잡고 느리게 주물렀다. 형원은 고개만 푹 숙인 채 소리 없이 흐느꼈다.

 

“얼른 가. 늦겠다.”

“…그러면요.”

 

형원이 침을 꿀꺽 삼켰다. 입을 굳게 다물어 입 모양을 일(一)자로 만들었다가 숨을 푹 내쉬었다. 얇아졌던 입술이 원래대로 돌아왔다. 슬픔을 겨우 추스르고 현우를 응시했다.

 

“나 이름 한 번만 불러주세요.”

 

이것은 형원이 부릴 수 있는 최대치의 어리광이었다. 사실 그 뒤로 붙이고 싶은 문장이 수 백 개가 넘었다. 내 이름 한 번도 안 불러준 거 안다는 둥 삐졌는데 아닌 척하느라 힘들었다는 둥 그 외에도 하고 싶은 말이 흘러넘쳤다. 그러나 형원은 내뱉지 못한 문장을 집어삼키고 억지로 웃었다. 현우를 힘들게 하고 싶지 않았다. 파편처럼 조각난 감정을 얼기설기 꿰맸다. 입은 웃고 있는데 눈물은 멈추지 않아 우스꽝스러워 보일지 몰라도 어쩔 수 없었다.

 

“……형원아.”

머뭇대던 현우가 나지막이 형원을 불렀다.

 

“…네.”

“이제 진짜 갈 시간이다.”

“나 진짜, 진짜 가야 해요?”

“그래. 그러니까 빨리 가.”

 

현우가 손을 놨다. 형원의 손이 비었다. 원하지 않는 자유였다. 형원이 현우의 손을 낚아챘다. 현우가 뿌리쳤다. 형원은 얼이 빠져 입이 벌어졌다. 쌍꺼풀이 크게 진 두 눈을 끔벅였다. 계속 눈물이 났다.

 

“나…, 진짜 이름 한 번만 더 불러주면 갈게요. 마음의 준비가 덜 됐어. 지금은 못 가겠어요.”

 

열 걸음 정도만 가면 문에 도착할 수 있었으나 도저히 갈 용기가 나지 않았다. 필시 저 너머에는 삶이 있을 터였다. 형원은 생각했다. 현우가 없는 삶을 진정으로 살아있다고 단언할 수 있는가. 고개를 힘차게 저었다. 그것은 살아있으나 죽은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러므로 형원은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서 끝없이 맴돌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러니까, 슬프게도, 혹은 안타깝게도, 현우의 말을 듣고 싶지 않았다. 처음으로 현우를 거절하고 싶었다.

 

“안 돼.”

 

현우가 절실한 형원을 거절했다. 이율배반이 동등한 크기로 계속 몸집을 불리면서 치열하게 대립했다.

 

“아직 두 번 남은 거 남은 거 알아요. 세 번만 아니면 되잖아요.”

“아니, 안 돼.”

“아.”

 

형원은 턱을 치켜올려 허공만 바라보다 현우를 매섭게 노려봤다. 그런데도 현우는 눈 한 번 꿈쩍하지 않았다.

 

“왜애, 왜 형은 제 말 안 들어줘요? 내가 언제 형이 바라는 대로 안 해준 적 있어요? 근데 왜 형은 내 이름 하나 못 불러줘요?”

“아니, 그게 아니라….”

“우리 이제 못 본다면서요. 마지막이라며. 근데, 근데 왜 형은….”

 

형원이 현우의 멱살을 움켜쥐고 흔들었다. 현우가 힘없이 흔들렸다. 그러나 눈빛은 변함없었다. 형원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입가가 파르르 떨렸다.

 

“형은 왜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아요?”

 

형원이 현우를 몰아붙였다. 그러나 현우를 담고 있는 형원의 눈이 좌우로 흔들렸다. 눈가에 새로 맺힌 물기가 수직으로 낙하했다. 멱살을 잡은 팔에 힘이 들어가 팔뚝에 힘줄이 솟아올랐다. 현우는 형원의 손목을 쥐고 떼어냈다.

 

“그런 거 아냐. 진짜, 아냐. 미안, 아…, 아니다. 아무튼, 아냐. 제발 가. 시간 얼마 안 남았다.”

“뭐가 얼마 안 남고, 뭐가 안 되고, 뭐가 미안한데요? 진짜 나 형 이럴 때마다 존나 서운해요. 알아요?”

 

형원의 목에 힘줄이 불거졌다. 언성이 높아져 목구멍이 따가웠다. 의지와 상관없이 솟구치는 눈물과 감정을 쉬이 가라앉히지 못해 호흡이 불편했다. 현우는 옷소매로 눌러 엉망이 된 형원의 얼굴을 닦아냈다. 정제되지 않은 슬픔이 현우에게 밀려왔다. 현우의 눈시울이 붉게 물들었다. 차라리 어두워서 다행이었다. 적어도 현우는 그렇게 생각했다. 형원에게 보여주기 싫은 모습이 많았다. 터질 것 같은 울음을 기어이 누르고 억지 미소를 지었다.

 

“지금 우리가 이럴 때 아냐.”

“그럼 뭘 해야 하는데요? 돌아가는 거? 씨발, 저길 넘어가면 뭐 만사가 해결돼요?”

“그래, 해결돼. 그러니까 너 지금 당장 가야 해.”

“싫어요. 못 가요.”

 

형원이 처절하게 부정했다. 현우의 입은 옴짝달싹 못 하고 떨리기만 했다. 이마를 지분대면서 형원을 설득할 만한 말을 고르고 또 골랐다. 괜히 헛기침하면서 마음을 다 잡아봐도 통곡하는 형원 앞에선 소용없었다.

 

“제발….”

 

겨우 말문을 텄다. 목이 잠기고 입안이 메말라 혀로 입술을 축였다. 형원의 울음소리가 잦아들었다. 현우는 하고 싶은 말이 솟아오르다 가도 금방 내려앉았다.

 

“……이러지 마.”

 

결국 한 문장만 내뱉고 눈을 내리감았다. 지금 현우가 하는 이 모든 행동을 형원에게 구구절절 설명하기엔 시간이 턱없이 모자랐다. 현우는 형원을 지금 당장 떼어놔야 했다. 이성이 현우에게 통절히 소리쳤으나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현우 안에서 두 가지 마음이 끝없이 치고받고 싸우면서 으깨졌다.

 

“형 진짜 싫어요.”

“그래, 평생 미워해.”

“현우 형!!!”

“얼른 가.”

“나 형 평생 미워할지도 모르는데도요?”

“어. 미워해. 그럼 니가 나 미워하는 만큼 사랑할게. 됐지.”

“지금 그 뜻이 아니잖아요.”

 

현우를 붙잡은 형원의 손가락 마디에 힘이 바짝 들어가 핏기가 가셨다. 형원은 흉부에 압박감이 느껴졌다. 극도의 흥분감에 제대로 호흡을 못 한 탓일 것이다. 코로 숨을 크게 내쉬었다. 형원의 수고로움이 소용없다는 듯 정신은 끝없이 아득해지기만 했다. 현우가 형원의 얼굴을 두 손으로 감쌌다. 축축한 얼굴을 어루만지다가 입술을 가벼이 겹쳤다. 눈물로 뒤덮인 입술이 부르터 까끌까끌했다. 현우가 형원의 이마에 머리를 맞대고 비볐다. 형원은 아직 따뜻했다.

 

“사랑한다.”

 

그러니까 살아줘. 현우는 차마 이 욕심까지 내비치지 못하고 말을 아꼈다. 어쩌면 이것은 현우의 이기심일지도 몰랐다. 그래도 상관없었다. 형원이 살 수만 있다면 이보다 더한 짓도 할 수 있었다. 이루 말할 수 없는 슬픔을 억지로 누르기 위해 입가를 씰룩대면서 바보같이 웃었다. 현우는 지금 이 순간 가장 초라하게 느껴졌다.

 

“형.”

“알지?”

“몰라요.”

“알잖아.”

 

현우가 재촉했다. 이제는 정말 시간이 없었다. 지금이 기회였다. 당장 보내지 않으면 모든 것을 망칠지도 몰랐다. 현우는 형원의 등을 다독였다.

 

“알아도 몰라요. 차라리 이럴 거면,”

 

그러나 형원은 그 자리에 버티고 서서 꿈쩍도 하지 않았다. 형원이 처절하게 울부짖으며 현우의 옷자락을 쥐고 늘어졌다. 형원이 결국 바닥에 무릎을 꿇고 주저앉았다. 현우는 무언가 단단히 잘못되는 것을 직감했다.

 

“차라리 이럴 거면 나를,”

 

현우의 두 눈이 커졌다. 예감이 안 좋았다. 안 그래도 새하얗게 질린 안색이 하얀 종잇장처럼 투명하게 질려 갔다. 현우가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 안 돼, 제발, 제발…, 그 말만큼은 절대 안 돼.”

 

형원은 아무것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저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해야만 했다. 현우는 잠자코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

 

“야!!!”

 

현우가 소리치면서 형원의 입을 틀어막으려 들었으나 소용없었다. 이미 물은 엎질러진 지 오래였다. 형원이 기어코 ‘그’ 문장을 뱉고 말았다. 현우의 가슴에 여섯 글자가 들이박혔다.

 

날, 데, 려, 가, 줘, 요.

 

마지막 단어를 끝으로 천지가 흔들렸다. 저 멀리서 땅이 내려앉는 소리가 들렸다. 현우의 뺨 위로 눈물이 흘러내렸다. 형원이 무어라 말했으나 세상이 무너지는 소리가 말을 먹어 치웠다. 무너지는 속도에 가속이 붙었다. 어느덧 갈라진 땅이 형원과 현우가 있는 곳까지 도달했다. 밟고 있던 땅이 조각났다. 더 이상 두 사람은 온전히 서 있을 수 없었다. 현우와 형원은 암흑밖에 없는 곳으로 낙하하기 시작했다. 현우가 손을 뻗어 절규하는 형원을 붙잡았다. 끝없이 아래로, 또 아래로 떨어지는 상황을 믿을 수 없어 두 사람은 서로를 부둥켜안고 눈물만 흘렸다. 절망의 끝자락에서 입술을 맞댔다. 뜨겁고 차가운 입술이 맞붙었다가 떨어졌다. 두 사람이 동시에 중얼댄 말은 아이러니하게도 일치했다. 그것은….

 

사랑해,

였다.

 

서로의 욕심이 결국 파멸을 불러일으킬지언정 두 사람이 가리키는 방향은 일치했다. 현우가 형원에게 사랑을 속삭이려는 순간 형원의 얼굴이 잿빛으로 변하다 못해 하얗게 질렸다. 현우는 고개를 뒤로 돌리고 제 눈을 의심했다. 현우는 온몸의 근육이 뻣뻣하게 굳는 것 같았다.

 

커다란 발톱이 밤하늘을 찢고 눈만 들이민 채 두 사람을 훔쳐보고 있었다. 저 눈은 인간의 것이 아니었다. 위로 찢어진 눈알이 흰자위 하나 없이 샛노란 동공으로 가득 차 희번덕댔다. 얼굴을 뒤덮은 갈색 털과 검은 줄무늬는 짐승을 연상케 했다. ‘그것’이 두 손으로 찢어진 하늘을 억지로 벌리자 종잇장처럼 갈라졌다. 찢어진 하늘이 가루가 되어 낙하했다. 더 넓게 벌어진 하늘 사이로 보이는 괴물은 호랑이의 머리를 달고 있었다. 위로 찢어진 두 눈 사이로 눈알이 하나 더 붙어 있었다. 머리에 달린 날카로운 뿔의 끄트머리가 서슬 퍼렇게 빛났다. 그 괴물은 기다란 혀로 입가를 훑었다. 벌어진 입에서 보이는 날카로운 송곳니에서 침이 뚝뚝 떨어졌다. ‘그것’이 형원과 현우 두 사람에게 손을 뻗었다. 먹잇감을 놓치기 싫은 짐승 같았다.

 

“미안하다.”

 

현우는 엄지로 형원의 눈물을 닦으며 쓴웃음을 지었다. 형원은 공포에 사로잡혀 아무 말도 못 하고 얼어붙었다.

 

“미안하다고 해서 미안.”

 

현우가 형원의 시계를 어루만지자 시곗바늘이 빠르게 돌아갔다. 3시 40분에서 나아가지 못했던 것이 왼쪽으로 빠르게 돌아갔다.

 

“내가 너를 반드시 살려줄게.”

 

현우가 해사하게 웃었다. 어둠 속에서 유일하게 밝은 것이었다. 쉼 없이 돌아가던 바늘이 한 지점에서 움직임이 멈췄다. 시계가 가리키는 시간은….

 

“금방 만나.”

 

3시 10분이었다. 초바늘이 오른쪽으로 움직이는 순간 온 세상이 암전됐다.

슬픔의 암흑이 도래했다.

 

 

 

 

 

 

 

현우는 눈을 떴다. 눈앞에 사랑하는 형원이 쫑알대면서 테이블 위를 치우고 있었다. 순간 눈가가 벌겋게 달아올라 엄지와 검지로 눈두덩을 가볍게 지분댔다. 눈가에 물기가 어렸다가 금방 사라졌다.

 

“일단 갔다 올게요.”

“어.”

 

형원이 햇빛 아래로 뛰어들었다. 현우는 그 뒷모습만 물끄러미 보다가 비닐봉지 아래에 깔아둔 책자 사이에서 종이를 꺼냈다. 어찌나 힘주고 접었는지 접합부가 곧 있으면 찢어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종이가 펴졌다. 그 위로 프린트된 활자가 제법 많았다. 저승도 시대를 얼추 따라가는 모양이었다.

 

[신입 차사 가이드]

[차사는 반드시 망자의 이름을 세 번 부를 것]

[차사는 배정된 망자를 무사히 데려올 것]

[영혼이 구천을 맴돌 수 있는 시간은 한정적임을 기억할 것]

 

현우는 그 아래로 적힌 수많은 항목을 대충 읽었다. 질리도록 교육받은 내용을 곱씹을 이유 따윈 없었다. 현우가 종이를 뒤집었다. 현우의 필체로 적힌 문장들로 빼곡했다.

 

[떠도는 영(靈)을 되살리는 법]

 

종이의 상단 중앙에 휘갈긴 글씨가 컸다. ‘떠도는 영’ 앞에 ‘망자’라는 단어를 펜으로 거침없이 그어둔 흔적이 보였다. 현우는 선배 차사에게 들었던 것과 여태껏 겪었던 경험을 바탕으로 깨달은 조항을 곱씹었다. 눈을 감고도 읊을 수 있을 정도였지만 그딴 건 아무래도 좋았다. 명심해야 할 것은 몇 번이나 봐야 했다. 더 실수하기 싫었다.

 

[홍살문 앞에 도달하기 전까지 진실을 말하지 말 것]

[신입 차사가 만들 수 있는 허상은 최대 30분임을 명심할 것]

[허상을 만들어낸 곳에서 멀어질수록 시공간이 무너지므로 결계 안으로 들어갈 것]

[결계 안의 허상은 무너지지 않으나 최대한 빨리 내보낼 것]

[홍살문에 가까워질수록 힘이 빠져 차사의 모습으로 돌아옴을 기억할 것]

[토백(土佰)에게 들키지 말 것]

[들키는 순간 도망칠 것]

 

현우는 ‘토백’에 큰 원을 그리고 재빠르게 아래로 내려갔다. 처음 마주한 토백의 모습이 머릿속으로 스쳐 지나갔다. 온몸의 털이 쭈뼛 서는 것 같았다. 바로 다음 항목으로 넘어갔다. 현우는 가슴에 납덩이 두 개가 얹어진 것 같았다.

 

[영혼이 자기 자신을 포기하지 않게 할 것]

[포기하는 순간 결계가 무너짐을 기억할 것]

[이 모든 것은 육신이 이승에 온전히 보존되어 있을 때만 가능함을 명심할 것]

 

마지막 항목까지 읽은 현우가 고개를 숙이고 왼손으로 이마를 감싸 쥐었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현우는 써뒀던 모든 글자를 뒤로하고 종이의 우측 상단에 그어둔 네 개의 직선을 뚫어져라 노려봤다. 우선 가장 위에 있는 가로선에 시선을 던졌다. 얼마나 그어댔는지 다른 선들보다 유독 깊게 패여 있었다. 현우는 차사로서 형원을 처음 만났던 순간을 떠올렸다. 처음과 끝이 서툴지 않은 부분이 없어 처참히 실패로 끝났던 순간이었다. 두 번째 선은 가장 처음 그은 가로 선의 중간에서 그어진 세로 선이었다. 떨어지는 돌을 피하지 못해 끝난 배드 엔딩의 흔적이었다. 세 번째는 세로 선의 중앙을 기준으로 우측에 그어진 가로선, 네 번째 선은 두 번째로 그었던 세로선 왼쪽에 조그만 크기로 그은 세로획이었다. 현우는 실랑이를 벌이다가 형원을 홍살문 밖으로 떠밀었던 결말이 떠올랐다. 형원의 몸이 뒤로 쏠리자마자 암전됐던 그 순간은 절대 잊지 못할 것이다. 이것은 현우의 첫 번째 실수였다. 그때 했던 두 번째 실수는….

 

입 밖으로 꺼내기도 싫었다. 얼굴에 쓴웃음이 번졌다. 현우는 네 번째 획 아래에 온점을 찍고 가로선을 느리게 그었다. 이것은 새로 긋는 선이었다. 볼펜을 잡고 있는 손에 힘이 들어가 종이가 파이다 못해 찢겼다. 현우가 펜촉을 뗐다. 다섯 번째 획으로 인해 완성된 것은 바를 정(正) 이었다. 그렇다. 현우가 하는 이 모든 행동은 올바른 것이며, 형원을 위한 것이라면 더더욱 옳았다. 그러므로 현우는 ‘바를 정’을 수없이 그리는 한이 있더라도 해내야만 했다. 현우는 방금 전에 맞이했던 절망을 곱씹었다. 이번에도 실패한다면 완성된 ‘바를 정’ 옆에 새로운 획을 그어야 할 것이다. 현우는 턱을 매만지면서 한숨만 내리쉬었다. 이런 짓은 이번이 마지막이여야만 했다. 현우는 활자를 빼곡하게 채운 종이를 다시 훑었다. 빈자리가 거의 없었으나 종이 하단에 남은 여백이 조금 있었다. 손이 아래로 미끄러지듯 내려갔다. 손날에 새까만 잉크가 묻었다. 현우는 여백의 좌측부터 한 글자씩 느리게 눌러썼다. 새로 적힌 문장이 끝을 맺었다. 현우는 여태껏 써둔 문장들을 눈으로 훑고 종이를 있는 힘껏 구겼다. 네 등분으로 접힌 자국만 있었던 종이에 주름이 졌다. 곧 형원이 여기에 당도할 것이다. 현우는 숨을 가볍게 내쉬고 테이블 위에 널브러져 있던 물건을 챙겼다. 비닐봉지가 반쯤 찼다. 테이블에 나동그라진 종이만 남았다. 현우는 구겨진 종이를 만지작대다 테이블 아래에 버렸다. 종이가 펄럭대면서 밖으로 이탈했다. 아무도 없는 거리에 덩그러니 놓인 종이 쪼가리가 뙤약볕을 오롯이 견디고 있었다. 현우는 자리에서 일어나 파라솔 밖을 나섰다. 형원이 활짝 웃으면서 뛰어왔다. 현우도 따라 웃었지만 가슴 한구석은 여전히 무거웠다.

 

“형, 저 왔어요.”

“어, 그래. 이제 갈까?”

 

현우는 일부러 찢어지게 하품했다.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가 사라졌다. 형원이 건네준 커피를 입에 머금고 눈을 천천히 내리감았다가 떴다. 차로 향하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버려진 종이와 현우가 멀어졌다. 바람이 불었다. 쓰레기로 전락한 종이가 바람에 의해 움직였다. 쓴지 얼마 되지 않아 잉크가 마르지 않은 문장이 반짝였다.

 

[나는 더 이상 형원이를 부를 수 없다]

 

이것은 잔인한 통보이자 현우를 벼랑 끝까지 내몬 현실이었다. 현우는 고개를 들어 내리쬐는 태양을 봤다. 눈이 부셨다. 손을 올려 햇빛을 가렸다. 손가락 사이로 빛이 스며들었다. 무자비한 태양이 피할 수 없는 현실을 속삭이는 것 같았다. 상관없었다. 제아무리 거대한 운명이 현우를 짓눌러도 해야 할 일은 오로지 단 하나뿐이었다. 이번에도 현우는 차 왼편에 앉아 운전대를 잡고 시동을 걸었다.

 

 

암야행으로 뛰어들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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