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일상생활에서 흔히 잊고 지내는 사실 중 하나가 우리가 별의 자녀라는 사실이죠. -MBC 뉴스투데이, 구본철 교수
항성증후군 恒星症候群
사람들이 별이 되는 원인 모를 병을 세간에서는 별의 자식 증후군, 또는 항성 증후군이라고 불렀다. 아무도 그 발생 원인을 모르고, 전세계적으로 확산된 이 이름만큼이나 낭만적이지는 않은 증상은 사람들을 공포로 몰아넣기에는 충분했다. 별의 자식 증후군은 인간이 모두 가지고 있는 별의 흔적에서 기원한다는 것, 딱 그거 하나만 모두가 알았다. 별의 구성 원소가 어느 순간 앙금으로 남듯 쌓이다가 뭉쳐서는, 꼭 사리가 생기는 것처럼 담석화가 된다는 것이었다.
증상의 순서는 이랬다. 첫 번째, 아랫배가 쿡쿡 찌르는 것과 같은 가벼운 통증이 있다. 이는 정말 경미하기 때문에 다들 스트레스성 질환 정도로 넘기기가 쉽다. 두 번째, 별의 씨앗이 뭉친 그 담석이 커지며 행동이 전체적으로 통증 때문에 느려진다. 세 번째, 흰자가 누렇게 충혈 되는 현상이 발생하고 통증의 빈도가 잦아진다. 이때에는 검진을 받을 때 초음파나 CT, MRI 등에서 발견이 되긴 하나, 이미 육안으로 관측이 될 정도라면 치료시기를 놓친 것이나 다름이 없다. 보통 이러한 모든 증상은 일주일 내에 판가름이 나기 마련이다. 마지막, 증상 발현 이후 딱 그 7일 정도가 지나면, 증상이 급속도로 진행되어 갑자기 몸을 뒤틀며 쓰러져서는 경련을 일으키고, 별의 씨앗이 가진 인력 때문에 인간의 몸이 둥그렇게 말려 구의 형태가 된다. 그리고 빛을 발하는 것이다. 이게 전부였다.
별의 씨앗이 생긴 경우 항성 증후군 환자, 물론 죽은 뒤의 이야기이니 그냥 별이라고 칭해도 다를 건 없었겠으나, 어쨌든 그 별이 된 환자가 발하는 빛에 어떤 영향이 있다고 했다. 별이 된 사람의 빛을 쬐게 되면 항성증후군 초기 환자들이 가지고 있는 별의 씨앗의 성장이 급속도로 촉진되어, 주변에 별이 되는 사람들이 다수 발생한다고도 했다. 그렇게 한 마을 전체가 통제된 곳도 있다고, 뉴스는 그렇게 말했다. 해당 구역 전체를 빛 공해 지역으로 지정한다고. 채형원은 그 소식을 왜 진작 주의 깊게 들여다보지 않았을까, 하고 한참 나중이 되어서야 잠시 생각을 했다.
별의 자식 증후군에 대한 연구는 활발했다. 원인 모를 질병이 퍼져나가는 상황이었으니 다급했을 연구자들이 당연히 있을 것이었다. 국가적 협력 중에 정부는 우선 그 질병을 빛에 대한 노출과 타액 전파로 인한 감염 때문이라고 발표했다. 마스크는 불티나게 팔렸고 사람들은 쉽게 집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그 병이 어디에서부터 시작되었는지, 또한 누가 그 병의 씨앗을 가지고 있는지 아무도 알 수 없다는 점이었다. 어쨌든 사람들은 그 원인 불명의 질병 속에서도 일상을 살아야 했다. 채형원은 익숙하게 마스크를 찾아 쓰고는 집 밖을 나섰다. 병은 병이고 출근은 출근이었다. 익숙한 손놀림으로 차키를 집어 들고, 그리 크지 않은 서류 가방을 챙기고, 자연스럽게 저와 함께 살고 있는 손현우에게 입을 맞추고, 그 모든 익숙함 속에서 다만 딱 한 가지 이질적인 부분이 있었다.
배가 살살 아팠다.
워낙 갑각류를 좋아하기도 하고, 날로 음식을 먹는 것을 좋아했으니 장염 증상이거나, 아니면 일이 바빠 스트레스를 받아서 그런 줄로만 알았지. 막상 마스크를 낀 채로 병원에 갔을 때 의사들의 반응은 참담했다. 얼굴이 싹 굳나 싶더니 CT를 권유하질 않나, 무어라 제게는 제대로 말하지도 못하고 급하게 연락을 돌리고는 타자를 치질 않나. 채형원은 사실 의사들을 그리 신뢰하고 있지는 않았기 때문에 그냥 비싼 검진을 팔아먹는 게 아닌가 하고도, 여유가 넘치게 잠시 생각했다. 어쨌든 저를 바라보는 그 등쌀에 떠밀려 CT 촬영을 마치고 나오자 의사는 모니터를 들여다보며 황망한 표정만을 지었다. 결과지를 전달받은 채형원은 종이에 쓰인 결과를 한참 들여다보았다. 손이 떨렸다. 거짓말이죠? 거짓말이라고 해 주세요, 의사 선생님, 제발. 의사는 안경을 추켜올리며 침울한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함께 거주하시는 분이 계시다면 그 분도 확진이 되실 테니 병원에 함께 방문해주시거나, 아니면 미리 그 다음을 준비해주시는 것이…. 채형원에게는 들리지 않았다. 그저 그가 노려보고 있는 흰 종이에는 야속하게도 이렇게 적혀 있었다. 별의 씨앗, 진단명 : 항성 증후군.
그는 한참을 저녁 밥상 앞에서 숟가락도 들지 못 했다. 손현우는 그런 채형원을 가만 바라보다가, 무슨 일 있니, 하고 으레 위로하던 대로 작게 물었다. 입술만 잠시 달싹거리던 채형원은 다시 입을 다물었고, 손현우는 그래도 괜찮다는 듯 밥 한 술을 크게 떠 제 입으로 넣었다. 채형원은 차마 제게 그런 배려를 보이는 손현우의 앞에서 무어라 함부로 입을 열 수가 없었으나, 그에게 계속해서 숨기는 것은 더욱 못할 짓이었다. 형. 그를 작게 부르자 덤덤한 척은 했지만 어쨌든 계속해서 제게 온 신경을 다 쓰고 있었다는 듯, 둥그렇게 뜬 눈이 저에게로 곧장 향했다. 채형원은 그 한 치의 의심도 없는 둥근 눈을 차마 마주할 수가 없어 그저 눈을 꾹 감았다.
형, 나 항성 증후군이래.
….
형도 옮았으면 어떡해요? 타액으로 전염된다고도 했잖아. 내가 형한테 다 옮긴 거면 어떡해요, 내가 형을….
내가 형을 죽음으로 몰아 간 거면 어떻게 해요? 손현우는 그 말에 숟가락을 내려놓고는, 채형원의 벌벌 떨리고 있던 손을 마주 붙잡았다. 그는 혈관이 툭 불거진 손등을 살살 엄지로 쓸어주다가 입을 열었다. 우리가 입술 한두 번 섞었니, 형원아. 그러니까 자책하지 마. 내가 옮긴 걸 수도 있잖아. 손현우는 으레 그래왔듯 생각보다도 더 담담했다. 채형원은 꾹 감았던 눈을 뜨고는 제 연인을 바라보았다. 손현우는 그 둥글고 투명한 눈으로 채형원의 눈을 가만 마주 보았다. 그 안에는 일말의 원망도 보이질 않았다.
내가 옮겼다고 하면 형원이 너는 나 원망할거야?
아니요.
그거 봐. 내가 널 어떻게 원망하니.
채형원과 손현우는 일을 그날부로 바로 그만 두었다. 돈도 꽤 낭비하지 않고 모아 두었었으니 완전히 별이 되어버리기 전까지 충분히 쓰고도 남을 정도는 됐고, 어차피 항성 증후군이 한 번 발생했다면 나을 수 있는 가망은 거의 없다시피 했기 때문이다. 병에 걸렸으니 다른 사람한테 옮기지 않게끔 하기 위한 것도 있었다. 둘은 딱 일주일 어치의 돈만을 남겨두고 나머지는 전부 항성 증후군 연구에 기부하기로 했다. 별이 된 뒤에는 어차피 돈이 필요 없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증상은 시간이 하루하루 흐를수록 서서히 진행되어 갔다. 거울을 바라보면 새하얗던 흰자 대신 황달이라도 걸린 것처럼 노랗게 떠 버린 눈이 저를 반겼다. 그리고 한 닷새 정도가 지났을 무렵, 행동이 날로 굼떠지는 것이 느껴져 채형원은 손현우 몰래 울기도 했다. 누렇게 떠오른 흰자에서는 눈물방울이 바닥에 이끌리기라도 하는 것처럼 툭툭 떨어졌다. 손현우는 무슨 생각을 그리 하는 건지, 가끔 눈을 비빌 뿐 평소보다 더더욱이나 말이 없어졌다. 둘은 자주 혀를 섞었다. 지금 우리의 키스는 별의 맛이 날까, 형원아. 채형원은 대답하지 못 했다.
하루가 더 지나고, 딱 일주일 즈음이 되었을 때, 그리고 채형원이 물컵을 들어올리기 위해 한 세월을 쓴 것처럼 주방에 가만히 서 있을 때, 소파에서 가만 텔레비전을 바라보던 손현우가 화면을 가만 응시한 채로 입을 열었다. 텔레비전 화면에서는 웬 바다 영상이 나오고 있었다. 해안가에서 수많은 별들이 발견되어 거기로 가는 사람들은 이제 아무도 없다는 내용 정도의 짧은 영상이었다.
형원아, 우리 지금 여행 갈래?
혹시라도 적적할까 작게 틀어놓은 자동차 라디오에서는 재난 방송이 흘러 나왔다. 항성 증후군에 대한 해결책은 현재 전세계 정부 협력 하에 연구 중에 있습니다. 시민 여러분들께서는 누가 보균자인지 모르니 마스크를 꼭 착용해주시고, 타액이 오갈 수 있는 행위는 일체 삼가 주시길 바랍니다. 더 이상의 피해를 막기 위해 별이 된 가족들이 있을 경우 빠르게 신고를 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다시 한 번 반복합니다, 시민 여러분께서는 평상시 활동하실 때 마스크를 반드시 착용하시고, 타액이 오갈 수 있는 행위는 일체 삼가 주시길 바랍니다…. 더군다나 타액이 직접적으로 오가는 키스는 해서는 안 될 짓 중 하나일 테였으나, 손현우는 작게 웃으며 채형원에게 말을 건넸다. 야, 정말 이런 거 들으면 이제는 사랑도 금기나 다름이 없네. 근데 어차피 죽을 거면 키스 좀 해도 괜찮지 않냐, 그렇지? 형원아, 입 맞춰 줘. 채형원은 순순히 운전대를 잡은 손현우의 뺨에 입술을 가져다 댔다.
창문을 살짝 열어 두었기에 창문 바깥으로 들어오는 공기는 둘의 속도 모르고 시원하기만 했다. 둘 뿐이었기에 마스크는 쓰지 않았다. 어차피 이제는 써 봐야 의미도 없을 것이었고, 손현우가 무엇을 예견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꽤나 자주 키스를 바랐기 때문이다. 물론 채형원은 그 예견 아닐 생각을 이미 짐작하고는 있었다. 휴게소 따위는 들릴 생각도 않았다. 그저 바다만이 유일한 목적지였다. 중간에 차를 세우고 입술을 부비고, 혀를 가볍게 문지르듯 섞고, 흔한 B급 로맨스 영화처럼 구는 것도 퍽 나쁘지는 않다고, 채형원은 그렇게 저도 모르게 생각했다. 이거 꼭 영화 같기도 하다, 현우 형. 형이 좋아하는 로맨스물이나 뭐 그런 거 있잖아. 문득 제가 그렇게 이야기했을 때 손현우는 무어라 대답하는 대신 낮게 흐흐 웃었다.
바다에는 어둑어둑해진 밤이나 되어서야 도착할 수 있었다. 어우, 엉덩이 쑤신다 야. 우리나라 땅덩어리가 좁은 것 같으면서도 생각보다 넓네. 손현우는 속 좋게 이야기하고는 차를 대강 해안가 근처, 다른 차라고는 단 한 대도 없는 주차장에 세웠다. SUV에서 내리자 짭짤한 소금기 어린 바람이 둘에게로 불어 왔다. 바닷바람을 제 폐 안에 가득 채우기라도 하는 듯, 숨을 크게 들이 쉰 손현우는 채형원에게 손을 내밀었다. 앉아만 있었더니 뻑적지근하네. 좀 걷자, 형원아. 모처럼 바다에 왔으니까. 아무도 마지막이라는 말은 꺼내지 않았다.
둘은 신발을 벗어 자동차 옆, 해안가와 주차장을 나누는 연석에 가지런히 놓아두고는, 맨 발로 모래사장을 밟았다. 두 신발은 아마 거기에서 계속해서 주인을 기다리게 될 것이었다. 사그락 사그락, 하고 모래가 발가락 사이를 스쳤다. 파도의 철썩거리는 소리, 발바닥 아래로 모래가 바작바작 밟히는 감각, 채형원은 느릿하게 타고 올라오는 감각들을 느끼다가, 시선을 올려 저 멀리 흐리게 빛나는 모래사장 한 구석을 보았다. 여기에 남은 인공적인 빛은 저들이 타고 온 자동차 헤드라이트 하나 뿐 이었으니 저 쪽은 소위 말하는 별들이 버려진 곳일 테였다. 현우 형. 그를 부르는 목소리가 떨렸으나 손현우는 그저 묵묵하게 채형원을 바라보았다. 형, 저기…. 보지 마. 손현우는 손을 뻗어 다정하게 채형원의 고개를 감싸 돌려 저를 보게끔 했다. 그리고는 그대로 입술을 겹쳤다. 보지 마, 다른 거. 지금 여기 있는 나만 봐.
형원아, 너 쌍둥이별이라고 들어봤냐.
둘은 파도가 간신히 닿지 않는 곳에 자리해 앉았다. 온통 새까만 밤하늘 위에는 별이 점점이 박혀 있었다. 손현우는 하늘을 가만 올려다보며 말을 이었다. 별 하나 옆에 다른 별이 아주 가까이에 인접해 있는 거래. 이거 민혁이가 저번에 말 해 주더라고…. 걔 참 과학 좋아하지, 나는 그런 건 사실 들을 때마다 익숙치가 않아서 그런지 잘 모르겠던데. 별로 관심도 없고, 근데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조금 더 들어둘걸 그랬나 싶기도 하네, 이제 와서 하는 소리지만. 그리고는 작게 웃음소리를 흘렸다. 이민혁은 손현우와 채형원이 둘 다 알고 지내는 좋은 친구였다. 가끔 과학 얘기도 하고, 술도 마시고 했던. 그러고 보니 항성 증후군이 퍼진 이후로는 미처 얼굴도 못 본지 꽤 되었다. 이제는 더 이상 볼 수도 없겠지만. 상념을 짧게 끝낸 손현우는 채형원을 바라보고는 예의 그 멀건 웃음을 얼굴 한 가득 띄웠다.
다른 건 됐고. 우리가 그거 하자, 쌍둥이별.
…쌍둥이별 말고 애인 별 이런 건 안돼요, 형?
그런 건 없잖아.
뭐 어때요, 과학이 뭐가 중요해, 우리가 최초가 되면 되겠네.
채형원은 문득 시계를 내려다보았다. 갈색 가죽 시계는 열한 시를 막 넘겨 자정으로 슬슬 향해가고 있었다. 7일 째의 밤이 서서히 끝나가고 있는 것이다. 형, 우리는 사실 전부 인간이라는 껍데기를 빌린 존재였을까요? 나야 모르지, 알면 너 분명 또 나사에 있겠다고 그럴 거 아냐. 그런 거 안 믿었잖아, 그치? 작은 웃음이 대답을 대체했다. 시답잖은 이야기를 주고받던 둘은 이제는 정말 모든 것이 끝나간다는 것을 어렴풋이나마 짐작했다. 죽음을 앞둔 사람은 어떻게 해서든 그걸 알아차린다고 했었는데 사실인 모양이었다.
서로의 인력에 이끌린 별 두 개는 손을 꼭 붙들었다. 별들이 몇 버려진, 밤인데도 불구하고 저 한 구석이 환하게 빛나는, 오직 둘 뿐인 해안가에서 두 별의 자식들은 손을 꽉 붙잡은 채로 다가올 무언가를 대비하기라도 하는 듯 둥글게 몸을 말았다. 저 멀리서 보이는 것도 꼴에 별빛은 별빛이라고, 몸 안에 잠든 그 망할 씨앗의 성장이 촉진된 모양이었다. 등을 둥그렇게 만 채로 손현우는 나직하게 으윽, 하는 신음을 흘렸다. 입고 있던 얇은 반팔을 적실 정도로, 등허리에 식은땀이 축축하게 배어 나왔다. 손현우의 핏줄이 선 큰 손을 단단하게 감싸 잡고 있던 채형원은 이를 뒤늦게 자각했다. 어쩌면 점점 세기를 더해가는 뒤틀리는 고통 때문에 본인의 피부에서도 열이 올라 땀이 배어 나오고 있었기 때문에 그랬을지도 몰랐다.
야 이거 생각보다 배가 아프네.
진통제 가져올 걸 그랬나 봐요, 많이 아파요?
아냐, 그래도 참을 만은 해.
형은 아픈 거 워낙 잘 참잖아요.
그건 그렇지.
그래도 다행이다, 형이 너무 아프지 않았으면 해요.
채형원은 그 말까지 간신히 다 하고 나서야 드디어 손현우의 앞에서 울었다. 큰 눈을 온통 눈물이 감싸고 미처 매달리지 못한 눈물들은 모래사장으로 뚝뚝 추락했다. 형이, 너무 아프지 않았으면 해요. 정말로, 나는 아직도 우리가 왜 죽어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나 형이랑 오래오래 살고 싶어, 근데 형 있잖아요… 눈앞이 반짝거려요, 형. 눈앞이 너무 밝아, 나 이거 울어서 그렇잖아요, 그렇죠? 형, 형…. 나 무서워. 무서워요, 현우 형. 뱉어지는 말들이 눈물 때문인지, 또는 고통 때문인지 종종 툭 끊어졌지만 그는 인내심을 발휘해 끝까지 채형원의 말을 들었다. 끝이 되어서야 감정을 전부 토해내는 채형원을 손현우는 그저 감싸 안았다. 그의 눈에서 떨어지는 눈물이 이제는 마냥 빛을 발하고 있었다. 정말 별이 되어가는 것처럼. 눈물을 입술로 가볍게 문지르듯 닦아주고, 그는 한 번도 제 앞에서 쉬이 두려움을 드러내지 않았던 제 연인의 등을 토닥거리다가 다시 고개를 들어 바라보았다. 형원아, 무서워하지 말자. 우리 그래도 여기 함께 있잖아. 그러나 손현우도 무서웠다. 손현우는 저 역시도 울고 있다는 것을 자각했다. 눈앞이 알 수 없는 빛깔로 번쩍거렸기 때문이다. 둘은 그 빛무리들 사이에서 눈을 마주쳤다. 이제는 별이 박혔다고, 또는 별이 되었다고 불러야 정확할 수 있는 눈이다.
…형 눈은 이럴 때에도 엄청 반짝이네요. 아니, 이럴 때여서 더 그런가?
….
그거 알아요, 형? 나 진짜 형 사랑했어요.
…형원아.
진짜 사랑했어, 현우 형.
형원아…. 손현우는 입술을 달싹였다. 목소리 대신 목구멍에서 빛이 스멀스멀 기어 나오는 것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꽉 붙잡은 손아귀가 둥글게 말리는 것이 느껴졌다. 둥글게, 둥글게…. 손현우는 채형원과 손깍지를 단단히 껴서는 꼭 잡았다. 시야가 온통 환했다. 서로에게 동그랗게 말려가고 또한 이끌리면서, 그는, 마지막으로, 입술을 끌어 올려 웃어 보였다. 손현우는 채형원이 마지막으로 볼 수 있는 게 저의 웃음이었으면 했다. 슬프게 끝나는 사랑이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제 몸을 뒤덮는 빛을 느끼며 간신히 소리를 내어 대답했다.
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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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 소리만이 오직 유일한 소음인 해안가에서는 드문드문 반짝이는 빛들만 가득했다. 두 인접한 별들도 멀리서 바라본다면 그저 구분이 어려운 반짝이는 빛 중 하나에 불과할 것이었다. 사람들은 별의 자식 증후군이 사라지고 난 후에 그 폐쇄된 해안가를 죽은 별들이 가는 곳이라 명명했다. 아무런 연고지도 없이, 하늘에도, 바다에도 아무 곳에도 가지 못할 죽음들이 머무르는 곳이라는 의미였다. 물론 이는 아주 나중의 이야기일 뿐이다.
외전 : 항성증후군 타로 리딩
창작 세계관인 ‘별의 자식들/항성증후군’은 기본적으로 일반적인 질병 아포칼립스와 유사하나, 그 기원이 바이러스나 세균이 아닌 인간 내부에 있는 별의 씨앗으로부터 유래하기에 정확히 병증적인 부분들과는 들어맞지 않는 부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 외전 타로 리딩의 경우 만약 항성증후군이 본편에서 풀었던 내용보다는 한 차례 더 악화된, 정말 아포칼립스로서 작용했다는 전제 하에 채형원과 손현우 서로가 그 상황 내에서 보여지는 성격과 성향이 어떨지, 또한 취하는 포지션과 행동방식, 마지막으로 살아남는가에 대한 여부와 그 스토리의 결말에 대해 담고 있습니다. 본편의 행동 유인이라 생각해 주셔도 좋고, 또는 전혀 별개의 이야기라고 생각해주셔도 좋겠습니다. 모쪼록 어떤 방향이든지 자유롭게 즐겨주시기를 바랍니다.
① 성격
손현우는 기본적으로 채형원에게 가진 애정이 큽니다. 현실적인 면이 있으나 이 상황 내에서는 본인의 곁에 있는 사람을 가장 중요시하고, 이 사람을 버릴 생각 또한 전혀 하지 않습니다. 본인이 가진 애정의 크기만큼이나 상대에게 헌신적인 태도를 보이며, 끝의 끝까지 상대에게 집중하는 모습을 보일 수 있겠습니다. 손현우에게 중요한 것은 이 문제에 대한 거창한 해결이나, 아니면 끝까지 살아남는 것 따위가 아닙니다. 손현우에게는 채형원이 가장 중요합니다. 손현우의 모든 행동의 유인은 채형원입니다.
채형원은 약간은 오만하게 행동한 면이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오만한 성격은 아니나 이 세계관에서는 조금 방심하거나, 또는 열심히 살아왔고 그만큼 힘들게 살았으니 설마하고 생각한 경우가 크겠습니다. 감정적인 편이고 동요도 빠른 편입니다. 최대한 차분하게 행동하려고 하나 손현우에게 많이 의지하는 모습을 보일 수 있겠습니다.
② 성향
손현우는 행동적입니다. 이미 한 번 결정했다면 더 이상 번복하지도 않고, 후회도, 미련도 가지지 않습니다.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손현우가 해야 할 일이고 그가 이 상황 내에서 주로 보이는 성향입니다. 그는 추진력을 가지고 있는 만큼 주도적인 위치를 택하고, 혼란스러워 하는 사람을 제 손으로 잡아 이끕니다. 그는 아무도 원망하지 않습니다.
채형원은 회피적 성향을 주로 보이고 행동에 있어 숙고하는 경험이 많을 수 있겠습니다. 먼저 움직이는 것보다는 꾸준히 생각한 이후 행동하기 때문에 신중한 움직임을 보이는 경우가 잦아 보입니다. 그러나 그는 손현우에 의해 확신을 얻습니다. 이 사람의 곁에서는 더 이상 혼란스러워하지도 피하지도 않겠습니다. 손현우가 행동을 취할 수 있었던 것은 기존에 채형원이 저에게 안정감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서로가 상호 보완적인 관계라고 보시는 것이 적합하겠습니다. 만약 채형원이 없었다면, 손현우는 행동하지 않았을 것이고, 손현우가 없었다면, 채형원은 그저 회피만 할 뿐 더 이상의 움직임이 없었을 것입니다.
③ 포지션
손현우는 본인의 마음을 잘 조절하고, 그렇기에 대체로 모든 상황에서 차분한 양상을 보입니다. 감정이 없다는 뜻은 아니고, 그만큼 조절을 잘 한다고 보는 것이 적합하겠습니다. 기본적으로 강한 의지력과 정신력을 가지고 있어 주로 리더의 역할을 맡을 가능성이 큽니다. 관계 내에서는 적극적이고 주도적인 입지를 택할 것으로 보이네요.
채형원은 이상적이고, 미래를 꿈꾸는 사람입니다. 당장의 현실도 물론 중요하지만 살아가기 위해서는 미래에 대한 희망도 필요하기 마련입니다. 약간은 공상적인 부분도 있으나, 이는 전부 손현우에 의해 완화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이 이야기 내에서는 채형원이 손현우의 영향을 강하게 받고 있다고 나타나고 있습니다.
④ 행동방식
손현우는 혼자 열심히 생각을 합니다. 기본적으로 본편에서 혼자 텔레비전을 보며 생각하는 장면과 같은 모습을 보이다가, 그 이후 스스로의 결정이 끝난 후에는 곧바로 고민 없이 움직이는 경향성을 보일 수 있겠습니다.
채형원은 손현우를 포용합니다. 손현우가 어떻게 하든 그를 용인하고, 따라 움직일 의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역시도 손현우에 대해 지고지순한 애정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채형원은 손현우를 전적으로 신뢰합니다. 그가 있는 곳이 곧 제가 있을 곳이기 때문입니다.
⑤ 결국 둘은 살아남는가?
기본적으로 별 카드는 희망을 이야기합니다. 다만 이 이야기를 기반으로 해석했을 때, 별은 둘 사이의 애정에 대한 믿음, 그리고 별이 되는 미래를 그리고 있다고 보는 것이 적합할 수 있겠습니다. 둘은 별이 되는 결말을 통해 서로에 대한 마음을 재확인합니다. 서로가 아니면 안 된다는 사실마저도 둘은 다시금 알게 됩니다. 그래도 괜찮습니다, 둘은 별로서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⑥ 결말
그렇기에 결말은 비극적일 수밖에는 없습니다. 쌍둥이 별 또는 연인 별로 해안가에 남겨진 둘은 앞으로 수 평생을 바다를 바라보며 살 수 있겠지만 인간으로의 생은 끝난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어쨌든 둘은 함께 있습니다. 두 별들은 쌍둥이별이 되자는 약속을 지켜냈습니다. 인간의 육신을 버리고서도, 모든 속박에서 벗어난 채로도 사랑하는 것을 택한 데에 가깝습니다. 이 결말이 과연 사람들이 말하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버려진 별에 불과할지는 읽어주시는 분들께서 자유롭게 생각해주신다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