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Night Walk


레터스 투 에이치
달력 씀

 

 

 

 

손현우가 잠적한 지 삼 개월 하고도 열흘째.

 

실종이라기엔 자발적이었고 필사적으로 찾아야 하기에는 납득할만한 사유가 있었다. 대치 상황 중 팀원의 사망. 손현우 부상. 그러나 팀원의 희생을 슬퍼만 하기에는 너무도 큰 승리를 거뒀다. 인질을 전원 생존 상태로 귀환시켰고, 반정부 단체의 핵심부를 무너뜨려서 기나긴 싸움이 멈췄다. 이제 남은 건 사회적 합의뿐이었다.

 

사직서를 내고 남은 일을 마무리해나가던 손현우가 갑자기 사라진 건 그가 팀 리더로서 공로 훈장을 받기로 결정된 다음 날이었다. 모두가 그를 이해하며 충분한 휴식을 통해 회복하길 바랐다(그 이면에는 손현우가 부상으로 인해 더 이상 능력의 상태 불능 판정이라는 것이 가장 크게 작용했다).

 

 

형원은 한 달은 그냥 가만히 기다렸다. 오늘은 오겠지. 내일은 오겠지. 바람은 의문으로 바뀐다. 밥은 먹고 지내나?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까지 잠적한다고? 의문은 걱정에 도달한다. 무슨 일 생긴 건 아니겠지. 설마. 어디 다치기라도 한 건 아니겠지?

 

걱정 단계에 도달해서야 현우의 흔적을 찾아다녔다. 이 형 이렇게 잘 숨는 사람이었단 말이야? 주변인들이 어련히 알아서 오지 않겠냐며 한두 마디씩 던지는 말이 틀렸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모르는 것도 아니다. 손현우는 제가 아는 사람 중에 그 누구보다 혼자 이겨내기를 잘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아마 그 누구도 발견하지 못했을 기록을 발견한 지금은 상황이 좀 달랐다. 생각보다 복잡한 이야기였다. 요점은 하나였다. 손현우가 이중 스파이라는 거.

일지는 간결한 어체였으나 꽤 오랜 기간에 걸쳐 기록되어 있었다. 배신과 배신과 배신. 의도치 않게 반정부군의 스파이에서 정부군의 스파이가 되기까지의 일들. 

 

나는 니가 생각하는 것만큼 정의로운 사람은 아닌데.

 

말을 하고서 민망한지 눈꼬리를 접어 웃던 표정이 순식간에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정의로운 사람이라는 말을 아주 어색해했었던 것 같기도 하고. 상념은 순식간에 현우를 처음 만났던 순간으로 데려간다. 그렇게 처음 만난 순간으로부터 11년이 지났다. 열일곱의 채형원은 스물여덟이 되었고, 열아홉의 손현우는 서른이 되었다.

 

잠들지 못하는 기나긴 밤에 일지를 작성했으리라. 눈을 감으면 악몽이고 눈을 뜨면 차디찬 현실이 있었겠지. 발작하듯이 일어나 식은땀을 뚝뚝 흘리던 현우에게 해줄 수 있는 거라고는 고작 물 한 잔 가져다주는 것뿐이었다.

 

이해하지 못했던 과거의 조각들이 꼭꼭 숨겨뒀던 기록 하나에 모두 맞춰졌다. 정의로운 사람은 아니다. 어떤 밤에 일어나서 괴로워하던 건 죄책감만은 아니다. 불안감이다. 형원은 여전히 현우가 식은땀을 흘리며 벌떡 일어나던 순간을 기억한다.

 
기록을 덮고 한참을 표지만 쳐다봤다. 텍스트에는 뉘앙스가 하나도 묻어나지 않는다. 그렇지만 수기로 작성된 일지는 획 하나하나 꾹꾹 눌러 쓰여있었다. 한쪽에 등을 질 때마다 잃는 것들이 아주 많았을 것이다. 고뇌했을까? 상부에서 의심을 받아야만 하는 순간들은 또 어땠을까. 대의를 위한답시고 동료를 잃게 되는 순간을 아주 괴로워했음은 너무나도 명백하다.
 
모든 게 끝난 지금은 후련할까? 나는 당신의 심정을 헤아릴 수 없다.
 
 
 
 
 
센터는 꽤나 잠잠했다. 이제 남은 건 사회적 합의와 법적 절차뿐이라 센터에는 유례없는 평안이 찾아왔다. 센티넬-이라고 불리는 특수능력보유자-들은 대부분 관사에서 생활을 해야 했는데, 이젠 상주 인원을 대폭 축소해서 출퇴근하는 사람이 꽤 많아졌다. 정복을 입고 밖에 나가면 센티넬을 알아보고 사인해달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어서 인기를 체감하러 돌아다니는 어린 센티넬들도 꽤 많았다.
 
이 평화는 어디로부터 온 걸까? 센터 1층 진열장에는 <61팀. 손현우>라고 적힌 공로 훈장이 놓여있었다. 훈장은 그에게 어떤 짐으로 다가왔길래 모든 게 끝난 지금 숨어버린 걸까. 원래도 거창한 타이틀이 붙여지는 걸 못 견뎌 하는 사람이었다. 형원은 한참이나 훈장에 새겨진 이름을 쳐다봤다. 정복 안주머니에 넣어둔 현우의 일지가 적힌 작은 수첩이 바스락댔다.
 
 
형원은 센터 구내매점에서 아이스크림 냉동고를 한참이나 노려보는 중이었다. 분명 이번 달 신제품에 죠스바 레몬 맛이 포함되어 있었는데 구내매점에는 단 하나의 맛도 들어와 있지 않았다. 심지어는 이번 달 신제품뿐만 아니라 현우가 즐겨 먹던 치즈케이크 콘도 없었다. 그건 몇 년 전에 나온 제품이었는데. 아무리 센터가 외진 곳에 있다지만 이렇게 업데이트가 안 되어있을 줄은 몰랐다.
 
현우는 새로운 물건들에 크게 관심이 있어 보이지 않았는데, 새로운 과자나 아이스크림에는 꽤 흥미를 보였다. 종종 저녁 훈련이 끝나고 관사 밖으로 나서는 현우를 보며 형원도 미적미적 옷을 입고 따라나섰다. 대부분 목적지는 차로 30분 정도 나가면 나오는 편의점이었다.
 
형은 왜 여기까지 밖으로 나와요? 센터에도 매점 있잖아요.
새거가 없어.
새거?
어.
새거 뭐?
 
형원이 물어봐봤자 이미 편의점에 도착한 후에는 이것저것 군것질거리를 담느라 한껏 집중한 상태였다. 머릿속에 생각해 둔 게 있었는지 분주하게 움직여서 한가득 챙겨오고는 계산할 즘 형원에게 물어보는 게 루틴이었다. 너 뭐 살 거 없어? 자주 나오지도 못하는데 살 거 있음 빨리 사. 형원이 아무것도 고르지 않고 계산대에 멀뚱멀뚱 서 있으면 현우는 제가 괜히 더 아쉬워했다.
 
그래서 형이 바깥 편의점까지 나갔구나.
 
안이 다 비치는 냉동고를 보면서 죠스바 레몬 맛을 한참 찾고 나서야 이해가 됐다. 편의점을 그렇게 따라가면서도 이해를 못하던 게 이렇게 한 번에 이해될 줄이야. 평소 같으면 아이스크림 하나 먹자고 차 끌고 나가는 일은 없었을 테지만 지금은 꼭 먹어야 직성이 풀릴 것 같았다.
 
 
현우와 자주 들렀던 편의점엔 역시나 죠스바 레몬 맛이 있었다. 당장 오늘부터 유통된다는 과자도 있었다. 신제품이 한가득이라 정신없이 구경하고 나서야 몇 시간 전까지 구내매점의 냉동고 유리만 뚫어져라 쳐다봤던게 떠올랐다. 그리 멀지도 않은데 관사에 들어가면 괜히 다시는 맛보지 못할 것 같은 생각에 죠스바만 한 박스를 샀다.
 
박스를 들고 편의점 밖으로 나와 트렁크를 열자, 몇 개월간 방치해둔 탓에 짐이 꽤 많아 어지러웠다. 박스까지 담자 비좁아진 칸에 현우가 산 과자를 담을 수 있을까 잠깐 고민했다. 뒤를 돌아보며 형, 하고 부를 뻔하다가 혼자 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괜히 허탈감이 밀려왔다. 이 순간에서조차 결국은 현우의 생각을 하는 걸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소리 내 허탈한 웃음을 뱉고 나자 어디선가 저를 뚫어져라 쳐다보는 시선을 알아차렸다. 혹시나 하고 시선을 따라 쳐다본 곳에는 꼬마 셋이 편의점 안쪽에 앉아 형원을 쳐다보고 있었다. 센터에서 바로 나오다 보니 정복을 입고 있던 터라 형원을 알아본 모양이었다. 빤히 쳐다만 보고 있기에 유리를 통해 편의점 안쪽을 보고 손을 흔들었다. 그게 허락이라도 되는 양 세 명이 우다다 밖으로 달려 나왔다. 사인 안 한 지 오래됐는데 괜찮으려나. 실없는 생각을 하며 저도 모르게 픽 웃었다.
 
“저 센티넬 실제로 처음 봐요.”
“저도요.”
 
우르르 달려 나와서는 어디서 났는지 사인해달라며 종이를 들이밀었다. 자켓 안쪽에 지니고 있는 펜을 꺼내 사인을 하자 세명이서 돌아가며 말을 했다. 옷 완전 멋있어요! 진짜 막 불 뿜고 할 수 있어요? 전기로 마시멜로우도 구울 수 있어요? 저 바다도 막 움직일 수 있어요? 처음 보는 센티넬이 신기한지 말이 끊이지 않았다.
 
“얘들아 미안, 밖에서는 능력 쓰면 안돼서 못 보여주겠다.”
 
자 여기. 애들의 순수한 질문에 사인하는 내내 웃던 형원이 여전히 웃음을 머금은 채 사인을 나눠줬다. 알겠다고 답은 했지만,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우물쭈물하는 모습에, 형원이 주변을 살피다가 아이들과 악수를 할 때 전류를 살짝 흘렸다. 정전기가 난 듯 찌릿하는 느낌에 눈이 확 커졌다. 형원이 입술에 검지를 얹으며 쉿, 하는 말에 세 명 모두 동작을 따라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진짜 안녕의 인사를 하고 차를 타러 가려는데 한 아이가 뒤에서 형원의 옷 끄트머리를 슬쩍 잡더니 수줍게 말했다. “히어로 같아요.” 세 명이서 하려던 말이었는지 다시 편의점 안으로 후다닥 도망가는 모습에 형원이 눈썹을 누그러뜨리며 웃었다. 히어로 같아요, 라니. 아이들 눈에는 히어로 영화에 나오는 주인공처럼 보인다는 사실이 조금 민망하기도 했다. 하긴. 저야말로 같은 센티넬이면서도 현우를 보며 히어로라고 생각했었다.
 
[히어로라고 하기에는 쫌...]
[쫌 그릏지 않나?]
 
머쓱하게 웃는 모습이 또 한 번 스쳐 지나갔다.
 
형은 어디에서 뭘 하고 있어요? 밥은 잘 먹고 있어요? 좋아하던 간식거리는 잘 구할 수 있어요? 잠은? 이제는 악몽 안 꿔요? 식은땀을 흘리고 있으면 옆에서 손을 잡아줄 누군가가 없어도 괜찮아요? 
 
수많은 사람들에게 히어로라는 얘기를 들으면서 느꼈을 죄책감을 알 수 없다. 그러나 분명한 건 그가 제게 그랬듯이, 적어도 그 사람이 혼자 한없이 딥해지도록 놔두고 싶지 않았다.
 
어디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까? 차를 몰고 센터로 가는 내내 생각했다.
 
처음으로 돌아가자. 수첩에 적힌 일지를 첫 페이지부터 다시 읽었다. 조금은 겁이 나서 제대로 보지 못했던 일지를 마주했다. 무감하게 쓰여있다고 생각했지만, 감정적 동요가 보이는 페이지도 있었다. 처음으로 한 장이 말끔하게 찢어져 있는 듯한 페이지는 현우가 속했던 팀에서 처음으로 사상자가 있던 날인 듯했다. 팀원의 이름을 보아하니 형원이 직접 마주한 적은 없으나 꽤 익숙한 이름이었다. 아마도 현우가 일전에 형원의 차를 빌려서 갔던 묘의 주인인 듯 했다. 묘지에 간다고는 믿을 수 없게 편의점에서 롤케이크나 과자 따위를 잔뜩 사던 현우의 모습이 떠올랐다.
 
언제까지고 그곳에서 기다릴 수 있다. 온다는 확신만 있다면. 기다리는 건 문제가 되지 않으니까.
 
 
관사에서 잠 못 드는 밤을 지새우고 아침이 되자마자 곧장 휴직계를 제출했다.
기간은 무기한.
 
 
 
 
*
 
 
 
“니가 여기 왜 있어?”
 
한적한 시골에서도 외곽으로 빠져 산속에 있는 묘 하나. 형원은 그 묘 옆의 나무에 기대어 앉아서, 낯익은 얼굴이 왜 여기에 있는지 순수하게 궁금해하는 저 사람을 벌써 일주일도 넘게 기다렸다.
 
“어떻게 왔어?”
“웬일로 밥 먹었냐고는 안 물어보네요.”
“밥 먹었어?”
“아니요.”
“근데 왜 물어봐달래.”
 
사실은. 도망이라도 칠 줄 알았다. 말 한마디 없이 현우가 잠적해버린 데에는 다시는 보고 싶지 않다는 언어가 함축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저렇게 반질반질한 얼굴로 아무렇지도 않게 마주하게 될 줄은 정말로 몰랐지. 형원은 그게 참 손현우 같다고 생각했다.
 
“예전에 형이랑 왔던 게 생각나서 왔어요. 찾아볼 곳은 다 찾았는데 여기 말고는 더 떠오르는 곳도 없었고.”
“음... 잘 찾아왔네.”
“그때 운전 내가 했거든요.”
“그랬나?”
“당연하지. 형 장롱면헌데.”
 
머쓱하게 이마를 긁적이던 현우의 반대쪽 손에는 까만 비닐봉지가 들려있었다. 눈짓으로 봉투를 가리키며 그게 뭐냐고 묻자 아, 하는 소리와 함께 오징어랑 청하 따위를 꺼냈다. 종이컵이랑 과자. 케이크. 묘 앞의 상석에 하나씩 내려놓는 물건들은 여전히 보통 상석에 올려놓을 만한 것들은 아니었다. 그때도 저런 물건들을 꺼내기에 물어봤었는데. 이름 말고는 답이 없었다. 그리고 이제는, 물어보지 않아도 그게 누군지 알고 있다.
 
형원이 끄응 하는 소리를 내며 몸을 일으켰다. 온종일 나무 옆에 앉아있느라고 몸이 쑤셨다. 엉덩이도 툭툭 털고 상석 위에 일회용 그릇을 펼쳐놓고 있는 현우 옆으로 다가가 슬쩍 도왔다.
 
"어떻게 여기 올 생각을 했네."
"그럼요."
"나 없었으면 어쩌려고."
"그러면... 형이 올 때까지 기다리려고 했죠. 기우제를 비가 올 때까지 지내듯이."
 
현우가 형원의 눈을 마주칠 때까지 뚫어져라 쳐다봤다. 저를 바라보는 게 분명한 시선에 그 눈을 마주했을 때에야 형원이 방긋 웃었다. 농담인데, 진짜예요. 그 말에 또 한 번 가슴속 한 곳이 시큰거렸다.
 
이 심각한 상황에서조차 어이없는 말로 사람을 무장해제 시킨다. 형원의 다정함이라는 건 대체로 그런 것이었다. 후회와 악몽에 잠 못 드는 순간에 다가와 말을 붙여오는 것. 정적의 여운을 헛된 말로 채워버리지 않는 것. 그리고 지독한 외로움에 스스로를 가둬버리면서도 누군가를 갈구할 때 나타나는 것. 형원은 저의 그 타이밍들을 정확하게 알았다.
 
딥해지지 않게 뭐든 가볍게 넘기려고 하는 성격은 방어기제다. 엉켜있는 속내를 주위에 드러내고 싶지 않다는 욕망에서 비롯된 성격. 어떤 사람들은 단순하다고 하고 어떤 사람들은 담백하다고 했다. 그 평온함을 높이 평가하는 이들이 현우를 보고 당신의 그 한없이 담백하고 우직함을 닮고 싶다고 말을 할 때 제 동굴을 들여다본 이가 형원이었다. 형은 얼마나 오래 연습했어요? 그런 질문은 처음 들었다. 처음으로 관통당했다. 그래서 더 알리고 싶지 않았다. 그와 동시에 이해해줬으면 했다. 사람은 이렇게나 모순적인 동물이다. 그러니까 도망쳤으면서도 어쩌면 누군가는 알 장소로 제가 돌아온 것처럼.
 
 
"형이 쓴 일지 읽었어요."
 
전혀 모르고 왔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이렇게 직구로 던질 줄은 몰랐지만.
 
"일지를 읽는데 필체도, 작성방식도 너무 낯이 익은 거예요."
"..."
"나는 형을 11년을 알았잖아요. 11년 내내 옆에 있었어요."
"그랬지."
"절대 아니라고. 형은 그럴 사람이 아니라는 말이 나와야 하는데. 자꾸만 내 머릿속에 과거의 조각들이 퍼즐처럼 맞춰지더라고요."
"응."
"나는 형이 악몽을 꿀 때마다 그게 죄책감이라고 생각했어요. 형이 괴로워하던 모든 것들이 정의감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근데 아니었던 거지. 불안감이었고 괴리 감이었던 거지."
 
악몽을 꾸다가 벌떡 일어나서 스스로 무슨 말을 했는지 돌아보는 게 두려움이었구나. 발각될까 봐 무서웠구나. 그걸 이제야 알았어요. 형원의 목소리가 현우를 찔러왔다. 변명은 없었고 할 수 있는 거라고는 대답뿐이었다. 응. 그래. 그랬지. 부정할 수도 없다. 지독하게도 거짓말을 못 했다.
 
"고민 많이 했어요. 내가 이곳에 와서 형을 기다리는 게 주제넘은 행동은 아닐까. 괜히 감당하지도 못할 거면서 만난다고 무슨 방법이 생기겠나. 그대로 그냥 묻어두려고 했어요."
 
이렇게 설명하는 것마저 형원의 다정이다.
 
"그것도 꽤 괜찮은 방법이었을 텐데."
 
이렇게 밀어내는 것마저도 현우의 배려다. 손현우는 밀고 당기기 같은 건 하지 않았다. 말을 아낄지언정 거짓말은 하지 않았다. 그래서 현우가 이건 네 선택이다. 하고 짚어주는 게 배려라는걸 형원은 잘 알았다. 그래서 서운하지 않았다.
 
"그치만 혼자 잘 견뎌낸다고 해서 외롭지 않은 건 아니잖아요."
 
밥은 잘 먹고 다니는지. 잠은 잘 자는지. 세상은 형을 영웅으로 만들어 그 업적에 대해 떠드는데 정작 그 사람은 괴로워하고 있잖아요. 추위에 조금 맹맹해진 목소리는 흔들림이 없다. 그 단단한 목소리가 결국 형원을 똑바로 바라볼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뭣보다... 그냥 그런 형이 너무 보고 싶었어요. 그게 다예요."
 
꾹꾹 눌러쓴 일지처럼 형원의 말이 한단어 한단어 눌러 담은 편지 같았다.
 
"너는 너무 다정한 게 탈이야."
"형한테만 그러는 거예요."
 
다시 한참을 묘만 바라보고 있던 현우가 종이컵에 있던 청하를 한입에 들이켰다. 몇 방울 남지 않은 청하는 묘에 뿌렸다. 한참 외곽으로 빠진 시골의 산 어드메에 유일한 빛이라고는 별빛뿐이다. 제가 묘만 쳐다보는 사이에 저만 쳐다보면 형원을, 이번엔 현우도 눈을 맞춰 똑바로 바라봤다.
 
“방금 봤지? 나 술 마셔서 운전 못 해.”

“제가 운전해야죠.”

“돌아갈 곳도 없어.”

“돌아갈 필요 없어요. 새로운 길로 가면 되지.”

 

형원이 손을 내밀었다. 술 마셔서 중심 못 잡을까 봐. 그 말에 실없는 웃음이 소리내어 튀어나왔다.

 

"얼른 잡아요."

 

저보다 더 뻔뻔한 모습에 웃음이 계속 새어 나왔다. 형원은 민망하지도 않은지 눈썹을 한번 들썩이고는 내민 손을 흔들었다.

그 손을 바라보던 현우는, 결국엔 내밀어진 손을 마주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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