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가 시작됐다.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시야를 반기는 건 여름의 뜨거운 볕이 아닌 추적추적 내리는 빗소리와 음습한 공기다. 습하고, 덥고, 찝찝하다. 아무리 씻고 자도 잠에서 깨면 어김없이 온몸이 끈적거린다.
침대에서 이불을 치워놓은 지 벌써 한 달도 넘은 손현우는 일어나기 무섭게 물병을 찾는다. 자기 전 얼음을 가득 채워놓은 보냉 텀블러를 들자 달그락달그락 명랑한 소리가 울린다. 한 며칠은 물을 못 마신 사람처럼 800ml 물을 단숨에 비운다. 목울대가 크게 일렁이고, 차마 입으로 못 넘어간 물이 턱을 타고 가슴골로 흐른다.
하.
답답한 숨이 턱 토해진다. 살짝 충혈된 눈이 벽 쪽을 향한다. 에어컨 송풍구가 굳게 닫혀있다. 저게 왜 이리 괘씸한지. 이로써 에어컨이 고장 난 지도 일주일이 넘었다. 선풍기 틀고 자는 것도 한계가 있지. 침대에 걸터앉아 답답한 숨만 연신 내쉬던 손현우가 그제야 창밖을 본다. 살짝 열린 커튼 너머로 회색빛 하늘이 보인다. 비가 꽤 많이 오는 모양인지, 창을 두드리는 빗소리가 거세다.
형, 우리.
우리…….
독립하기로 했어요. 애들 다.
그 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손현우는 섣불리 판단하지 못했다. ‘뭐?’라는 되물음도, ‘갑자기?’라는 당혹스러움도 비추지 못했다. 모든 게 애매했다. 본인이 생각하기에도 웃긴 감은 있었다. 서른 넘어가는 성인 남성들끼리 한 팀이라는 이유로 평생을 함께 사는 건, 아무리 봐도 무리가 있는 얘기였으니까.
그래도.
아직도 생각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래도’라는 말이 나오는 거 보면, 아직은 너무 이른 게 아닌가 하고.
적어도 귀띔은 해줄 수 있는 거 아니니. 대화는 해볼 수 있는 거잖아. 통보하면 끝이냐? 그런 말들이 목구멍을 치고 올라와 혀끝까지 매달렸으나 손현우는 실수로라도 입 한 번 방긋거리지 않았다. 그저 가만히 쳐다보다가 ‘그래?’라고 말을 끝냈다.
거기서 뭐라 꺼낼 말이 없었다. 붙들기에도 웃겼다. 자신이 돌아오기 무섭게 독립 얘기를 꺼내는 동생들을 마주하며 손현우는 괜히 열을 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였을까. 너무 침착하게, 차분하게, 냉정하게. 아주 혹은 체념한 투로 그러느냔 말만 해서일까. 그 후로 동생들은 저들끼리 짜고 친 것처럼 돌아가며 괜찮냐고 물었다. 형 괜찮냐고, 미안하다고, 형하고 얘기를 해야 했는데. 그런 말을 줄줄이 늘어놓다가, 자기들도 그 꼴이 같잖다고 느꼈는지 그저 미안하다고 말을 줄였다.
미안해?
미안하다고?
그걸 아는 새끼들이 이딴 식으로 행동하냐?
한 번은 이런 말들을 생각해보기도 했다. 물론 진심으로 욱해서 나오는 말은 아니었다. 단순히 그냥, 예민하게 받아치면 나올 법한 모난 말들을 머릿속으로만 곱씹어봤을 뿐이다.
가뜩이나 평이하고 무던하던 손현우는 한 살 한 살 익어갈수록 감정의 곡선을 아예 없애버렸다. 그런 듯했다. 늘 평탄하게 흘러가서, 되레 주변인들이 걱정할 정도로. 너 그거 쌓아두기만 하면 병 돼. 이런 말들을 안부 인사처럼 들을 만큼. 무리는 아니다. 손현우도 사람이다. 다른 사람들보다 끓는 점이 높은 것도 아니고, 유난히 무딘 것도 아니다. 무던함과 무딤의 차이는 크다. 손현우는 자신을 보는 동생들의 시선에서 미안함인지, 애틋함인지, 동정인지 모를 감정을 마주하며 한숨 같은 헛웃음을 삼켰다.
누가 보면 너희가 나 고려장이라도 하는 줄 알겠어. 이런 말로 분위기를 풀어볼까도 했는데, 하지 않았다. 노력조차 하고 싶지 않았으니까. 원인 모를 탈력감이 별안간 온몸을 덮친 탓에, 그냥 집 가서 쉬고 싶단 생각만이 들었으니까.
몇 년의 공백이 있었는지 모르겠다. 제대 후 해외에서 ‘N’ 오리지널 드라마 주연 인물 중 하나로 캐스팅된 손현우는 본의 아니게 자리를 많이 비웠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드라마가 방영되기 전부터 주목을 받아 이런저런 촬영도 많이 다녔고, 애초에 시리즈물임을 예고했듯이 1, 2화가 방영될 때쯤엔 바로 시즌 2 촬영에 들어갔다. 한국에 있는 날이 손에 꼽을 정도였고, 그러니 자연스럽게 숙소도, 회사도 많이 비웠다.
동생들과의 거리는 그렇게 멀어졌을까.
엊그제 입대했던 애가 갑자기 제대한다고 했을 땐 얼마나 놀랐던가. 그만큼 연락도 자주 하지 못했다. 손현우는 때로 숨이 막혔다. 제 선택이 실수였을까 고민해보기 일쑤지 않았나. 제 딴에는 최선이었다. 연예인에게, 특히나 아이돌에게 공백기는 아킬레스건과 마찬가지다. 눈에 안 보이면 잊힌다. 그렇게 수면 아래로 묻혀 간절히 원해도 무대 근처에 발 하나 딛지 못하게 된다.
연기 쪽은 추호도 생각 없던 손현우가 캐스팅 제의를 덥석 문 이유도 이거였다. 물론 기나긴 시간, 신중한 고민이 있었으나 어쨌든 ‘몬스타엑스’라는 이름을 조금이라도 꾸준히 언급하게 하려면 이런 활동이 필요했다. 손현우는 배우로서 데뷔하면서도 ‘셔누’라는 이름을 고집했고, 이런 고집은 확실히 힘이 되었을 것이다. 누가 됐든, 누군가에게는.
근데 돌아오는 취급이 이거라니.
너무 유치한가. 억울한 건 아니다. 서운하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만, 뭐랄까, ‘서운하다’라고 정의하기도 뭣한 감정이다. 어쩌면 마지막일지도 모를 다음 활동의 본격적인 준비를 위해 모였을 때, 그때 손현우는 자신에게 거리를 두는 듯한 동생들을 보며 느꼈다. 역시 세상에는 ‘남들과는 다른’이란 건 없다. 본인들은 다른 이들과 달리 언제까지고 끈끈하게 유지될 거란 그 오만한 생각은 도대체 어디서 비롯됐나.
하지만 당시 느끼던 그 생각과 느낌들은 한없이 진지하고 절절하지 않았던가. 여러 인터뷰와 방송을 통해, 또 자기들끼리 갖는 술자리에서 툭하면 ‘우리는 가족’이란 얘기를 지껄였던 게, 단순히 분위기에 취해 내놓던 말은 아니지 않았나. 적어도 손현우는 진심이었다. 그리고 그가 아는 동생들 역시 진심이었을 테다.
회의실에 3:3으로 마주 보고 앉아 길어지는 적막을 멍하니 읊어보고 있을 때, 대뜸 이민혁이 말을 꺼냈다. 저, 형. 있잖아. 손현우는 대답 없이 눈만 치떴다. 제 앞에 앉은 이민혁을 쳐다봤다. 무슨 말을 하려고 또. 그런 생각을 하자마자 이민혁이 말했다. 우리 이제 숙소 정리해야지.
손현우는 무의식적으로 제 맞은편 끝에 앉은 채형원을 일별했다. 턱을 괴고 손현우와 정 반대편을 초점 없이 응시하는 채형원의 옆모습을. 정리? 되물으려다가 입을 닫았던 건, 목이 잠겨서였다. 괜히 오해할까 봐. 분위기 이상하게 만들까 봐. 그래서 그냥 아주 작게 한마디 했다. 무덤덤하게 시선만 응하다가 느리게 눈 두어 번 깜빡이고, 생수 하나 챙겨 들어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그래’라고.
목소리가 너무 작았다. 어쩌면 바로 옆에 앉은 유기현도 못 들었을 것이다. 그러니 동생들이 자신이 화났다고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뭐 어찌 됐든 무슨 상관이랴. 결국 숙소 생활은 정리됐고, 이 집만 해도 이주헌은 나간 지 오래다. 아마 다음 순서는 채형원. 손현우는 문득, 지금껏 형언할 수 없어 불편하게만 여겼던 이 감정의 원인을 알아챈다. 묻기 모호한 말이 턱 끝까지 차오른다. 그래서 형원아, 우리는 아직 사귀는 거니?
*
채형원의 마음은 비 온 뒤 땅보다도 단단하다. 무른 곳도 있지만, 그 무름은 본인이 선택해 내려놓은 일종의 여유다. 채형원의 격랑 같은 불안과 초조는 대부분 손현우가 원인이었다. 20대 후반, 손현우가 좋아서. 30대 중반, 손현우가 더는 자길 안 좋아할까 봐서.
채형원은 뒤늦게 조바심을 낸다. 기실 이런 짓은 손현우가 좋아하는 게 아니다. 싫어하면 싫어했지, 절대 반기지 않을 짓이란 소리다. 그런데도 굳이 이렇게까지 일을 벌인 이유라 하면 본인의 고집이라기보다는 자신 못지않은 손현우 사랑꾼들의 육갑에 가까운 욕심 때문이었다. 무슨 소리냐고?
“야, 근데 이러다가 형이 우리한테 정떨어지면 어떡하냐?”
“그러니까 형, 내가 좀 더 시나리오 짜고 시작하자 했잖아. 나 진짜 셔누 형 너무 그리워. 방 들어가서 자연스럽게 팔베개하고 누워야 하는데.”
채형원은 순간 걷잡을 수 없을 만큼 무거운 피로감에 짓눌리는 듯한 감각에 빠진다. 이주헌의 작업실. 아침 일곱 시도 안 돼서 모인 다섯 명은 오늘도 얼굴에 피로가 덕지덕지 묻어있다. 과하게 우는 시늉을 하던 이주헌이 대뜸 채형원을 올려다본다. 채형원은 자신을 물끄러미 응시하는 시선을 느끼지만, 애써 모른 척한다. 녹음 부스 밖 작업실 테이블에는 화면보호기가 뜬 랩톱과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머릿수만큼 놓여있다. 채형원은 묵묵히 커피만 마신다.
뭐라 해야 할지. 민망하다고 해야 하나? 이들이 이렇게 모이는 이유를 누구보다 잘 아는 채형원은 민망할 수밖에 없다. 가족보다 가까운 이들에게 제 사랑을 들킨다는 건 생각보다 부끄러운 일이다. 들켰다기보다야 자연스레 드러냈다는 게 옳은 표현이긴 하겠지만, 어찌 됐든 민망하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시즌 2 촬영을 마치고, 차일피일 미뤄지던 손현우의 입국 날이 마침내 확정됐던 날이었다. 그로부터 닷새 전. 손현우를 제외한 단체 메시지 방 하나가 개설됐다.
[이민혁 외 4명]
이민혁 { 모레 저녁 9시에 시간 안 되는 사람 )
숫자는 빠르게 줄어들었다. 제일 먼저 답장한 건 유기현이었다.
셔누 형은.
단 네 글자에서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약간 날 선 투로, 굳이 한 명만 제외한 이유가 따돌림인지 아닌지를 조용히 캐묻는. 이민혁은 그럴 성격이 못 된다. 그럴 성격이 아니기도 하고. 그런데도 유기현이 그렇게 반응했던 건 아마 몇 년의 공백기 동안 벌어진 손현우와 거리감 때문일 것이다. 뭐라 콕 집어 설명할 수 없는 모호하고 거슬리는 거리감.
채형원은 새로 생긴 채팅방을 뒤로하고 상단에 고정돼있는 채팅방을 쳐다봤다. ‘우리 형’ 옆에 붙어있는 초록색 하트가 유난히 눈에 띄었다. 그리고 대화를 나눈 마지막 날짜는 한 달하고 일주일 전. 그때 이민혁이 메시지를 하나 더 보냈다.
그때 우리 숙소로 집합. 손현우 관련된 일임.
손현우와 관련된 일. 뭐가 됐든 찜찜했다. 채형원은 곧장 이민혁한테 전화를 걸어 무슨 꿍꿍이냐 따지려 했으나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고, 이민혁은 항상 나는 입장이었으니 하지 못했다. 전화가 꺼져있었다. 그래서 채형원은 의미 없이 메시지를 하나 더 보냈다. 개새끼.
손현우와 관련된 일. 그 꿍꿍이.
그건 바로 ‘채형원과 손현우 관계 결판’이었다.
채형원의 동의 없이 제삼자인 이민혁이 혼자 벌인.
삼삼오오 모인 자리에서 이민혁은 대뜸 그런 얘기를 했다. 야, 우리 이제 나가주자. 독립해, 이제. 다 해산.
갑작스러웠다. 일방적인 통보에 가까웠다. 당혹감과 황당함이 앞서 다들 ‘뭐?’라는 되물음조차 쉽게 내뱉지 못했다.
일그러진 눈살, 비딱하게 올라간 눈썹, 멍한 표정. 어떤 반응이었든 공통점은 이민혁의 말을 ‘개소리’ 취급한다는 것이었다. 이민혁은 예상했다는 듯 굴었다. 어깨를 으쓱이며 선심 쓰는 듯한 투로 덧붙였다. 이 새끼랑 셔누 형 깨 볶게 해줘야지.
거기서 놀란 건 단 한 명이었다. 채형원 단 한 명. 다들 시선을 주고받는 거 보니, 이미 저들끼라는 몇 번이나 얘기한 주제인 듯했다. 당황을 넘어 황당했다. 따질 틈도 없었다. 기가 차 말은커녕 목소리도 나오질 않았다.
손현우랑 채형원은 6년 넘게 교제하며 실수로라도 언급하지 않았다. 자신들의 관계를 밝힐 생각은 추호도 없었고, 만약 있다 한들 멤버들이 차차 독립하고 가정을 꾸릴 때쯤 아닐까. 이것도 순전히 이때까지 자신들이 교제하고 있다는 가정하에 이야기다. 손등으로 눈 앞머리를 꾹 누르며 채형원은 탄식을 삼켰다. 얼핏 눈치챘을 거라곤 생각했다. 민망함과 형언하기 힘든 불편함 같은 것들 때문일까. 무의식중에 이 사실을 외면하고 살았다. 저들 관계가 탄로 났다는 것, 둘이 남을 때면 이주헌이 은근슬쩍 집을 비워준다는 것, 둘이 조용히 무리에서 빠질 때면 다들 굳이 찾으려 들지 않는다는 것. 손현우가 한 번은 넌지시 말한 적도 있지 않나. 애들이 눈치챈 거 같은데.
문득 그 말을 곱씹는다. 덧붙이지 않아 듣지 못한 뒷말이 이제야 궁금해진다. 채형원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쓴웃음과 함께 시선을 거두던 손현우의 말간 눈동자가 머릿속에서 떨어지질 않는다.
불쑥 형용하기 힘든 초조감이 툭툭 심장 바깥으로 불거진다. 엄청난 긴장감으로 오장육부가 곱아드는 기분이다. 배뇨감이 찾아오고, 손발에 땀이 찬다. 채형원은 근래 손현우를 피하고 있다. 이유야 훤하다. 그 입에서 그만하자는 이야기가 나올까 봐서. 무덤덤하고 평온하게, 언제나 그랬듯 물 흐르듯 평이한 태도로 우리 그만하자는 말을 툭 내뱉을까 봐서.
채형원의 초조와 불안은 근거가 확실하다.
자신의 태도.
분명하지 못하고, 마치 간을 보듯 손현우의 애를 태우고, 시간을 벌어야 한다는 명분 하나로 가느다란 실 같은 자신들의 관계를 내버려 두고 있는 자신의 태도.
마음 같아서야 당장이라도 달려가 그 어깨에 이마를 받고 좋아한다, 등 보이지 말아달라, 나랑 같이 있어 달라, 그렇게 말하고 싶다. 왜 아닐까. 채형원은 손현우를 제 울타리 바깥으로 내보낼 수 있는 깜냥이 없었다. 생각도, 의지도 없다. 언제까지고 제 곁에 두고, 가끔가다 괜스레 만져도 보고, 아닌 척 장난도 치면서 그냥 그렇게 서로의 관계가 여전하다는 걸 확인하며 살고 싶다.
그러니까 이건 어디까지나, 손현우도 같은 생각이라면 가능한 이야기다. 요컨대, 만에 하나 손현우가 등 돌린다면 그저 한때의 실낱같던 희망이 될 뿐이다.
믿을 사람을 믿어야지. 채형원은 들끓는 속을 잠재우기 위해 가슴을 퍽퍽 내리치며 이민혁을 노려본다. 그러니 저 입이 문제다. 저 입이 괜히 그럴싸한 말을 내뱉어서. ‘우리도 이제 형한테 뭐 하나 해줄 때 되지 않았냐? 서프라이즈로 소소하게 식이나 열자, 우리끼리.’라는, 제법 황홀한 말을 지껄여대는 바람에. 그런 바람에 자기가 돼 먹지 못한 미끼를 살 오른 벌레로 오인하고 덥석 물었다.
아니, 정확히는 이 그럴싸한 발언이 제 사사로운 욕심을 제대로 자극했다. 기실 누굴 탓할 게 아니다. 지금 이 사달까지 온 건, 순전히 제 탓이다.
“형, 내일 저녁 6시 체크인이야.”
“…… 어? 나한테 하는 말이야?”
“그럼 누구한테 하겠냐? 우리 다음 주부터 일정 시작인 거 금요일로 당겨졌잖아. 그래서 오늘 아침부터 부른겨. 계획에 차질 생겨서.”
“뭐?”
“내일 4시까지 셔누 형 데리고 형 작업실로 와.”
오케이?
뭐가 오케이라는 거여. 지금 이해를 못하겠구만. 불쑥 튀어나올 뻔한 말이 당혹감과 함께 목구멍 아래로 덜컥 넘어간다. 임창균이 한 말을 채형원이 되묻고, 그 되물음을 유기현이 받아쳤다. 채형원은 어디서부터 따져야 하는지 그 갈피조차 잡지 못한다. 그저 그 큰 눈을 깜빡이고, 어느새 머릿속에 떠다니기 시작한 손현우의 반응을 하릴없이 곱씹을 따름이다.
“너 반지는 준비했냐, 근데?”
“형 반지는 준비했어?”
이민혁과 이주헌이 동시에 묻는다. 우르르 몰리는 네 개의 시선에 채형원은 괜스레 어깨를 흠칫 떤다.
짧게 깎아 뭉툭한 엄지손톱이 검지 첫 마디 안쪽을 무의식중에 꾹꾹 긁어내린다. 채형원은 답을 피한다. 대답할 타이밍을 놓쳤다고 해야 정확할까. 그렇다 해서 분위기가 이상해지는 일은 없다. 대화는 금세 다른 화제로 바뀐다. 요즘 손현우의 최애 음식은 무엇인지, 그래서 최근에 형이랑 연락해본 사람이 있는지. 채형원은 그 대화를 가만히 관망한다. 검지가 붉게 부르텄다. 반지. 툭 불거진 혼잣말이 하도 작아 바로 옆에 앉은 이주헌조차 듣지 못한다.
*
─ 형, 있잖아요.
─ 엉? 어어. 뭐.
─ 우리 나중에 둘만 따로 나가 살까요?
─ 갑자기?
─ 갑자기는 아니고…….
손현우가 낮게 웃음을 터트렸다. 채형원의 말이 어지간히 갑작스러웠는지, 또는 웃음이 나올 만큼 가볍게 들린 건지. 눈이 둥글게 휘어지라 웃는 손현우를 보며 채형원은 부지중 입술을 뚝 내밀었다.
유독 살집 있는 볼살이 두툼한 입술과 함께 볼록 두드러졌다. 괜히 손 하나 찔러 넣어보고 싶은 모양새다. 손현우는 말랑말랑해 보이는 둥근 볼과 입술을 뚫어지게 쳐다보다가 다시 핸드폰으로 시선을 거뒀다.
난 형이랑 둘이 지내고 싶어요.
소리 내어 말했다면 좋았을 텐데. 이미 수년이 지난 일을 복기해 봤자 찾아오는 건 지독한 후회와 집요한 미련뿐이다.
*
그럼 일단 본가에서 좀 있다가, 잘 알아보고 집 구하는 게 낫지 않겠어?
어쨌든 집을 비워야 하니 짐을 옮길 거처부터 찾아놔야 했다. 그렇다고 앞으로 살게 될 곳을 쫓기듯 구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러고 싶지도 않았다.
손현우는 결국 서른 중반이라는 나이에 엄마를 찾았다. 차선책이었다. 전화를 걸어 숙소 생활을 정리하기로 했다고, 회사에서 갑자기 내린 결정이라 당분간은 본가에서 생활해야 할 거 같다면서 말이다. 괜히 동생들에게 통첩을 받았다느니, 나도 당황스럽다느니 늘어놓아 걱정을 끼칠 필요도 없다. 손현우는 여상하게 덧붙였다. 뭐 회사가 그러라는데 어쩔 수 없지.
좁고 어수선한 방안에 제 상체만 한 캐리어 세 개가 떡 입을 벌리고 놓여있다. 한창 해외 투어할 때나 사용하던 거다. 최근이라 하면 드라마 촬영으로 출국할 때. 이렇게 숙소를 정리할 목적으로 사용하게 될 줄은 몰랐는데.
쓸데없이 웃음이 샌다. 초점 없는 눈으로 옷이 잔뜩 걸린 행거를 올려다보다가 커튼 처진 창을 쳐다본다. 오늘도 어김없이 비가 온다. 장마철이긴 한 모양이다. 해 좀 뜨려나 싶으면 그 틈새를 못 참고 곧장 먹구름이 몰려온다.
그래서 손현우는 요즘 커튼을 치지 않는다. 커튼을 쳐도, 딱히 볼 게 없으니까. 문득 허탈함이 밀려온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이렇게까지 무미건조한 사람이 아니었던 거 같은데, 변해도 너무 변했다. 언젠가 유기현이 그런 적 있다. 세상에 한결같은 사람은 없는데. 아니, 없다고 믿었는데 형이랑 지내면서 있다는 거 알았어. 이런 사람도 있긴 하구나, 싶더라.
그때 대답을 해줬던가. 멋쩍게 웃으면서 왜 이러냐며 말끝을 흐리고 자리를 도망쳤던가?
네가 틀렸다, 기현아. 네 처음 생각대로 세상엔 한결같은 사람은 없어.
중얼거리는 목소리가 오래간 침묵한 탓에 잠겨있다. 수년 전 끊은 담배가 공연히 당긴다. 침대에 아무렇게나 던져놓은 핸드폰이 짧게 진동한다. 손현우는 진동의 이유를 확인하는 대신 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을 향한다. 오늘은 어디라도 가 볼 생각이다. 작업실을 가든, 맛집을 가든.
주인이 봐주지 않는 핸드폰은 혼자서 번쩍거리다가 홀연히 잠긴다. 발신인 이름 형원이. 내용, 형 전화 돼요?
돌아갈 답장은 없다.
“…….”
“왜, 왜. 답장 없어?”
“읽지도 않는데.”
“너 형이랑 아직 사귀긴 하는 거지?”
“…….”
“웬일이냐. 바로 욕이 날아와야 하는데.”
“나도 헷갈린다, 이제.”
“뭔 미친 소리야, 이건.”
테이블을 세팅하던 이민혁이 행동을 멈추고 황당한 표정을 짓는다. 뭐라 말하려다가도, 채형원은 지금 이 상황을 정의할 수 없어 숫제 입을 다문다.
사라지지 않는 노란 1을 하염없이 쳐다본다. 보면 뭐라도 나올 것처럼. 어차피 눈앞에서 사라지더라도 지레 놀라 나가버릴 거면서, 그러면서도 사라질 때까지 볼 작정처럼 쳐다본다. 지금 손현우는 뭘 하고 있을까. 자기 생각을 하기는 할까. 이런 영양가 없는 사념들을 늘어놓는다.
얼굴에 고스란히 드러나는 근심에 이민혁은 한숨을 숨기지 않는다. 숨길 생각조차 않고, 대놓고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훈수를 둔다. 야, 그럴 시간에 차라리 찾아가든가. 그 나이 처먹고도 그러냐.
맞는 말이다. 반박하려다가도 홀연히 입을 다문 이유도 그 탓이었다. 맞는 말이라서. 삼십 넘기고 아직 연애의 ‘ㅇ’자도 제대로 하지 못해 헤매는 꼴이 우습다. 가소롭기도 하고.
채형원의 연애는 이 정도로 구질구질하지 않았다. 이렇게 길게 한 적도 없지만, 이렇게 진심인 적도 없었다. 항상 차였다. 이유는 ‘네가 날 사랑하지 않는 거 같아서’라는 흔한 삼류 로맨스 영화 속에나 나올 법한 게 아니라 단순히 각자가 바쁘다 보니 자연스럽게 멀어지고, 몸이 멀어지니 응당 마음도 멀어졌을 뿐이다. 그래서 상대가 먼저 헤어지자고 해줬고, 채형원은 그때마다 미안하다는 말 대신 고맙다고 했다.
손현우는 그런 채형원의 연애를 볼 때마다 너도 참 별나다며 혀를 내둘렀다. 안 그럴 거 같아서 참 매정하다고. 무서워서 뭐 너랑 사귀겠냐고.
그런 말을 했던 사람이 지금 자신과 사귀고 있다. 아니, 사귀고 있나? 채형원은 다시 제 할 일에 몰두한 이민혁의 뒷모습을 멀거니 바라보다가 문 쪽을 건너다본다. 순간 흐릿해진 초점 너머로 숙소 모습이 그려진다. 희미하게 덧씌워진다. 물안개처럼 스멀스멀 시야를 에워싼다. 막 씻고 나와 젖은 머리로 느릿느릿 곰처럼 걸어오는 손현우의 모습을 그려보고, 그 모습에 과하다 싶을 만큼 폭소하며 형 뭐 먹을래요? 묻는 제 목소리를 흘려보내고, 그만 좀 웃으라며 투덜거리는 손현우의 빨간 귓바퀴를 떠올리다가도 눈 깜빡임 한 번에 그 모든 장면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것을 지켜본다.
“야, 그냥 가 봐. 좀 늦어도 되니까 형 데려오는 거 잊지 말고.”
이민혁이 발로 채형원의 다리를 가볍게 걷어찬다. 툭 밀어내듯 차는 행동에 채형원은 괜히 ‘아’하고 신음을 낸다. 아프지도 않으면서 실없이 아픈 척을 한다. 머릿속으로는 계속 손현우를 생각하면서, 어설프게 괜찮은 척 위선을 떤다.
어차피 들킬 걸 알고 있다. 그래도 이민혁은 모른 척해줄 것이다. 상대가 왜 눈에 보이는 위선을 떠는지를 아니까, 굳이 들쑤시는 대신 눈감아주며 평소 같은 어투로 타이를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이민혁이 아직 포장을 뜯지 않은 딸기 밀푀유를 건넨다. 창균이가 요즘 셔누 형이 여기 거 자주 먹는다더라, 이거라도 가져가. 형 공복이면 더 큰 일 난다.
은근슬쩍 덧붙인 장난에 채형원의 입꼬리가 실룩 올라간다. 손등으로 이마를 짚으며 채형원이 묻는다. 그나저나 너네, 언제부터 알았냐?
“미친 새끼. 빨리도 묻는다.”
커피 테이크아웃 컵 아래 고인 물기를 닦아내며 이민혁이 가볍게 실소한다. 전화를 안 받는 유기현을 구시렁거리며 비난하면서도 성실하게 대답은 건넨다. 모를 수가 없지. 셔누 형은 몰라도 너는 티 존나 나.
흐핫, 별안간 웃음이 터진다. 민망함에 괜스레 터트리는 웃음이 아니라 부지중 터진 웃음이었다. 자기도 모르게 터진 웃음에 채형원이 웃음을 꾹 죽이며 한 손으로 양쪽 관자놀이를 감싸 누른다. 티 났어?
이번엔 이민혁이 웃는다. 색을 입히기 위해 노랗게 뺀 머리칼을 쓸어넘기며 다시 한번, 어, 저럴 바에 이마에 ‘손현우랑 사귀는 중’이라 써놓지 싶을 정도로, 라 받아친다. 쿡쿡 새는 웃음을 그저 흘려보내며 채형원은 그제야 자리를 뜬다. 밀푀유를 쇼핑백에 조심스레 넣고, 가는 길에 커피 한 잔 사 가야겠다고 생각하며. 이민혁에게 수고 인사를 가볍게 전하고는 손현우 없는 손현우의 작업실을 벗어난다.
웬일로 하늘이 쾌청하다. 아까까지만 해도 비가 쏟아졌는데, 언제 그쳤는지 거짓말처럼 맑게 개었다. 눈부실 정도로 청량한 하늘을 올려다보다가, 더위에 어깨를 움츠리며 미리 불러둔 택시에 올라탄다.
숫자 1은 여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혹시 손현우가 요 며칠 사이 숙소를 나간 건 아닌지 걱정이 앞선다. 이주헌이 제일 먼저 방을 정리하고 나간 뒤, 채형원도 당연하다는 듯 숙소로 들어가지 않고 이민혁과 유기현, 임창균이 생활 중인 숙소로 귀가했다.
굳이 그럴 필욘 없었다. 그 너른 집에 손현우 혼자만 내버려 둘 필요가 없었다는 얘기다. 그 넓은 집은 지금 손현우의 온갖 사념으로, 비단 긍정적이지만은 않을 상념으로 그득하지 않을까. 불길에 휩쓸려 잿더미가 된 화재현장처럼 답답하고 매캐한 기운이 흉조처럼 집안을 돌아다니지 않을까.
채형원은 언젠가부터 손현우를 종잡을 수 없다. 원래도 종잡을 수 없는 사람이었지만, 최근엔 부쩍 더 그렇다. 뭐라 콕 집어 설명할 수 없는 모호하고 거슬리는 거리감이 생긴 뒤로 말이다.
어쩌다 이렇게 됐는지. 이 주제를 가지고 혼자서 골머리를 썩인 적도 있었다. 형, 우리가 어쩌다 이렇게 이도 저도 아닌 사이가 되었을까요.
자문에 대한 자답은 없다. 이 의문은 영영 해소되지 않을 성싶었다. 여전히 숫자 1이 떠있는 메신저 화면을 잠자코 내려다보다가 느리게 손가락을 움직인다. 화면 위에서 움찔움찔 배회하던 엄지가 타닥타닥 메시지를 적어 내린다. 형, 커피 마실래요?
옛날과 별다르지 않은 메시지를, 옛날과 너무 달라진 상황에서 아무렇지 않은 척 보낸다.
*
“어?”
“혀엉…….”
“뭐야, 비 맞고 왔어?”
“흐어…….”
머리며 옷, 온 곳에서 빗방울이 한없이 떨어진다. 얇고 까만 맨투맨이 상체에 찰싹 달라붙고, 종이 쇼핑백은 곧 찢어질 것처럼 너덜너덜하다. 이제 막 외출하려던 손현우는 시계를 차다 말고 허겁지겁 수건 두 장을 챙겨 한 장은 채형원의 머리에, 한 장은 어깨에 둘러준다.
“전화하지 그랬냐. 차 타고 온 거 아니야?”
“택시 타고 왔어요.”
“앞에서 내리지.”
“그랬다가 잠시 편의점 좀 간다고…….”
“어우. 우선 씻어라.”
동시에 천둥소리가 우렁우렁 넘어온다. 비가 이렇게까지 쏟아질 줄은 몰랐지. 하늘이 맑았다가 말았다가 하는 통에 채형원은 하루종일 롤러코스터를 탄 듯했다.
감정 기복이 요란스럽다. 날씨 영향을 많이 받는 탓도 있고, 지금 처한 상황 때문도 있다. 와중에 수더분한 태도로 무심히 다정함을 베푸는 손현우 때문에 눈앞이 핑핑 돈다. 더위를 먹은 건지 속이 울렁거리는 것도 같았다. 쇼핑백을 받아드는 손현우의 손을 멍하니 내려다보던 채형원은 문득 노랑 같은 충동에 휩싸인다. 빗물에 홀딱 젖은 것처럼 형태 없는 충동과 억눌러온 진심이 화마가 되어 제 온몸을 집어삼키는 것을 느낀다.
어쩌면 불가항력이다. 채형원은 본능처럼 제게서 멀어지는 손을 붙잡았다. 잔뼈가 굵고, 뼈마디가 울긋불긋하고, 핏줄이 선명하고, 굳은살이 박인 큼직한 손을 피가 안 통할 만큼 꽉 쥐어 잡는다.
“…….”
손현우는 소리 없는 물음을 던진다. 손이 꽉 붙들린 채로 채형원을 묵묵히 바라본다. 그러니까 저 눈. 채형원을 옴짝달싹 못 하게 만들고, 자진해서 우물 안으로 들어가게 만든 원인. 좁고 깊은 우물 안에 갇혀 위를 올려다보면, 채형원은 영락없이 손현우만을 바라볼 수밖에 없다.
그렇게 지내 온 지가 벌써 몇 년인가. 한 손을 넘어가는 햇수가 아니던가. 저 오묘하고 말간 눈동자에 속절없이 빠져들어서, 저 무구하고 진정한 눈빛에 휘감겨서, 그래서.
그렇다 한들 이것은 손현우 탓이 아니다. 손현우에게 죄가 있다면 그건 글쎄. 원망하고 싶어도 원망할 점이 없다는 것 아닐까. 결국은 죄가 성립되지 못하는 잘못. 그러면 다시 원점이다. 손현우는 잘못이 없다.
그렇다고 채형원에게 잘못이 있다고 할 순 없다. 사랑은 필연적이면서도 다분히 우연적이고, 이 모호한 사건 위 불가항력에 의해 이뤄지는 감정노름이다. 채형원이 손현우를 만난 것은 ‘가수’라는 꿈을 이루기 위한 필연에 의해 이뤄졌고, 동료로서 호감이 애틋한 감정으로 뒤바뀐 것은 수많은 우연에 의해 이루어졌으며 그 뒤론 모든 것이 그저 불가항력에 가까웠다. 오른손으론 손현우의 손을 붙들고, 왼손은 허벅지 옆에 붙인 채로 움찔움찔 떨기만 한다. 한 번 더 천둥이 운다. 불 하나 켜지 않아 어둑어둑한 집안에 어슴푸레한 빛이 들다가 말기를 반복한다. 은연중 손현우가 벽에 가려져 보이지 않는 베란다 쪽을 건너다본다. 비가 많이 오나 보네. 그 말과 함께 말간 눈동자는 채형원의 발밑에 고인 물웅덩이로 향한다.
“형.”
나직이 부른다. 목이 약간 잠겼다. 낮게 깔린 목소리가 평소와 달리 깔끔하다. 손현우는 이번에도 대답하지 않는다. 그저 묵묵히 시선으로, 채형원이 꿈쩍 못하는 눈빛으로 대답을 보낸다.
채형원만 느끼는 긴장감이 저 멀리서부터 밀물처럼 스멀스멀 기어와 발끝을 적신다. 속에서 맴도는 이 무수한 말을 손현우가 들여다본다면 놀랄 것이다. 웃을지도 모른다. 넌 뭐가 이렇게 복잡하냐, 형원아. 그러면서도 귓바퀴를 붉게 물들일지도 모른다.
“애들이 갑자기 그걸 물어보더라고요.”
아무것도 모르는 손현우는 그룹의 해체까지 생각하고 있었을 수도 있다. 어쩌면 그게 각자를 위한 길이라면서. 저들보다 기껏해야 한두 살 많은 손현우는 항상 먼 길을 내다보았다. 그러니 생각 없다던 연기를 감행하고, 그룹 이름을 걸고 쉴 틈 없이 달린 거겠지. 그런데 돌아오는 게 일방적인 독립 통보였으니 허탈했을 만도 하다. 이해는 한다. 저들의 꿍꿍이를 모르니까 그럴 수밖에 없다. 몇 년간 그룹 활동을 연명해보겠다고 아등바등 지내왔으면서 동생들의 통보에 일절 말 한마디 거들지 않은 손현우의 속을 채형원은 이제야 가늠해본다.
“형은 알고 있었어요?”
“뭐를. 그 전에 형원아. 너 감기 걸려. 여름이어도 그렇지. 몸 먼저 닦고…”
“애들이 우리 사이 알고 있었던 거, 형은 느꼈어요?”
순간 손현우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그리고 얼마 안 가 쓴웃음이 피어난다. 시선을 아래에 두며 손현우가 멋쩍은 듯 답한다.
“알았겠지. 그렇게 부대끼며 지내는데 못 느끼는 게 이상하지 않겠냐.”
“형은……. 형은, 그걸 바로 받아들였어요?”
“어?”
“그러니까 애들이 우릴 관계를 눈치챘다는 사실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일 수 있었어요?”
“그럼 어때야 했는데?”
“네?”
“그럼 어떻게 해야 했냐고. 너랑 내가 사귀는 게 맞았고, 애들은 그저 사실인 걸 눈치챘을 뿐인데 내가 도대체 뭘 하겠냐.”
“…… 나는,”
“애썼지. 애는 썼어, 그래도. 애들이 괜히 불편해지면 안 되니까. 그런데 형원아. 네가 제일 불편해하더라. 네가 제일… 제일 불편해하더라고.”
말문이 턱 막혀 입조차 방긋거릴 수 없다. 무언가 턱 목구멍을 막은 것처럼 숨 쉬는 것마저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형체는 없지만 눈에 보인다면 사면이 뾰족할 게 분명한 무언가가 자꾸만 목구멍 안팎으로 넘실거리는데 더구나 눈시울도 시큰해진다. 언젠가 임창균이 했던 말을 곱씹는다. 근데 셔누 형은 진짜 다 알고 있어. 아닌 척하면서 다 알고 있다니까.
형은 알고 있었구나.
내가 며칠 전까지도 외면하고 있던 걸, 형은 똑똑히 보고 있었구나.
“형… 상처 받았겠네요?”
손현우의 눈살이 일그러진다. 하기야 오만한 질문이다.
오만함은 애써 억누른 울음에 의해 덜해진다. 볼품없이 떨린 목소리를 알면서도 채형원은 굳이 목을 가다듬지 않는다. 태연한 척하려 공들이지 않는다. 시큰하게 조여오는 눈이 마침내 눈물을 떨어뜨려도 그저 그런대로 내버려 둔다.
말은 갈피를 잃고 횡설수설 이어진다. 코앞에 손현우가 있는데, 이미 붙잡고 있는데 꼭 도망가기라도 할 것처럼. 상처 주려 그런 게 아니라고, 난 형이 아픈 걸 누구보다 싫어하는 사람이라고, 시간이 지날수록 형이 너무 좋아지는데 그걸 감당하기 힘들었다고, 우리 사이에 확신도 없는데 주변 시선까지 들이닥치니 덜컥 겁부터 났다고, 이런 말들을 쉬지도 않고 쏟아낸다.
손현우는 그 모든 말을 묵묵히 듣는다. 토씨 하나 허투루 흘려보내지 않고, 자신과 눈을 마주하지 못하는 채형원의 눈을 똑바로 응시한다.
“형원아, 됐으니까 나 하나만 묻자.”
채형원은 다급하게 손현우의 눈을 찾는다. 퍼뜩 고개를 들어 손현우를 마주한다. 자신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물결 같은 눈동자를 애타게 바라본다.
“이번에도 기다리는 거야?”
상대가 먼저 헤어지자고 말해주기를.
마침내 심장이 내려앉고 만다. 채형원은 이제야 체감한다. 자신이 손현우에게 저지른 만행과 실수를. 원치 않게 입힌 상처의 크기를.
퇴로는 없다. 있어서도 안 된다. 채형원은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는 것을 어렴풋이 깨닫는다. 느리게 다리를 굽힌다. 물이 고인 바닥에 한쪽 무릎을 굽히고 앉아 세게 잡고 있던 손을 느슨하게 풀어 조심스레 쥔다. 빗소리가 적막을 가른다. 어슴푸레한 어둠 속에서 둘은 조도 낮은 현관 등에 의지한 채 서로를 응시한다.
채형원은 천천히 손현우의 손을 놓고, 살짝 고개를 숙여 제 목에 손을 올린다. 티 바깥으로 툭 목걸이가 튀어나온다. 얇은 은실 목걸이에는 펜던트 대신 무난한 반지 하나가 걸려있다. 안쪽으로 ‘HW’라는 이니셜이 각인된 ‘C’ 브랜드의 반지. 하하, 채형원이 민망한지 작게 웃음을 짓는다. 살짝 축축해진 반지를 건조하게 마른 제 손바닥으로 닦아낸다.
“형.”
오늘따라 이 부름이 왜 이리 어색한지 모를 일이다. 마른입을 달싹이며 애써 호흡을 가다듬는다. 지금은 차마 시선을 마주할 수 없다. 그저 눈을 감았다가 뜨면, 하루가 지나있기를. 그런 생각을 하며 채형원은 한 자 한 자에 힘을 싣는다.
“애들이 물어보더라고요. 반지 있냐고. 형한테 줄 반지 있긴 하냐고 묻더라고요, 나한테.”
“…….”
“내가 이걸…… 하하. 이걸 꽤 오래 갖고 있었어요. 왜 다들 그러잖아요. 때가 있다. 난 나도, 우리도, 그 ‘때’라는 게 어련히 알아서 찾아올 줄 알았거든요? 아니더라고. 응… 아니더라고요. 타이밍은 직접 만들어야 하는 거더라고. 그걸 왜 이렇게 늦게 알았을까요. 형, 난 진짜 형을.”
…… 형을 너무 사랑해요.
감히 사랑한다는 말도 못 할 만큼, 형을 향한 마음이 날이 갈수록 애틋해져서 미칠 거 같아요, 나도.
“형, 우리 같이 살자.”
이뤄지지 않을 말 같은 건 안 할게요. 허울 좋은 말은 안 해요.
“현우 형. 나랑 죽을 때까지 연애해줘요.”
검은 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
*
작업실 안은 분주하다. 돌연 이주헌이 폭소했다. 이렇게 무드 없는 웨딩은 처음 본다면서.
그럴 만도 하다. 운동기구로 가득한 곳에 단상 하나를 놓고, 흰 식탁보 덮은 테이블을 벽 구석에 몰아 삼단 케이크 주변으로 온갖 음식을 꾸려놓고, 풍선이며 꽃이며 조잡하기 짝이 없는 이벤트.
작업실 안에 있는 별실 앞까진 레드카펫이 대각선으로 깔려있다. 문득 그 레드카펫을 쳐다보던 유기현이 설설 고개를 젓는다. 이래서는 이벤트 받는 사람도 달갑지 않을 거다. 비단 유기현만 그런 생각을 하는 게 아닌 모양인지, 넷의 표정이 동시에 떨떠름해진다.
시간은 16시를 앞둔 15시 48분. 이젠 채형원이 손현우만 데리고 오면 된다.
*
나랑 죽을 때까지 연애해줘요.
검은 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
하하, 그번엔 손현우가 웃었다. 한숨처럼 낮게 토해진 웃음엔 어쩌면 울음이 녹아있던 거 같다. 손현우는 울지 않았다. 다만 울 듯한 얼굴로 채형원이 내민 반지만 힘겹게 노려보았다. 입 주변까지 붉어진 입술이 파르르 떨리는 걸 보며 채형원은 잇몸이 무너질세라 이를 악물었다. 견디지 않으면 소리 내 엉엉 울 것만 같았다. 언젠가 자기가 했던 말이지도 않나. 이 사람 너무 슬프게 울어.
평소 무던한 사람이 격하게 내보이는 감정에 상대는 속수무책으로 무너질 수밖에 없다. 저 억누르는 울음에는 무슨 뜻이 내포되어있는지를 몰라, 채형원은 그저 반지 쥔 손에 힘을 주는 수밖에 없었다.
─ 형원아.
빗소리가 조금 약해진 것도 같았다. 어렵사리 목소리를 꺼낸 손현우가 갑작스레 무릎을 꿇었다. 채형원이 그랬던 것처럼 천천히 한쪽 무릎을 먼저 꿇고 앉아 반대편 무릎을 세웠다. 채형원이 홀린 듯 손현우를 바라봤다. 닥뜨리는 시선이 뜨겁지도, 열렬하지도, 그저 딱 미지근했다.
미온한 온도. 하나 차갑진 않은. 딸꾹질이 나올 거 같아 혀뿌리를 부풀려 목구멍을 막듯 입천장에 붙였다. 채형원은 어떤 대답이 돌아와도 겸허히 받아들이겠노라 했으나, 속으로는 차라리 손현우가 대답하지 않기를 바라기도 했다. 침묵이 길어질수록 두려움은 커지고, 두려움이 자책으로 바뀔 때쯤 손현우가 대뜸 채형원의 어깨에 이마를 툭 얹었다.
─ 뭐하냐, 안 끼워주고.
뜨거운 적수가 허벅지를 적셨다. 채형원은 제 바지를 적시는 게 눈물인 걸 알았지만 모른 척했다. 둘 사이에 벌어진 품속에서 손만 움직여 체온을 찾았다.
손끝이 먼저 닿고, 엄지로 손등을 가만히 문지르자 어깨에 받은 고개에서 탄식 같은 숨이 뜨겁게 토해졌다. 손끝에 걸린 반지가 약지 마디 쪽으로 딱 맞춰 들어갔다. 반지를 끼우는 동시 깍지가 맞물리고, 그번엔 채형원이 손현우의 어깨에 이마를 받았다.
하하, 울음 젖은 웃음이 먹먹하게 터졌다. 좋다는 말도, 행복하다는 말도 섣불리 나오지 않는 감정의 노도 속에서 둘은 서로를 위해 차라리 침묵을 택했다. 한참 뒤 채형원이 조용히 속삭였다. 사랑해요, 형.
손현우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붉어진 눈시울이 시야를 채웠다. 채형원은 자연스럽게 눈꺼풀을 내리고, 둥근 뒤통수를 감쌌다. 손현우의 대답이었다. 백 마디 말보다 확실한.
*
현재 시각 16시 31분. 풀까지 먹여 빳빳하게 다림질한 수트를 차려입은 네 명의 장정들 관자놀이 위로 힘줄이 팽팽하다. 눈가에 잔뜩 그늘을 진 채로 열릴 기미가 보이지 않는 문을 노려보던 중 결국 참지 못하고 이주헌이 먼저 빽 소리를 내지른다.
“아! 지금 시간이 몇 시야, 시간이! 자기들끼리 이미 호텔 간 거 아니야?!”
“야, 민혁아. 전화 좀 해봐.”
“헤어진 걸 수도.”
“임창균 이 매정한 새끼.”
기다림에 지쳐 별생각 없이 주고받는 말들이 가볍기 그지없다. 캔들도, 케이크에 붙여놓았던 초도 다 꺼놓은 지 오래다. 유기현은 굳게 닫힌 작업실 문을 보다가 소파 뒤, 벽에 부착된 단체 사진 포스터를 본다. 하릴없이 시간을 죽이고 있을 때, 벽에 비스듬히 기대 서 있던 이민혁이 용수철처럼 튀어 올랐다. 야, 이제 온대!
채형원에게서 온 메시지다. ‘지금 올라가는 중’이라는 메시지 하나에 작업실 안은 다시 분주해지기 시작한다. 조명은 끄고, 캔들과 케이크에 초를 붙이고, 이주헌과 임창균은 폭죽을 챙기고, 유기현은 꽃다발을, 이민혁은 선물이 담긴 쇼핑백을 챙긴다. 누구랄 거 없이 침 넘기는 소리가 공명한다. 제 일인만치 심장이 고막 바로 아래서 박동하고, 입은 바짝바짝 마른다.
시작은 단순했을지 모른다. 기분전환 겸 거한 선물 하나 챙겨줘서 나쁠 거 없으니까. 이렇게 단순하고 얕은 이유로 시작된 걸 수도 있다. 어쩌면 옛날 같지 않은 저들의 관계를 회복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써먹은 걸 수도 있고, 조금 더 이기적이고, 원하는 바가 분명한 수작이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진심은 진심이다. 이민혁은 손현우가 이젠 조금이나마 내려놓고 일상의 행복을 찾길 바랐고, 유기현은 견원지간 같은 제 친구 채형원이 감정에 솔직해져 본인의 사랑을 따르길 바랐고, 이주헌은 뭐가 됐든 두 형이 자신이 안 보이는 곳에서도 그저 행복하기를 바랐으며 임창균은 이 모든 걸 평생 여섯이서 공유하기를 소망했다. 이 진심이 시작할 땐 미약했을지라도 준비하는 동안엔 이야기가 달라졌을 것이다. 이전에도 그랬듯이, 축하할 일이 있다면 다 같이 모여 거하게 축하해주는 것.
문이 서서히 열리기 시작한다. 복도 조명이 문틈을 비집고 들어오고, 검은 실루엣이 차츰 드러난다.
쥐죽은 듯한 정적. 이윽고 폭죽이 터진다. 뒤로 적당한 노래가 잔잔하게 깔리고, 네 명의 시선은 넋 나간 얼굴로 서 있는 손현우에게 향한다. 손현우를 제외한 다섯의 뺨이 둥글게 솟는다. 얼굴 가득 웃음꽃이 핀다. 유기현이 제일 먼저 그 앞으로 가 꽃다발을 내밀면 손현우는 눈썹을 모으고, 연이어 이민혁이 쇼핑백을 내밀면 그제야 뒷걸음질 친다.
그래봤자 뒤엔 채형원이 버티고 있다. 채형원이 활짝 웃으며 말한다. 형, 우선 받아요.
모든 건 얼결에 이루어진다. 상황파악 하기도 전에 꽃과 쇼핑백부터 받아든 손현우는 입 한 번 방긋하지 못하고 작업실 안 별실로 밀어졌다. 정신 차렸을 땐 모든 게 태풍처럼 지나간 뒤다. 손현우는 멍하니 제 품에 안긴 쇼핑백과 꽃다발을 내려다볼 뿐이다. 그저 멍하니.
촛불만 켜놨던 작업실에 조명을 환히 키운다. 나름 꾸민다고 꾸민 티가 역력한 작업실을 보고 채형원은 허리를 꺾어가며 웃는다. 고생 좀 했다? 유기현이 곧장 받아친다. 이 새끼 갑자기 기분 좋아진 거 봐. 너 선수 쳤더라? 형 반지 끼고 있더만.
그 말에 이주헌이 장난스레 야유를 던지자 채형원이 우는 소리를 낸다. 아까까지만 해도 엄청 쫄아 있었으니까 너무 그러지 마라.
“그나저나 이거 너네가 산 거야? 돈 많이 썼다?”
“우리 지각비야, 그거.”
“우리 마지막 단체 활동 때 지각비 걷었던 거 정산 안 했었잖아. 그걸로 산 거야.”
“아, 진짜?”
이민혁과 유기현이 번갈아 가며 내놓은 대답에 채형원이 다시금 제가 입은 턱시도를 내려다본다. 조금 전, 이민혁이 손현우에게 건넨 쇼핑백에는 다름 아닌 턱시도가 들어있다. 손현우가 방 안으로 들어간 뒤, 채형원이 받은 쇼핑백에도 마찬가지로 턱시도가 들어있었다. 티끌 하나 묻지 않은 순백의 색. 채형원은 이 상황이 뒤늦게 민망해 목덜미를 감싸고 크게 심호흡한다.
민망한 건 저뿐만이 아니다. 10년 넘게 동고동락한 이들 역시 낯부끄러운 일이었다. 순간 자리한 적막을 임창균이 깨뜨린다. 형, 떨려?
무슨 질문인가 싶어 채형원이 눈썹을 올리면 이주헌이 기다렸다는 듯 질문을 덧댄다. 왜 신부 보기 전에 신랑들 보면 엄청나게 떨려 하잖아.
“뭐야. 셔누 형이 신부 역이야, 지금?”
“그거 너무 사적인 질문 아니야?”
“난 이 둘의 침대 위 사정까진 알고 싶지 않은데.”
“아니, 뭐라는 거야. 이거 미친놈들이네.”
신부 역에서 침대 위 사정이 왜 나와. 돌았냐?
여느 때와 다름없는 장난으로 소란이 벌어질 때쯤, 문이 스르르 열렸다. 그걸 제일 먼저 알아챈 건 채형원이다.
유기현, 이민혁과 한창 티격태격하던 채형원이 뭐에 홀린 듯 열린 문 너머를 응시한다. 시선의 끝에는 손현우가 서 있다. 민망한지 입술을 일자로 꾹 닫아 물고, 눈동자를 데구루루 굴리고 있는.
이제껏 때로 들어차던 적막과는 차원이 다른 고요함이, 조잡한 식장으로 뒤바뀐 작업실을 메운다. 채형원의 등허리가 곧추선다. 묘한 긴장과 설렘이 자세로부터 배어 나온다.
손현우가 나오자 기다렸다는 듯 네 명이 둘씩 나뉘어 채형원의 양옆으로 선다. 손현우가 채형원 옆으로 서면 유기현이 단상에 올라 주례 아닌 주례를 보고, 이민혁이 사회자 역을 자처하며 엉뚱한 짓도 좀 시키고, 이주헌이 축가를 부르고, 임창균의 주도로 케이크를 자를 것이다. 예정된 순서 끝엔 둘이 오붓하게 남은 하루를 즐기는 것. 그리고 이틀 뒤면 전과 다름없이 몬스타엑스의 일원으로서 줄기차게 연습만 할 것. 이게 이들의 계획이었고, 계획대로 되지 않더라도 둘만 좋으면 그만이었다.
손현우가 천천히 레드카펫을 밟는다. 보풀이 인 레드카펫을 뒤늦게 발견하고는 ‘어우, 이게 뭐야.’하고 지레 기겁하고, 그 여상한 반응에 채형원을 제외한 동생들은 웃음을 참지 못한다. 몇 걸음 걷지 않아 손현우가 채형원 앞에 선다. 채형원이 손을 내밀고, 손현우는 흰 장갑에 감춰진 그 손을 가만히 내려다보다가 짧게 웃음을 터트리며 씩씩하게 맞잡는다. 유기현이 서둘러 단상 아닌 단상에 올라 주례를 시작한다. 웃음을 참느라 입꼬리가 실룩거리지만, 누구도 뭐라 하지 않는다. 맞잡은 손에 힘을 싣는다. 채형원이 손현우 약지에 끼워진 반지를 재차 어루만진다.
비로소.
이유는 달라도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같은 생각을 할 것이다. 자신한다. 부지중 샌 안도의 한숨에 이번엔 손현우가 손에 힘을 싣는다. 비로소, 둘의 장마는 끝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