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Night Walk


우리의 밤은 잠들지 못하고
네온블랙 씀

 

 

 

"또 밥 굶었지?"

 

형원은 삐딱하게 선 채로 현우를 일갈한다. 며칠 간 이어진 야근 때문에 현우의 살이 심하게 내린 탓이다. 현우의 몸에 딱 맞게 맞춰준 옷은 헐겁게 그의 골격을 따라 나풀거린다. 무려 삼백 오십 짜리 수트다. 형원은 마음에 들지 않는 기색을 숨지기 않기로 한다. 쯧. 짧게 혀를 차는 것으로 다시 한 번 무언의 비난을 하자 현우의 한숨이 뒤따른다.

 

"나 피곤한데."

 

지난 주말엔 토요일 까지도 야근을 했으니 그럴만도 하겠지. 벌써 2주가 넘게 진행되는 강행군에 현우의 안색은 실제로도 많이 핼쓱하다. 형원은 그걸 모르지 않지만서도 괜한 심술에 사로잡힌다.

 

기어이 바싹 마른 손으로 마른세수를 한 현우가 들고 온 가방을 식탁 의자 위에 내려둔다. 이것도 형원이 사준 가방이다. 무려 페라가모 레더 브리프 케이스. 이백 삼십 짜리. 한 세트에 몇 백씩 하는 명품들을 현우 몸에 걸쳐준 것은 전부 형원이다. 제발 하지 말랬는데도 이 깍 깨물고 고집스럽게 갖다 바치는 것은 형원의 고약한 취미이고.

 

얌전히 취업하는 대신 몰래 모아두고 꿍쳐둔 지난 날의 대학교 학비와 미리 땡겨받은 유산으로 주식을 한 바탕 거하게 땡긴 형원은 그걸 밑전 삼아서 성공한 스타트업 기업의 대표다. 아, 그건 몇 년 전 얘기니까 지금은 그냥 어엿한 사장님. 상장도 했고 주가도 솔찬히 오르는 중인 청년 갑부. 뭐 그런 식으로도 불린다고 한다. 그러거나 말거나 피곤에 찌든 현우에게 형원은 그저 귀찮은 골칫거리일 뿐이다.

 

"야, 손현우. 밥 먹어."

"입 맛 없어."

"허."

 

정말 입맛이 없다기 보다는 귀찮음이 분명한 현우의 답변에 형원은 기가 찬다. 이젠 아주 대놓고 쫓아내겠다는 거야 뭐야. 삐딱하게 서있는 형원을 지나친 현우는 어깨에 짊어지고 있던 촬영 장비를 매트 위로 내려둔다. 머리 끝 부터 발 끝 까지 형원이 억지로 꾸며놓은 명품으로 도배되어있건만, 현우의 어깨에 걸려있던 장비는 그 모든 걸 다 합쳐도 턱 없이 비싼 존재들이다. 마음 같아선 제 몫의 생명보험을 대신 걸어두고 싶을 정도라고 생각한다.

 

굴지의 대기업 마케팅 부서에 들어간 현우는 종종 학부 전공을 되살려 프로젝트의 촬영을 직접 담당하기도 한다. 지역 공모전에서 여러번 수상을 하기도 했을 정도니까 믿고 맡길만 하다나 뭐라나. 처음 형원이 그 사실을 들었을 땐 등신이라고 욕했던 것 같다는 기억이 머리를 스친다.

 

생각을 좀 해봐라. 그게 다 노동착취해서 다 외주 값 아끼려는 거지.

 

아, 돌아보니 욕은 없네. 어쨌거나 그렇게 좋아하던 사진을 그만두게 된 것을 후회하진 않는다. 현우는 자신이 결정한 삶에 후회하지 않기로 매 순간 다짐하는 편이니까.

 

하지만 계속 저를 졸래졸래 따라다니는 채형원을 가만히 놔둔 것에 대해서는 아주 조금 후회의 여지를 남겨주는 편이긴 하다.

 

"오늘은 하려고 온 거 아니니까 먹어."

"입 맛 없다니까."

"밥 먹고 뒹굴면 끝나고 토 하는 거 알아. 근데 오늘은 정말 하려고 온 거 아니라고."

 

형원의 나른하던 말투에 짜증이 섞여든다. 그제야 멍한 시야에 초점을 맞춘 현우의 눈에 소박한 도시락이 들어온다. 포장은 저래보여도 몇 만원 쯤 하겠지. 못해도 값비싼 재료들이 아까우리만치 허접한 레시피로 희석되었을 도시락의 플라스틱 용기를 빤히 보던 현우가 끝내 고개를 내저은다.

 

"나 정말 입맛 없어."

"손현우."

"너가 나랑 자려고 온 거 아닌 거 알겠어."

"..."

"근데 정말 못 먹겠어. 내일 먹을게."

 

그 쯤 되면 채형원도 정말 포기하고야 만다. 남아있어 봤자 서로의 짜증과 밑바닥을 경험할 뿐이니까.

 

"오랜만에 보는 얼굴인데 너무 빨리 쫓아낸다."

"시끄러."

 

오랜만이라고 해봤자 일주일도 채 되지 않는다. 지난 주 일요일에 잠시 얼굴을 봤으니까 오늘로 딱 6일째다. 참으로, 퍽이나 오랜만이다. 그렇게 비아냥 대고 싶지만 그럴 에너지조차 남지 않아서 문제다. 현우는 더이상 대꾸하지 않고 방으로 들어간다.

 

혼자 살기엔 많이 넓은 이 아파트엔 방만 두 개다. 하나는 현우가 잠만 자는 곳. 다른 하나는 가끔 채형원 쳐들어올 때 마다 짐 풀어두는 곳. 살림살이마저 휑하니 비어버린 탓이 부엌조차도 사람의 온기가 느껴지지 않는 곳에서 손현우는 혼자 삶을 이어간다. 그것도 돈벌이에 지친, 피곤에 찌든 얼굴이다.

 

현우가 제 방으로 쏙 들어가버린 탓에 홀로 남겨진 형원은 습관처럼 관자놀이를 긁적인다. 머쓱함도 없이 떫은 표정이 되어버리는 이유는 정말로 뒹굴자고 온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가 오해를 했든 말든 상관 없다. 요 밑에 수제 도시락 가게에서 사온 가장 비싼 세트가 식탁에 나뒹구는 것을 내버려두는 것도 그 때문이다. 형원은 현우의 행동과 태도에 일희일비하지 않기로 다짐한다.

 

그래도 뜨겁고도 차가웠던 만남의 순간들을 기억하면 씁쓸한건 여전히 입안을 맴돈다.

 

 

그러니까,

 

우리는 밤이 잠들지 못하는 곳에서 만났다. 아주 추운 나라에서 만난 우리는 양쪽 뺨이 새빨갛게 굳어버린 채였다. 로션과 썬크림을 잔뜩 발랐음에도 퍼석하게 건조해지고 차갑게 얼어버린 얼굴이 간혹 아프게 달싹였지만 내색할 순 없었다. 이 여행에 발을 디딘 사람은 온전히 나였으니까.

 

이 곳의 여름치곤 영하를 맴도는 온도였다. 보통의 경우 뽀얀 입김을 마주할 순 있어도 목도리 밖으로 빼꼼, 내민 얼굴이 얼어가는 경우는 드물다고 했다. 형원은 가장 좋아하는 펍에 앉아 맥주를 마시는 것으로 오늘 저녁 또한 때우기로 다짐했다. 이 지역이 온 지는 열 흘 째였다. 그 사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점이 생길 정도로 형원은 이 곳에서의 생활이 꽤나 만족스러운 시점이었다.

 

어떻게 운영이 가능한 지 궁금할 정도로, 형원이 좋아하는 펍은 드넓은 초원의 한 복판에 우두커니 불을 밝히고 있었다. 저녁 7시. 아직 해가 중천에 떠있을 시간이었다.

 

하루 십오만원이 넘는 렌트카는 매일 저녁 7시 쯤, 그러니까 형원이 펍에 가는 시간을 제외하면 가게에서 20분 쯤 떨어진 도심 속 호텔 주차장에서 차게 얼어있는 상태였다. 반대로 말하자면 20분을 달려서 도착한 허허벌판 속 펍에 도착할 쯤에서야 차 내부 가득 채우던 냉기가 겨우 사라진다는 의미였다. 덕분에 형원은 아직 차가운 손을 코트 주머니에 넣으며 매일 앉는 그 자리로 자연스럽게 걸어가 앉았다.

 

그 며칠 사이에 형원이 눈에 익은 주인장은 형원이 외치는 Same이라는 단어에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익숙하게 생맥주를 졸졸 따라내었다. 그가 프라이어에 안주를 데우는 사이 형원은 창문 너머로 익숙한 풍경을 눈에 담았다.

 

아주, 아주 추운 지역에서도 푸릇함을 잃지 않는 풀떼기들.

 

며칠 전 내린 눈이 하얗게 내려앉은 아주 먼 곳의 언덕과 나무들.

 

그리고,

 

 

감상에 빠지려는 찰나 맥주와 안주를 가져온 주인장이 친한 척을 해댔다. 누가봐도 외국인 관광객의 행색이라 그런지 영어로 걸어오는 대화에 형원은 어색한 웃음만 지었다. 빨리 가줬으면 좋겠어. 그런 생각이 마구잡이로 튀어올랐다.

 

밤이 잠들지 않는 곳에서, 늘 같은 시간이면 형원은 절대로 놓치기 싫은 풍경을 눈에 담기 위해 이 곳을 찾는 것이었다. 겨우 주인장을 돌려보낸 형원은 다급하게 창문 너머를 훑었다.

 

또 다시 보이는 같은 풍경. 이제는 차가운 공기의 흐름마저 살벌하게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춥겠다.

 

그런 생각부터 머릿속을 침범했다.

 

조금 전에 보았던 똑같은 풍경 속에서 이번엔 한 남자를 발견했다. 처음 같은 자리에서 촬영 준비하는 걸 봤을 때는 영상 10도가 넘는 날씨라 그런지 얇은 옷을 걸치고 있던 체격 좋은 남자였다. 그래도 오늘은 꽤 추운 모양인지 집업 파카 비슷한 것을 걸치긴 했다.

 

남자는 항상 같은 스폿에서 같은 시간에 카메라를 설치했다. 아주 중요한 프로젝트라도 진행하는 듯이 심혈을 기울이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살짝 멀리 보이는 남자의 얼굴을 감상하기 위해 창문에 더 바싹 다가가면 주인장이 나타나 쓸모없는 말로 말을 걸곤했다. 너 쟤 알아? 둘이 친구야? 같은 나라에서 왔어?

 

검은 머리의 동양인이면 어쩜 다 같은 나라에서 온 친구일 거라고 생각하는 건지. 그 편협함에 괜히 실소가 터졌다. 그도 그럴만 했다. 

 

나 쟤랑 정말 아는 사이 맞아.

 

"잘 자라. 간다."

 

형원은 현우의 방문을 살짝 두드리며 말한다. 방 안에서 사부작대는 소리가 들리는 걸로 봐선 아직 잠들지 않았을 게 뻔하다. 막상 잘 자라는 이야기를 남겼지만 발걸음이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 어쩌다보니 이렇게까지 서먹한 사이가 된 건지 도통 알 수 없다.

 

그 곳에서 꼬박 2주를 채울 때 쯤 형원은 남자가 촬영준비하는 곳을 향해 걸어간 적이 있다. 

 

'안 추워요?'

 

그 때 형원을 돌아본 남자의 눈빛이 선명했다.

 

'채형원?'

 

형원을 돌아본 현우의 표정이 들쑥날쑥 움직였다. 당황한 듯 싶다가도, 답답하다는 듯이 찌푸려지다가도, 단순한 놀라움으로 사로잡히는 듯 아주 볼만했다. 형원은 어깨를 으쓱해보였다.

 

'따라온 건 아닌데.'

'그걸 믿으라고?'

'진짠데.'

'야.'

 

'...사실 반은 맞아. 반만 맞아. 누나한테 물어봤어.'

 

어느 날 사라진 현우의 행방을 수소문 했었다. 형원은 한국 구석구석에서도 찾을 수 없는 그의 흔적을 애타게 찾아다니다가 불현듯 제 누나에게서 그 힌트를 얻었다. 해외로 촬영 간다더라. 어디로 가냐니까 그걸 나한테 왜 말해주냐카데. 그래도 궁금해서 물어봤더니 낭만적인 소리나 하더라고.

 

뭐라고 했는데?

 

...백야의 오로라를 찍겠대.

 

그 말을 들은 형원은 곧바로 현우의 집으로 쳐들어갔다. 꼬박 이틀을 현관문 앞에서 씨름한 결과 시덥잖은 네 자리의 비밀번호를 뚫었다. 곧장 안방으로 들어가 그의 서랍을 전부 뒤졌다.

 

현우의 흔적들에서 어렴풋이 나라에 대한 힌트만 얻었다. 어느 도시로 갔는지, 얼마나 갔는지, 그 곳에 아직도 머물고 있을 건지는 몰랐다. 그 다음부터는 자신의 의지로 해낼 수 없을 거란 생각이었다. 어떻게든 만날 사람이라면 결국 만나겠지. 그런 팔자좋은 생각을 하며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너 그거 집착이고 스토킹이야.'

'아니?'

'아니라고?'

'어, 아니야.'

 

단호한 형원의 대답에 현우는 주머니에 넣고 있던 손을 빼냈다. 꼭 쥔 주먹이 꽤나 단단해보였다.

 

여름이면 해가 지평선 끝에 머물다말고 다시 머리 위로 떠오르는 나라의 밤은 아직 밝았다. 저녁 타임을 지나 정말로 한 밤 중인데도 눈 앞에 훤했다. 형원은 로맨틱한 별빛 대신 환한 노을이 비추는 현우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봤다.

 

'이게 무슨 집착이야. 운명이지.'

 

현우는 형원의 난데없는 로맨스에 코웃음을 쳤다.

 

"...야, 채형원."

 

끼이익. 최소한의 소음과 함께 현우의 방문이 열린다. 상의를 훌렁 벗은 맨 몸과 촉촉하게 젖은 머리카락이 형원을 반긴다. 현우의 얼굴엔 아직도 짜증과 피곤이 잔뜩 서려있는 상태다. 그럼에도 현우는 딱 반 걸음 만큼의 양보를 하기 위해 큰 결심을 한다.

 

그의 몸이 반쯤 돌아서며 열린 방문 틈 사이로 내부가 보인다. 형원은 그의 의중을 알아챘지만서도 부러 입을 꾹 다문다. 제 귀로 듣고 싶은 현우의 목소리 때문이다.

 

"...자고 가라."

 

현우의 방 안은 아주 엉망이다. 아이슬란드에서 찍었던 사진들이 여지껏 널부러져있고 이혼 한 지 몇 년이나 지난 지금도 결혼반지는 탁상 위를 굴러다닌다.

 

형원은 그 안으로 한 발자국 들어섰다.

 

"미친놈... 궁상 떠네."

 

조명이 아주 어두워서 정확히 보이지는 않지만, 형원은 수많은 사진들 중에서 유독 선명한 한 장을 눈에 담는다. 운명같은 소리하네. 제가 생각해도 미쳤었다는 말 밖엔 안 나오는 과거의 그 곳에서 우리는 아주 다른 형태로 살아간다.

 

두 손을 마주 잡고, 아직도 잠들지 않은 밤 위를 걸었다. 한참을 걷다보니 귓가에 쟁그랑 거리는 소리도 들렸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하늘을 봤지만, 아쉽게도 선명하기만 한 하늘엔 아무것도 걸려있지 않았다.

 

'뭐라든?'

'누가?'

'나 여기 있는 거 알려준 사람.'

'우리 누나?'

'어.'

'낭만 떤다던데.'

 

천연덕스러운 형원의 말에 현우가 살풋 웃었다. 낭만 떤다니. 되게 걔 다운 말이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알려주더라. 나같으면 극혐하는 표정으로 쌩깠을텐데.'

'그래서 걔가 착하다는 거야.'

'너 지금 내 앞에서 우리 누나 편들어?'

 

마주 잡은 손에 힘을 꽉 준다. 그리고 불시에 입을 맞췄다. 현우의 손이 형원의 등허리 어딘가를 매만진다. 형원은 더욱 깊게 혀를 섞으며 현우와 다리를 부딪혔다.

 

"아파."

 

백야의 오로라를 찍는 것엔 실패했다. 손현우는 늘 그랬듯 자기가 하고자하는 일을 온전히 이루어내지 못할 것이다. 그건 채형원이 제일 잘 알았다. 그가 꿈 꾸는 하루의 장르가 무엇이든 상관없다. 집착 또는 운명. 혹은 그냥 어떠한 감정의 덩어리로 밤을 만들고 그 위를 걸으면, 한 걸음 발을 떼는 순간, 그 동안 우리가 함께 지나온 모든 순간은 지독한 로맨스가 된다.

 

다행히도 서울의 밤은 깊게 저물어만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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